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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조선소 크레인을 호텔로 … 쇠락한 공업도시 되살렸다

국토의 25%가 바다보다 ‘낮은(nether)’ ‘땅(land)’, 네덜란드의 역사는 나라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척박한 자연 환경과 싸워 온 역사다. 댐으로 물을 막았지만 건물을 지으려 하면 땅에서 물이 샘솟아났다. 이렇다보니 튼튼하게 짓는 건축 기술이 발달했다. 중세 대항해시대부터 발달한 도시 역사 때문에 최근엔 낡은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도시재생’에 한창이다.
 

네덜란드 통해 본 ‘도시재생’ 청사진
20년간 방치됐던 항구도시 NDSM
폐선 활용한 카페로 지역 특색 살려

로테르담 ‘말발굽 모양’ 주상복합
도심 랜드마크로 상권 활성화 기여

“뜯어엎는 재건축·재개발은 한계
개성·컨셉트 살린 리모델링이 대안”

프레드 스쿨 네덜란드 건축가 협회 이사는 “재건축이나 뉴타운·재개발이 전면 철거를 전제로 한다면 도시재생은 지역 실정에 맞춘 ‘리모델링’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도시재생 선진국의 현장에 가봤다.
 
◆‘바텀 업’ 방식 도시재생=지난 6일 오전 암스테르담 아이강 북쪽 항구도시 NDSM. 멀리 버려진 조선소 크레인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크레인에 엘리베이터가 달려있고 가운데가 비어있는 대신 빨간색 사무실로 차 있었다. 안내를 맡은 아넥 보컨 건축 전문기자는 “크레인이 아니라 50m 높이 조망을 갖춘 1박에 500유로(약 64만원)짜리 고급 호텔이다. 때로 바람에 흔들리는 스릴도 맛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스테르담 아이강변 NDSM에 있는 파랄다 크란 호텔. 조선소에서 쓰던 크레인을 개조해 호텔 객실로 만들었다.

암스테르담 아이강변 NDSM에 있는 파랄다 크란 호텔. 조선소에서 쓰던 크레인을 개조해 호텔 객실로 만들었다.

인근 대형 컨테이너에 들어가 봤다. 예전에 물류 창고로 쓰던 곳이라고 했다. 다양한 색의 공방과 영화·사진촬영 스튜디오, 공연장으로 가득했다. 곳곳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활기차게 느껴졌다. 250여명의 예술가가 모여 작업하는 공간이다. 인근 ‘드 세벌’이란 지역은 아예 폐선(廢船)만 모아 카페와 작업장으로 꾸몄다.
 
NDSM은 1930년대부터 조선 산업으로 번창하던 곳이다. 하지만 1980년대 조선업이 쇠락하면서 20여년간 버려진 땅이었다. 이 땅이 살아난 건 10여년 전부터 건축가와 예술가, 지역 주민들이 도시재생에 뛰어들면서다. 이들이 자체적으로 모여 협회를 꾸렸고 정부 지원을 끌어냈다.
 
재생에 필요한 자금은 3000만 유로(약 390억원). 전체 자금의 3분의 2 가량은 재생에 참여한 500명이 낸 금액으로 충당했다. 나머지는 정부 기금으로 마련했다. NDSM이 지역 명물로 자리잡으면서 이제는 임대 수익을 거두고 있다.
 
도시재생 전문가인 폴 블록 건축가는 “버려진 항구를 지역 명물로 재생시킬 수 있었던 건 사용자들이 주도해 완성하는 ‘바텀 업(bottom-up)’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병민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도시재생에서 관심을 둬야 할 요소는 역사와 이야기, 철학 등 도시가 가진 무형의 가치”라고 말했다.
 
