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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선거를 가로막는 선거법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지난 12월 1일 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2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총선시민네트워크 관계자들로 지난해 4월 총선 기간에 당시 새누리당 후보 10여 명의 선거사무소 앞에서 후보자들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벌였고, 1심 재판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50만원에서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정치는 지저분하다는 혐오와
선거는 부패한다는 편견 탓에
우리 선거운동은 지나치게 협소
후보자는 선거 뒤 퇴장해 버리고
관객들은 침묵하고 바라볼 뿐
한국 선거는 민주주의 축제일까

뉴스를 주로 장식하는, 그리고 정치권에서 치열하게 논의되고 있는 선거법 개정은 주로 제도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진다. 의원정수, 비례대표, 선거연령, 선거구 획정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고 그것이 쉽사리 합의에 다다를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까지 잘 알고 있다. ‘이해당사자’라고도 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의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합의안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이해당사자’가 건드리고 싶지 않고 침묵하는 선거법의 영역도 존재한다. 그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방대한 279개조의 내용과 분량을 자랑하는 우리 선거법에서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선거운동과 관련된 여러 규제다. 우리의 선거법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선거는 “깨끗하고 조용한 선거”인 듯하며, 조용한 선거일수록 현직 의원들이나 거대 정당의 후보에게 안정된 당선이 보장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는 아마 여야의 이견이 없을 것이다.
 
선거운동과 관련된 우리 선거법은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사람들만이 정해진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이외의 모든 선거와 관련된 활동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선거법은 선언한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금지 또는 제한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58조 ②).” 그러나 그 금지와 제한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며, 우리의 선거운동은 자유롭지 않다.
 
박원호칼럼

박원호칼럼

우리 선거법이 이해하는 선거운동은 협소하다. 우선 선거운동의 주체는 후보자와 공식적으로 등록된 이들의 활동으로만 정의되고 있다. 예컨대 “누구든지 [후보자, 배우자, 등록된 운동원]을 제외하고는 선거운동 기간 중 어깨띠, 모양과 색상이 동일한 모자나 옷, 표찰·수기·마스코트·소품, 그 밖의 표시물을 사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68조 ②항).” 티셔츠를 잘못 입거나 액세서리를 잘못 선택해도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도 매우 엄격하게 제한돼 있어 “선거 기간 개시일부터 선거일 전일까지에 한하여(59조)”만 할 수 있으며 그 이외의 기간에 진행되는 선거운동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잠재적 후보자의 당선을 위해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어떻게 그 며칠의 기간에만 국한될 수 있겠으며, 현직 의원이 어느 날 종편에 나와 얼굴을 비치는 것이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더 중요하게는, 우리의 대표자를 뽑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평가하고 토론하는 기간이 20일이 채 안 되는 선거운동 기간으로만 제한될 수 있겠는가.
 
우리 선거법의 진정한 문제점은 그 제한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실제로 규제할 수 없는 부분들조차 법으로 정의하여 적용과 해석의 여지를 매우 넓게 열어두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누구든지 선거 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향우회·종친회·동창회·단합대회 또는 야유회, 그 밖의 집회나 모임을 개최할 수 없다(제103조 ③).” 아마 후보자가 해당 모임들을 직접 개최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겠지만, 분명히 ‘누구든지’라고 쓰지 않았는가. 그리고 선거 기간에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동창회는 또 어디에 있는가. 누가 이런 모임들을 기소하지는 않겠지만 우리 선거법이 시민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토론을 장려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 선거법의 문제와 한계는 우리 현대사가 남겨놓은 상흔이자 족적이기도 하다. 금권·관권·탈법·불법·부정 등의 수식어가 ‘선거’라는 말 앞에 유행처럼 붙어 있었던 역사, 한때 우리 선거법의 이름조차 우연찮게도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 방지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서 있는 지반은 정치는 지저분한 것이라는 혐오, 선거는 근원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편견, 그래서 선거운동 기간을 최소화하고 선거운동의 주체를 제한하여 그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인식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선거운동을 독점한 후보자들이 20일 남짓한 기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붓고는 퇴장해 버리는 선거라는 무대와 그것을 침묵하고 바라봐야 하는 관객들일 따름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말을 누가 했는지 이제는 생각나지도 않는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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