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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틸러슨 "조건없이 북한과 대화"의 의미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AFP=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AFP=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2일(현지시간) “우리는 북한이 대화하길 원하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전제조건없이 북한과 첫 만남을 가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공개 토론회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준비가 돼야 대화할 수 있다고 하는 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탐색 예비대화→비핵화 협상 2단계 대화 제안
샌더스 "대통령 생각 안 바껴" 트럼프 승인 관건
"외교 실패하면 매티스 차례, 성공 확신" 경고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선 처음으로 ‘비핵화’ 조건 없는 대화 제안을 공개석상에서 한 것이다. 언론에선 “틸러슨 장관의 외교적 해법의 개막”(로이터 통신), “북한을 향한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초대장”(CNN 방송)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틸러슨 장관의 전제 조건 없는 대화 제안이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연말 교체설이 파다한 상황에서 틸러슨의 제안이 얼마나 현실적 무게감을 갖고 북한에 전달될 지도 불확실하다.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당장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 대해 “북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이번처럼 대북 정책의 기조를 바꾸는 파격적인 제안을 틸러슨 장관이 독단적으로 했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북미 관계의 모종의 변화가 계기가 됐거나 혹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ㆍ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 외교안보라인과의 협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유엔 특사로 방북했다 돌아온 미국 외교관출신 제프리 펠트먼 사무총장이 같은날 뉴욕 기자회견에서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북한의 문을 살짝 열어놓고 왔다는 것이며 이제 시작”이라고 밝힌 것이 이같은 관측과 무관치 않다.    
맥매스터 보좌관도 이날 한 행사에서  “미국 정부는 김정은의 축출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바로 지금이 (북한과의) 무력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최고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틸러슨 "마주 보며 대화 시작하면 향후 로드맵 펼칠 수 있어"  
틸러슨 장관은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이 공동주최한 ‘환태평양시대 한ㆍ미 파트너십 재구상’ 토론회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외교를 통해 달성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했다. 자유로운 선(先) 대화→후(後) 비핵화 협상이라는 일종의 2단계 협상이 골자다. 
 
틸러슨 장관은 “일단 만나서 북한이 원하면 날씨 얘기를 할 수도 있고, 북한이 흥미가 있으면 (대화 테이블을) 사각 테이블로 할지, 원형 테이블로 할지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최소한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다음엔 앞으로 나아갈 목표를 향한 로드맵을 펼쳐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북한이 핵미사일 계획을 포기할 준비를 하고 테이블에 와야만 대화할 것이라고 하는 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북한은 거기에 너무 많은 투자를 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에 대해 매우 현실적”이라고 거듭 말했다.
 
"김정은, 김일성·김정일과 달라…협상 상대부터 파악해야"
본격 협상에 앞서 예비 탐색을 위한 대화가 필요한 이유도 설명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의 아버지(김정일)나 할아버지(김일성)와 분명히 다르다”며 “우리는 김정은과 대화하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고 하면서다. 
이어 “나는 먼저 협상 상대방이 누군지, 그들이 일을 어떻게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며 “합의에 도달하려면 많은 것을 얘기할 의향이 있어야 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테이블에 올리고, 북한이 원하는 것도 우리에게 얘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틸러슨 장관은 북한과 대화의 전제조건은 아니지만, 목표가 비핵화임은 분명히 했다. 그는 “우리는 기존 핵무장국과 달리 국제규범을 준수한 어떤 기록도 없는 북한을 핵무장 국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북한은 다른 선택을 하길 원한다는 생각으로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틸러슨 장관은 “대화를 한다면, 일정 기간 핵미사일 시험 발사를 중단하는 휴지기(a period of quiet)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대화를 하는 도중에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한다면 대화가 힘들어질 것이고, 생산적인 대화를 하기 어려워진다”고 이유를 설명하면서다. 앞서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에 대화를 위해 ‘60일간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을 요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틸러슨 장관은 기조연설에선 30분 동안 북핵 외에 남중국해 항해 자유, 이슬람국가(ISIS)와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철군 등 세계를 향한 미국 외교정책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최근 거론된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교체설을 불식하고 의도적으로 건재함을 보여주려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엔 국무부 전 직원과 타운홀 미팅을 하며 내부 개혁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샌더스 "전 세계에 위험한 도발, 북 스스로에 나쁜 행동"
백악관은 틸러슨 장관의 대북 대화 제의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러 샌더스 대변인은 “북한은 한국ㆍ일본ㆍ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 위험한 도발을 하고 있다”며 “북한의 행동은 누구에도 좋지 않고 북한 자신에게도 분명히 나쁜 행동”이라고 도발 중단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0월 1일 틸러슨 장관을 향해 트위터로 “리틀 로켓맨과 협상하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면박을 준 바 있다. 하지만 11월 초순 아시아 순방때는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만나 대화하는 데 분명히 열려 있다”“언젠가 그와 친구가 될지 모르겠다”는 등 직접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틸러슨 장관.[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틸러슨 장관.[AP=연합뉴스]

수미 테리 "틸러슨·트럼프 긴장 관계 소문 파다, 승인할지 관건" 
전문가들은 “대화의 가능성을 여는 중요한 진전”이라면서도 성패는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반응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은 중앙일보에 “틸러슨 장관이 전제 대화 제안은 중요한 발전이며 북한과 대화의 기회의 창을 열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제안한 것이면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테리 연구원은 “다만 틸러슨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 간 긴장 관계에 대한 소문들이 워싱턴에 파다한 상황에서 행정부를 대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 소장은 “핵심은 우리가 군사적 방위뿐만 아니라 외교적 해법도 동시에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외교는 미국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북한도 대화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방위력과 압박 정책의 지원을 받는 활발한 외교가 벌어지더라도 예측하기 어려운 북한과 협상으로 가는 길엔 우여곡절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나는 첫 번째 폭탄이 떨어지기 전까지 외교적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면서도 “외교가 실패로 끝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차례가 된다면 그는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결국 외교가 작동하지 않을 때는 군사적 해법이 기다리고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한편 틸러슨 장관은 “북한 내부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북한의 핵무기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라며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이들의 손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방안에 대해 중국 인사들과 논의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 고위 관리들이 북한 급변 사태 시 핵무기 안전 확보, 대량 난민 관리 방안 등을 논의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시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틸러슨 장관은 자신과 매티스 국방장관, 조셉 던퍼드 합참의장과 왕이(王毅) 외교부장, 창완취안(常萬全) 국방부장, 팡펑후이(房峰輝) 총참모장 등이 외교안보 전략 대화에서 북한 급변 사태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단 북한 내부 급변사태와 관련해 “(미군이) 군사분계선(DMZ)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38선 이남으로 후퇴할 것이라고 중국에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3월) 첫 번째 아시아 순방에서 북 정권교체, 정권붕괴, 미군의 DMZ 이북 파견과 한반도 통일 가속화를 추진하지 않는다는 4No 정책을 밝혔다”면서 “중국 측에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조건을 불문하고 38선 이남 후퇴를 보장했다”고 설명했다. 틸러슨이 미·중 간 비밀 논의를 공개한 것은 북한을 압박하려는 의도로도 분석된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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