로테르담 시내 명물인 마켓홀 전경. 말발굽 모양 주상복합 아파트 건물 가운데 뻥 뚫린 공간을 시장으로 활용했다. [김기환 기자]

로테르담 시내 명물인 마켓홀 전경. 말발굽 모양 주상복합 아파트 건물 가운데 뻥 뚫린 공간을 시장으로 활용했다. [김기환 기자]

◆끊임없는 아이디어 실험=5일 들른 ‘건축 수도’ 로테르담 곳곳에선 다양한 건축 실험이 한창이었다. 고층 아파트에 실내형 전통 시장을 결합한 주상복합 건축물 ‘마켓홀’이 대표적이다. 이 건물은 멀리서 보면 말발굽 모양이다.
 
말발굽 가운데 빈 곳을 비워두고 시장으로 쓴다. 독특한 디자인은 침체한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로테르담시가 건축 공모전을 연 결과물이다.
 
마켓홀 내부 시장 전경. 일평균 2만4000명이 방문한다. 천장에 달린 아파트 내부 유리를 통해 시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 시가 공모해 선정한 디자인이다. [김기환 기자]

마켓홀 내부 시장 전경. 일평균 2만4000명이 방문한다. 천장에 달린 아파트 내부 유리를 통해 시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 시가 공모해 선정한 디자인이다. [김기환 기자]

공모전에서 ‘서울로’를 디자인한 로테르담 건축사무소 MVRDV가 제안한 말발굽 디자인이 채택됐다. 이교석 MVRDV 건축가는 “하루 평균 2만4000여명이 방문하는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빈 공간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쏙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재건축 대신 ‘DIY 리모델링’=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클라이부르그 아파트’는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통해 부활한 사례다. 1973년 준공한 뒤 올 초 리모델링을 마쳤다. 이곳 역시 전성기엔 10만명이 살던 대단지 아파트였다. 하지만 비행기 추락 사고를 겪고 건물이 낙후하면서 단지의 75%가 철거됐다.
 
성공적인 리모델링 사례로 꼽히는 암스테르담 클라이부르그 아파트. 모서리에 튀어나와 있던 엘리베이터를 벽과 유리로 마감하고 필로티를 높게 띄우는 식으로 외관을 밝게 다듬었다. 내부는 입주자들이 직접 리모델링했다.

성공적인 리모델링 사례로 꼽히는 암스테르담 클라이부르그 아파트. 모서리에 튀어나와 있던 엘리베이터를 벽과 유리로 마감하고 필로티를 높게 띄우는 식으로 외관을 밝게 다듬었다. 내부는 입주자들이 직접 리모델링했다.

클라이부르그도 7000만 유로(약 900억원)를 들여 철거-재건축할 상황에 몰렸다. 그러자 건축사무소들이 무상 인수해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틀었다. 건축사무소는 우울한 이미지의 1층 창고부터 2층으로 올렸다. 모서리에 튀어나와있던 엘리베이터는 안으로 들이고 유리벽으로 감쌌다. 필로티는 높게 띄워 개방감을 줬다.
 
입주자들에겐 1년의 시간을 주고 실내를 직접 제작·수리·장식하는 ‘DIY’ 식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도록 했다. 비용은 300만 유로(약 40억원)로 확 줄었다. 리모델링에 참여한 건축가 잔더 빈센트는 “뜯어엎는 재건축만 대안은 아니다. 입주자의 개성을 살린 리모델링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뉴타운·재개발과 도시재생 차이점

뉴타운·재개발과 도시재생 차이점

한국도 도시재생 바람이 한창이다. 문재인 정부는 내년부터 매년 10조원씩 5년간 50조원을 투자해 전국 500여개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낡은 주택을 정비하고 아파트 단지 수준의 마을 주차장, 어린이집, 무인택배센터 등을 설치해 마을을 되살리겠다는 구상이다.
 
박준형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기획단 지원정책과장은 “도시재생 사업 물량의 70%를 지역 주도로 발굴·선정토록 하겠다. 정부는 뒤에서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로디 엠브레흐츠 주한 네덜란드 대사는 “‘탑 다운(top-down)’ 방식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한국에 네덜란드 사례를 100% 적용하긴 어려울 것이다. (한국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건축가와 시민이 많은 만큼 풀뿌리 건축 실험에 정부가 마중물을 더하는 식이라면 도시재생이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스테르담=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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