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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트] 한·미FTA 재협상 때 무역보복 방지 장치 마련해야

미국의 거센 통상 압력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우리는 지금까지 봐왔던 미국의 정치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을 목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출마 의향을 밝힌 시점부터 자유무역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무역체제를 미국 평범한 근로자의 삶을 곤궁하게 만든 원흉으로 지목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대적인 수정과 그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FTA 파기보다 유지하는 게 유리
자동차·철강 등 제조업 양보 불가피
서비스 분야 무역역조 해결책 필요
이해관계·정치에 휘둘리지 말아야

 
당선 가능성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공약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기치로 후보 시절에 약속한 공약을 신속하게 실천했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는 통상과 관련된 그의 한 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처지가 됐다.
 
그가 가장 먼저 실천에 옮긴 건 다자간 무역협정 체제에 대한 부정이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자국 기업의 해외 이전을 저지하기 위하여 기업들을 압박하고, 무역정책을 담당하는 요직에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인물들을 임명했다. 그러면서 반덤핑이나 세이프가드 등 무역구제 조치를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러면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공격의 화살을 돌려 캐나다와 멕시코를 압박해 개정 협상을 이끌어 냈다. 한·미 FTA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취임 이후 6개월도 안 된 시점에 미국은 우리측에 한·미 FTA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 한국은 FTA 효과에 대한 공동조사를 요구했지만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재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한·미 FTA로 인해 미국 국내 산업, 특히 철강과 자동차 업계에 큰 피해를 보았다는 미국 측의 주장에 대해 한국은 무역역조의 원인이 FTA가 아닌 미국의 경쟁력이라는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 그 근거로 자동차 부문의 관세가 완전히 철폐된 것은 발효 5년째인 2016년이며, 관세 철폐에도 도리어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이 감소한 사실을 들었다. 철강 분야의 관세는 FTA 시행 이전부터 무관세였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위의 근거는 도리어 미국 측으로 하여금 ‘FTA로 미국이 무슨 이익을 얻는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든다. 트럼프 정부가 한·미 FTA는 양국에 불필요한 협정이며, 파기해도 상관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역이용당할 우려가 있다.
 
사실 이번 재협상은 최초 협상보다 더 험난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현 상태에서 한국이 미국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좁다. 한·미 FTA는 매우 높은 수준의 FTA 협정이다. 발효된 지 5년이 지난 현재 92% 이상의 관세 철폐율을 보인다. 추가적인 개정 없이도 5년만 지나면 양국의 관세 철폐율은 98% 이상에 달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 일부 분야에 대해서 추가적인 개방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함으로써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전략을 노출해버렸다.
 
이러한 조건을 고려할 때 재협상을 거친 이후의 무역협정은 현재의 상태에서 후퇴된 형태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미 FTA의 파기를 피하려 한다면 결국 다른 산업 분야의 희생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다. 특히 미국이 표적으로 삼고 있는 자동차와 철강 분야에서의 양보는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 파기라는 극단적인 선택보다는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한·미 FTA가 파기되면 양 국가 사이의 무역에 다시 장벽이 세워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양국 간 무역 규모는 축소될 것이다. 이는 양국의 기업에는 시장의 상실, 소비자에게는 선택 가능성의 축소와 왜곡된 자원배분에 따른 후생의 감소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렇게 축소된 양국 간 무역은 제3국의 수출에 의해서 채워지게 된다. 또한 FTA를 파기하면 나중에 필요 때문에 다시 추진하더라도 FTA 비준까지의 과정을 처음부터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10년 가까운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
 
그 사이에 현재의 FTA가 양 국가에서 비준을 받는 데에 들인 사회, 경제적 비용을 다시 치러야 한다. 그 공백기 동안 다른 경쟁국이 미국과의 FTA에 성공할 경우 이들보다 불리한 입장에서 경쟁을 시작해야 하는 등 큰 대가를 치를 게 분명하다. 그에 비해서 일단 FTA 자체를 존속시키면 추후 세계 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재협상을 통해서 더 발전된 형태의 FTA로 개정하는 작업은 파기된 FTA를 되살리는 과정보다는 훨씬 신속하게 적은 비용으로 추진할 수 있다.
 
따라서 재협상 개시를 앞두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FTA의 효과에 대한 공동조사 요청은 거부당했지만 그와 별도로 그동안 FTA가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줬고 어떤 비용을 치르게 했는지에 대한 자체적인 분석을 통해 한미 FTA의 가치를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 분석 작업은 단순히 FTA 이후에 어떤 산업 분야에서 수출이 얼마나 늘고, 무역수지가 어떻게 변동했는지에 대한 피상적인 조사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지난 5년간 FTA가 없었을 가상의 상황에서의 양국 간 무역에 대한 영향과의 비교작업과 향후 전망에 대한 연구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에 깔려있어야만 한·미 FTA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정리한 상태에서 협상에 임할 수 있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통상 연구본부 연구위원

문종철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통상 연구본부 연구위원

또한 재협상과 관련해 국내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역학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물론 이런 부분에 대해 정부가 완전히 초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공개적으로 농산물에 대한 입장을 공언했기 때문에 정부가 스스로 약속을 깨는 정치적 리스크를 부담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차선책을 생각해야 한다. 차선책은 비록 현재의 FTA에서 약간 후퇴되더라도 FTA의 형태는 남겨놓는 것이다. 제조업 부문의 관세 양허와 관련하여 약간의 손해는 감수하더라도 상품무역과 관련해서는 미국 측이 함부로 무역구제 조치 등을 사용할 수 없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이 적자를 보고 있는 서비스 분야의 무역역조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 미국 현지에서의 국내기업 보호 등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여당인 공화당의 이해관계를 전략적 지렛대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통상·연구본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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