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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자벌레’ 렉시 톰슨이 희생자? 거꾸로 간 골프룰

지난 4월 LPGA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연장 끝에 유소연에게 패한 렉시 톰슨. 당시 눈물을 흘린 톰슨 때문에 동정론이 일어 시청자 제보가 금지되고 스코어카드 오기에 대한 벌타가 없어졌다. [중앙포토]

지난 4월 LPGA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연장 끝에 유소연에게 패한 렉시 톰슨. 당시 눈물을 흘린 톰슨 때문에 동정론이 일어 시청자 제보가 금지되고 스코어카드 오기에 대한 벌타가 없어졌다. [중앙포토]

골프를 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중요한 퍼트를 남겨뒀을 때 조금이라도 홀 쪽으로 공을 옮겨 놓고 싶은 충동이 든다. 공 바로 앞에 발자국이 있거나 경사가 심할 경우 공을 앞이 아니라 옆으로라도 옮겨 놓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프로골퍼들도 그렇다. 실제로 슬금슬금 공을 옮겨 놓는 사람들이 있다. 골프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는 공을 조금씩 옮기는 골퍼를 ‘자벌레(inchworm)’ 라 부르면서 경멸한다.
 

톰슨, 공 5㎝ 옮겨 규칙 위반 명백
우승 놓치고 우는 모습에 동정론

4월 ‘합당한 근거 땐 무벌타’ 이어
시청자 제보 반영 않기로 룰 개정

반칙 하고도 잘 몰랐다 우기면 돼
가장 부정직한 스포츠로 전락 우려

11일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골프 룰을 일부 개정했다.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청자나 갤러리 등의 룰 위반 제보를 받지않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벌타를 받는 것을 몰랐을 경우 잘못된 스코어카드에 사인을 했더라도 원래 벌타만 매긴다는 것이다.
 
이는 LPGA 투어의 스타인 렉시 톰슨(미국) 때문에 생겼다. 지난 4월 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톰슨은 공을 5cm 정도 옮겨놓았다가 시청자 제보에 의해 발각돼 2벌타와 스코어카드 오기 2벌타, 총 4벌타를 받았다. 눈물을 흘리고 우승을 놓친 톰슨에 대해 미국에서 동정론이 나왔다. 이를 계기로 룰 개정 작업이 이뤄져 이번에 발표됐다.
 
복잡한 규칙을 간단하고 알기 쉽게 개정하는데 찬성한다. 그러나 시청자 제보 금지는 신중해야 했다고 본다. 이번 개정이 렉시 톰슨 사건 재발방지법이라면 더 동의할 수 없다. 톰슨에 대한 면죄부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톰슨은 명백하게 공을 옮겨 놨다. 
 
톰슨이 일부러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상관 없이 2벌타다. 톰슨은 룰을 위반한 줄 몰라 스코어카드 오기 2벌타를 받게됐다고 억울해했다. 그가 옮긴 5cm는 공 지름(4.267cm) 보다 크다. 프로 선수가 이를 몰랐을까.
 
골프는 멀리, 똑바로 치는 것만 테스트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순간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퍼트를 할 수 있는지도 시험한다. 톰슨은 그런 부분에서 약점이 있었다. 올시즌 마지막 대회인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선 약 50cm의 퍼트를 넣지 못했다. 그래서 50만 달러의 우승상금과 올해의 선수상을 놓쳤다. 톰슨은 심지어 5cm 퍼트를 못 넣은 적도 있다.
 
골프는 독특한 스포츠다. 다른 스포츠는 공이 한 개다. 모두가 그 공 하나를 보고 있다. 골프는 작은 공 70여개가 아주 넓은 공간에서 경주용 자동차처럼 빠른 속도로 동시에 날아다닌다. 누가 룰을 지켰는지 어겼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규칙 준수를 선수의 양심에 맡긴다. 이를 어겼을 경우(스코어카드를 틀리게 냈을 경우) 큰 벌(실격)을 줬다.
 
톰슨의 행동은 2016년 이전이었다면 실격이었다. 그렇게 실격된 선수는 많다. 톰슨은 완화된 룰의 첫 수혜자였다.
 
벌타를 알려준 시간이 적절하지 못해 경기력에 지장을 받았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만약 경기가 끝난 후에 알려줬다면 어땠을까. 톰슨이 우승을 했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어 공격적으로 경기할 기회를 놓쳐 억울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2016년 US오픈 연장에서 안나 노르드크비스트가 벌타 받은 사실을 늦게 알려줘 손해를 봤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공정성을 위해선 톰슨에게 즉시 알려주는 것이 적절했다. 
 
톰슨의 4벌타 사건 때문에 이 대회 직후인 지난 4월 ‘합당한 근거가 있으면 비디오 판독 결과 잘못된 것으로 나오더라도 벌타를 매기지 않는다’는 규칙도 생겼다. 증거가 나와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톰슨은 지난 9월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에서 헤저드 뒤에 둬야할 공을 훨씬 앞쪽에 드롭하고 쳤다. 비디오상 위반이 드러났지만 이 조항에 따라 없던 일이 됐다. 더 큰 문제는 4월에 생긴 규정과 이번에 생긴 규정이 결합하면 양심의 의무가 사실상 사라지는 것이다. 잘못이 드러나도 “정당한 플레이로 알았다”고 우기면 제재할 방법이 없다.
 
톰슨은 12일 “나 같은 선수가 나오지 않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희생자라는 뜻인데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톰슨 개인을 비난하려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 선수가 잘못을 하고도 동정론으로 무마된다면 나머지 전체가 피해를 본다.
 
골프는 고루한 부분이 있다. 그 고지식함이 골프의 장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규제기관은 “사회의 흐름에 맞추기 위해 규칙 변화를 한다”고 했다. 거짓이 흔해진 사회와 발맞추겠다는 것 같아 씁쓸하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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