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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살아난 건 이국종 교수였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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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살아난 건 이국종 교수였기에 가능했고, 기적이었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아들을 잃을뻔했던 이모(55·여)씨는 최근 귀순한 북한 병사를 치료해 주목받고 있는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의 아들 A씨는 2016년 11월27일 광주에 있는 집에 가기 위해 호남고속도로를 주행하던 중 빗길에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넘어 옹벽을 세차게 들이받는 사고를 겪었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당시 의식이 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존, 갈비뼈, 목뼈, 척추뼈가 부러지는 등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A씨는 중환자실에 있는 3일 동안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상태가 더 나빠졌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폐렴까지 찾아왔지만 이씨와 가족들은 의료진의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이때 서울에 사는 이씨의 오빠한테 연락이 왔고, 여러 사람한테 물은 결과 이국종 교수를 찾아가기로 했다. 
 
A씨는 사고 3일만인 11월30일 낮 12시 병원에 온 소방헬기를 타고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로 옮겼다. 아들을 헬기에 태우고 돌아가는 이국종 교수는 “아들을 꼭 살리겠다”고 이씨와 가족에게 용기를 북돋웠다고 한다.
 
A씨를 데려간 이 교수팀은 환자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이튿날 약 6시간에 걸쳐 외상외과와 신경외과 의료진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대수술을 했다. 물론 이 수술을 받고 나서도 아들에게 다시 패혈증이 찾아오면서 위기는 이어졌지만, A씨는 의식불명 보름만인 12월 12일 의식을 되찾았다.  
 
이씨는 “아들이 살아난 건 이국종 교수였기에 가능했고, 기적이었다”고 되뇌었다. 아들 A씨는 이후 12월 28일에 일반병동으로 옮겨졌으며, 1월 19일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다.  
 
A씨는 이런 의료진의 고마움에 화답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헌혈증서 61장을 기부한 것이다. A씨는 “내가 받은 큰 사랑을 중증외상 환자에게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어서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교통사고 당시 아들은 누가 봐도 중증 외상에 해당했는데도 외상센터 대신에 응급실로 실려 갔다. 하지만 당시엔 이런 문제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했다”면서 “외상센터의 예산지원이 확대된 만큼 그 역할과 중요성도 국민한테 제대로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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