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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지 않은 기록유산이 99%…국학진흥원 수장고를 가보니

6만8000여 점의 유교책판이 보관돼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 내부 모습. 안동=김정석기자

6만8000여 점의 유교책판이 보관돼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 내부 모습. 안동=김정석기자

 
12일 오전 경북 안동시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본관 건물인 홍익의 집을 돌아 뒤편으로 들어서니 '장판각(藏板閣)'이라는 2층 건물이 나타났다. 목판 10만 장을 보관할 수 있는 국내 최대 목판 전용 수장고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장판각 안으로 들어서는 데 다양한 잠금장치를 4번이나 풀어야 했다. 폐쇄회로TV(CCTV)도 건물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들어선 장판각 내부는 7단 높이의 책장들이 가득했다. 책장엔 오랜 세월에 까맣게 때가 탄 목판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장판각은 목판의 훼손을 막기 위해 최첨단 시설을 갖췄다. 내부 벽면은 오동나무로 마무리됐고 자연바람이 통할 수 있는 장치와 함께 자동 항온·항습기와 화재 자동감지기, 무인경비 시스템 등이 갖춰져 있다. 
6만8000여 점의 유교책판이 보관돼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에서 박순 전임연구위원이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배자예부운략 목판'을 살펴보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6만8000여 점의 유교책판이 보관돼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에서 박순 전임연구위원이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배자예부운략 목판'을 살펴보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장판각에는 총 6만8000여 장의 목판이 보관돼 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유교책판 6만4226장이 포함된 숫자다. 1460년 판각해 보물 제917호로 지정된 '배자예부운략(排字禮部韻略)'부터 1955년 제작된 책판까지 15~20세기에 걸친 목판들이 정리돼 있다.
 
이곳에서 만난 박순 국학진흥원 전임연구위원은 장판각 2층 한쪽 구석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책장에는 '퇴계선생문집 경자본 709장'이란 글씨가 붙어 있었다. 보물 제1895호인 퇴계선생문집 경자본은 『퇴계선생문집』 경자년(1600년) 초간본을 인출한 목판이다. 장판각에 있는 목판 중 가장 귀한 목판 중 하나다.
6만8000여 점의 유교책판이 보관돼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에서 박순 전임연구위원이 퇴계선생문집 경자본 목판을 살펴보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6만8000여 점의 유교책판이 보관돼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에서 박순 전임연구위원이 퇴계선생문집 경자본 목판을 살펴보고 있다. 안동=김정석기자

 
박 연구위원은 "목판은 그 특성상 화재나 습기에 약하고 보관을 하기도 어려워 쉽게 훼손된다. 심지어는 목판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 후손이 화장실에 쌓아놓은 목판을 수집해 장판각에 보관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목판은 나의 조상이나 스승이 걸어온 길의 상징이며 제자가 그 뜻을 이어받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어서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조선시대 만들어진 목판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퇴계선생문집 경자본처럼 높은 가치를 지닌 목판들도 셀 수 없이 사라졌을 것"이라며 "목판 수집 활동을 2002년부터 시작했는데 10년만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에는 각 목판의 이름과 판수, 기탁자를 알기 쉽게 정리해 뒀다. 안동=김정석기자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에는 각 목판의 이름과 판수, 기탁자를 알기 쉽게 정리해 뒀다. 안동=김정석기자

 
장판각을 떠나 본관 건물 1층에 있는 현판 수장고로 향했다. 은행 금고처럼 육중한 철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편액(扁額·널빤지 등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문 위에 거는 액자)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에 등재된 편액 550점이다.  
 
이곳엔 편액과 기문(記文·건물의 내력을 쓴 나무판), 주련(柱聯·건물의 기둥에 새긴 글) 등 현판류 1100여 점이 소장돼 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나 석봉 한호(1543~1605), 번암 채제공(1720~1799) 등이 쓴 글씨로 만든 편액도 있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에 등재된 편액들이 보관된 한국국학진흥원 현판수장고 내부 모습. 안동=김정석기자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에 등재된 편액들이 보관된 한국국학진흥원 현판수장고 내부 모습. 안동=김정석기자

 
이처럼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기록유산들이 국학진흥원에 가득하다.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무려 48만2475점이다. 국내 최다 기록유산 보유량이다. 매년 2만여 점이 늘어나는 추세로 미뤄 내년이면 50만점을 넘어설 전망이다.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 당시 상황을 기록한 국보 제132호 징비록(懲毖錄), 지난 6월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 후보에 오른 만인소(萬人疏) 등도 국학진흥원 소장 자료다.
 
하지만 50만 점에 육박하는 국학자료 중 완벽히 국역된 자료는 1%에 불과하다는 것이 국학진흥원의 설명이다. 나머지 99% 자료가 제목만 정리된 채로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는 말이 된다. 대부분이 전국의 문중에서 전해내려오는 공문서나 고서적, 편지, 일기 같은 것이지만 그 중에서 국보급 기록유산이 발견될 수도 있는 셈이다.
조선시대에 1만명 내외의 유생들이 연명해 올린 집단 상소문인 '만인소.'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조선시대에 1만명 내외의 유생들이 연명해 올린 집단 상소문인 '만인소.'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오용원 한국국학진흥원 기획조정실장은 "선조들의 정신이 베어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것은 각 자료를 소유하고 있는 개인과 문중의 도움 덕분"이라며 "국학자료들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은 물론 깊이 있는 조사를 통해 뛰어난 기록유산을 발굴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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