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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조두순이 불러낸 음주감경 논란

김관기 변호사·김박법률사무소

김관기 변호사·김박법률사무소

2009년의 조두순 판결에 대하여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초등학생을 납치해 강간 상해한 죄에 대한 판결문에 ‘술에 만취해 저지른 범행이라 형을 감경한다’는 표현이 나온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다시 재판해 무기징역을 선고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심신미약인 피고인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하도록 하는 형법 제10조 제2항을 아예 들어내자는 주장도 제법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런데 다시 재판하는 것은 동일한 죄에 대해 두 번 재판받지 않는다는 헌법 원칙을 손상하기에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이 조항은 음주로 인한 감경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감경 사항에 관한 규정이어서 그 규정 자체를 삭제하는 것은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한 조국 민정수석의 답변도 모범적이다. 형사처벌은 범인의 자유의지를 전제로 한다는 문명국가 형법의 기본 교리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음주감경 시비보다 중요한 건
죄질 따라 법정형 세분화해야
유전무죄 무전유죄 없애는
형법 각칙 전면 개정하는 것

살인죄가 아닌 탓에 유기징역을 선택한 것이 이례적이지도 않고, 12년의 형기가 짧지도 않으며, 출소 후에도 전자발찌와 신상공개의 보안처분이 예정돼 있어 결코 가벼운 조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판결이 비난받는 것은 그 ‘감경’이라는 단어가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이리라. 따지고 보면 조두순을 12년의 형에 처하기 위해 재판부가 형을 감경하는 단계를 거칠 법률상의 필요는 없었다. 형법 제301조는 강간 상해에 대하여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5년에서 30년 사이에 형벌이 의미 있는 기간을 선택하면 된다. 실무상으로도 술에 취했다고 죄인의 형을 감해 주는 것은 술 마시기를 지원하는 꼴이기에 권장되지 않는다. 특히 성폭력 범죄에 대해 음주를 이유로 법정형 아래로 감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시론 12/14

시론 12/14

필요 없는 감경을 재판부가 한 것은 실무가의 한 사람으로서 추측하건대 술에 만취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형을 정하는 데 참고했다는 점을 알려 변호인의 불복 사유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음식에 고명 얹기 식으로 주취감경을 쓴 것인데, 일부 사건에서 관대하게 적용해 왔던 관행을 무의식적으로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 요즘 말로 적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핑계 없는 무덤 없듯이 적폐에도 나름 기술적인 이유는 있었다.
 
형법 제53조는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작량하여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유기징역형을 감경할 때에는 형기의 2분의 1로 할 수 있으니, 예를 들어 강도상해죄는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데 유기징역형을 선택하고 작량감경을 시행하면 최저 3년6월까지 선고할 수 있다. 법률상의 최저한을 판사가 재량껏 허물 수 있도록 일반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형법 제62조에 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할 경우에 한해 피고인을 집행유예로 풀어줄 수 있다. 죄명은 강도상해를 달고 있지만 실상을 보면 상점에서 라면 한 봉지 훔쳐 나가다가 점원이 붙잡자 밀치고 도망가는 와중에 점원이 가벼운 상해를 입은 경우와 같이 3년6월 이상 구금할 이유에 의심이 생기는 사례도 많이 있다. 그래서 술을 조금 마셨다는 진술이 나오면 그냥 술 마셔서 만취 상태의 범행이니 한 번 더 감경해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식으로 풀어준 관대한 판사들도 있었다. 실무가들은 ‘기록에 술 붓기’ ‘법정에서 피고인 술 먹이기’를 한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딱한 사정은 사정이고 법이 법대로 적용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아예 음주를 심신장애 범주에서 제외하거나 스스로 술을 마셔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범행에 대해서는 감형할 수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에 관해 사회적 합의를 구한다는 조국 수석의 말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형법 조항을 손보는 김에 판사들이 형을 정함에 있어 법에 눈감는 ‘적폐’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죄질에 따라 법정형을 세분화해주는 방식으로 형법 각칙도 전면 개정할 필요가 있다. 라면 한 봉지 훔치다가 미수에 그친 절도범이 법정형 제한 때문에 꼼짝 없이 실형을 살아야 하는데, 수십억원 사기를 친 자는 집행유예 제한이 없어 합의됐다고 풀려나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비난을 우리 사법제도가 면할 수 없다. 시스템에서 빈틈을 없애려면 정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을 곧이곧대로 적용하는 것이 부당한 압제로 타락하게 된다. 법률인들이 타당성을 고민하지 않고 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게 정교한 법제를 국회가 만들어주기 바란다.
 
김관기 변호사·김박법률사무소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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