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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9m 창덕궁 '금강산 벽화' 한 세기 만에 첫 공개

해강 김규진의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 비단에 채색. 195.5×882.5㎝. 등록문화재 제240호. [사진 문화재청]

해강 김규진의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 비단에 채색. 195.5×882.5㎝. 등록문화재 제240호. [사진 문화재청]

김규진의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비단에 채색. 195.5·×882.9㎝. 등록문화재 제 241호. [사진 문화재청]

김규진의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비단에 채색. 195.5·×882.9㎝. 등록문화재 제 241호. [사진 문화재청]

일단 크기에 놀란다. 말 그대로 대작이다. 폭 9m, 높이 2m에 이른다. 뿐만 아니다. 세부 표현도 생생하다. 마치 금강산을 마주하는 듯하다. 화가의 필력과 공력이 한눈에 감지된다. 해강(海岡) 김규진(1868∼1933)의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와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두 점이다. 조선의 마지막 궁중 장식화로 꼽힌다. 그 ‘명품’이 한 세기 만에 일반에 최초 공개된다.
 

김규진의 '총석정절경도' 등 두 점
해금강·외금강 절경 웅장하게 담아
조선시대 궁중 장식화 변모 보여줘

김규진의 '총석정절경도' 부분.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방울까지 세세하게 그렸다. [사진 문화재청]

김규진의 '총석정절경도' 부분.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방울까지 세세하게 그렸다. [사진 문화재청]

 
 두 작품은 서울 창덕궁 희정당(熙政堂)에 걸렸던 것이다. 희정당 동서 벽면을 장식했다. 조선시대 진경 산수화가들이 즐겨 그린 금강산을 궁중으로 처음 끌어들였다. 화재로 손실됐던 희정당을 1920년 재건하면서 두 그림을 새로 그려 붙였다. 비단에 그린 그림을 벽에 붙인 부벽화(付壁畵)다. ‘총석정절경도’는 동쪽 벽에,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서쪽 벽에 있었다.  
 
 두 작품 모두 가로 883㎝, 세로 196㎝ 크기다. 시간이 흐르며 작품이 훼손돼 2015년 벽면에서 분리해 보존처리를 했고, 이번에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실로 나들이 나왔다. 희정당은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곳이라, 두 작품이 일반에 선보인 건 작품 제작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정확히 98년 만이다. 현재 희정당에는 두 작품의 모사도가 걸려 있다.
 
창덕궁 희정당 접견실. 동서 양쪽 벽면 2m 높은 곳에 대형 금강산 그림을 붙였다. [사진 문화재청]

창덕궁 희정당 접견실. 동서 양쪽 벽면 2m 높은 곳에 대형 금강산 그림을 붙였다. [사진 문화재청]

창덕궁 희정당 외부 모습. 1920년에 새로 지었다. 외부는 조선식, 내부는 서양식이다. [사진 문화재청]

창덕궁 희정당 외부 모습. 1920년에 새로 지었다. 외부는 조선식, 내부는 서양식이다. [사진 문화재청]

 
 우선 ‘총석정절경도’. 해금강 절경인 총석정의 빼어난 풍광이 관객을 압도한다. 무엇보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주상절리(柱狀節理)가 장관이다. 고궁박물관 이홍주 연구사는 “작가가 직접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했다”며 “실제 경관보다 바위 높이를 강조하고, 바위 사이 간격을 좁혀 더욱 우람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총석정 그림이 대개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제작된 반면 이 작품은 바다에서 바라본 암벽을 수평으로 넓게 펼쳐냈다. 화면 오른쪽의 바위를 과감히 잘라내고, 왼쪽 바다를 시원하게 터놓은 형태라 입체감 또한 살아 있다. 작품을 관통하는 수평 구도가 시원스럽다.
 
김규진의 '해금강총석도'. 종이에 채섹, 37×335㎝. 1920년 김규진이 희정당 벽화 제작을 의뢰받은 후 금강산을 둘러보고 그린 초본 그림이다. [사진 문화재청]

김규진의 '해금강총석도'. 종이에 채섹, 37×335㎝. 1920년 김규진이 희정당 벽화 제작을 의뢰받은 후 금강산을 둘러보고 그린 초본 그림이다. [사진 문화재청]

 
 '금강산만물초승경도'도 웅대하다. 만물초는 흔히 만물상으로 알려진 외금강의 명소다. 각양각색 화강암 봉우리가 모여 천하절경을 이룬다. 워낙 풍경이 광활해 금강산 어디에서도 한눈에 조망할 수 없지만 작가는 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만물상 전체를 한 화폭에 담았다. 여러 시점에서 본 만물상 명승을 조합했음에도 전체적 구성이 안정되고 풍성하다. 골짜기 골짜기를 휘감은 구름과 안개, 선경(仙境)에서 노니는 듯한 분위기다. 첩첩이 포개진 봉우리와 울창한 산림, 지금은 가로막힌 금강산에 당장이라도 달려가고픈 마음이 인다.
  
 김연수 고궁박물관장은 “두 작품은 큰 화면에 진채(眞彩·진하고 강한 채색)를 사용해 금강산의 절경을 표현한 걸작"이며 “희정당 벽면 2m 높은 곳에 걸린 모습을 예전에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눈앞에 있으니 더욱 놀랍기만 하다”고 말했다.
 
 작가 김규진은 근대 서화가·사진가로 유명했다. 금강산 그림과 여행기를 모아 『금강유람가』(金剛遊覽歌)라는 책도 냈다. 두 작품을 그리기 위해 금강산 일대를 다시 다녀오기도 했다. 전시에는 『금강유람가』와 김규진이 금강산 답사 이후 그린 초본인 '해금강총석도'(海金岡叢石圖)도 함께 나온다.  
 
 희정당 벽화는 이전의 조선 궁중 장식화와 다른 면모를 보인다. 궁중 장식화로는 처음으로 금강산 실경을 도입했고, 창호·병풍 등에 주로 그렸던 기존 장식화와 달리 비단 7폭을 이은 대형 벽화를 시도했다. 이왕직(일제강점기 이왕가와 관련한 사무를 담당하던 기구)의 주문으로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홍주 연구사는 “1919년 3·1운동으로 조선인의 저항을 경험한 일제가 표면적으로나마 조선 문화를 존중하고 민심을 무마하려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창덕궁 희정당(보물 제815호)은 원래 조선시대 임금이 국정을 펼치던 편전(便殿)이었다. 1907년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집무실로 활용했다. 1917년 화재로 1920년 재건하면서 내전으로 사용했다. 경복궁 강녕전(康寧殿) 자재를 이용해 외부는 조선식을 따랐지만 내부와 가구는 서양식으로 꾸몄다. 13일 개막하는 이번 전시는 내년 3월 4일까지 이어진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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