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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했다...영화 '강철비'

영화 '강철비'의 한장면. 북한 정찰총국장 리태한(김갑수)은 내부 쿠데타 세력을 막기 위해 엄철우(정우성)에게 암살 작전을 지시한다[사진 NEW]

영화 '강철비'의 한장면. 북한 정찰총국장 리태한(김갑수)은 내부 쿠데타 세력을 막기 위해 엄철우(정우성)에게 암살 작전을 지시한다[사진 NEW]

 
만약 한국에서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웹툰 '스틸레인'에서 시작...핵전쟁 정면으로 다뤄
1000만 영화 '변호인' 양우석 감독 4년 만의 신작
정우성·곽도원 탄탄한 호흡으로 '남남 케미' 과시
아재 유머와 액션 돋보이지만 다소 과해 보이는 설정은 몰입 방해

 맞다.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상황이다. 누구라도 한 번쯤 생각해볼 순 있지만, 상상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공포감이 바로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양우석 감독은 지독한 사람이다. 한반도를 넘어서 지구촌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북한 핵 이슈를 2017년 겨울 극장가 한가운데로 끌고 왔다. 한국 영화 최초로 핵전쟁을 다룬 영화 '강철비' 얘기다.
 
  2013년 '변호인'으로 1000만 관객을 기록한 그의 새 도전은 핵전쟁 시나리오를 스크린에서 시뮬레이션한 것이다. 북한의 쿠데타 발생과 대미 선전포고, 미국의 핵 선제공격 논의, 남한의 계엄령 선포 등 한반도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을 모두 불러왔다. 남북한 현실에 도발적인 상상력을 보태 전운이 감도는 한반도를 그리겠다는 야심으로 한 편의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를 빚어냈다.         
 
"위원장 동지 잘못되면 그땐 전쟁뿐이오!"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하는 북한 최정예용원 엄철우(정우성). [사진 NEW]

"위원장 동지 잘못되면 그땐 전쟁뿐이오!"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하는 북한 최정예용원 엄철우(정우성). [사진 NEW]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영화는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하고, 북한 권력 1호가 남한으로 긴급히 넘어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북한의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는  개성공단이 미군의 MLRS (일명 스틸레인) 공격을 받은 위기 상황에서 치명상을 당한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온다. 한편 북한 1호가 남한으로 내려왔다는 정보를 입수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인 곽철우(곽도원)는 엄철우에게 접근한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하고, 남한은 계엄령을 선포한 일촉즉발 핵전쟁의 위기에서 남북한의 두 철우는 점점 가까워진다. 
 
영화 '강철비'의 한장면. 북한 정찰총국장 리태한(김갑수)은 내부 쿠데타 세력을 막기 위해 엄철우(정우성)에게 암살 작전을 지시한다[사진 NEW]

영화 '강철비'의 한장면. 북한 정찰총국장 리태한(김갑수)은 내부 쿠데타 세력을 막기 위해 엄철우(정우성)에게 암살 작전을 지시한다[사진 NEW]

 
 양 감독 "현실에 대한 냉철한 상상 필요한 때"   
영화는 김정일의 사망으로 혼란에 빠지는 대한민국을 그린 웹툰 '스틸레인'(2011)에서 출발했다. 양우석 감독이 직접 글을 쓰고 제피가루가 그린 '스틸레인'은 연재 당시 북한 김정일의 사망을 예측해 조회 수천만을 돌파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스틸레인'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강철비'는 만약 대한민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바로 '핵전쟁'일 것이고,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내부 군사 세력의 쿠데타 때문일 것이라는 상상력에서 다시 시작한다. 
 
한반도 정세를 치밀하게 파고든 도발적인 상상력은 '강철비'란 제목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강철비'는 영어 제목인 '스틸 레인'(STEEL RAIN)은, 실제로 존재하는 클러스터형 로켓 탄두의 별칭. 살상 반경이 너무 커서 전 세계 140여 개국 이상이 사용 금지협약을 맺은 무기다. 남과 북을 둘러싼 현재의 전체적인 정황이 언제든 무서운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의미다. 
 
11일 오후 언론 시사를 마치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양 감독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 실험에 대한 보도를 접한 이래 10여년간 자료 조사를 해오며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천착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북한 핵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보다 회피하는 느낌이 있다"며 "하지만 남과 북이 처한 엄혹한 현실에 대해 냉철한 상상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작품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정우성·곽도원 '남남 케미' 압권 
북에서 온 엄철우(정우성)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은 점차 가까워진다. [사진 NEW]

북에서 온 엄철우(정우성)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은 점차 가까워진다. [사진 NEW]

 
 영화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지만 영화적 상상력으로 극적인 재미를 최대한 살리겠다는 전략을 구사한다. 중량감 있는 주·조연 배우들의 빈틈 없는 연기, 실제 교전을 방불케 하는 액션, 유머를 곁들인 긴장의 완급 조절 등 연출에 대한 정밀한 계산이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정우정과 곽도원, 두 동갑내기 배우가 탄탄한 연기호흡으로 살려낸 '남남 케미'다. 
 
영화 '강철비'의 한장면. [사진 NEW]

영화 '강철비'의 한장면. [사진 NEW]

 
특히 배우 정우성에게 '강철비'는 그의 연기 이력에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록될 듯하다. 북한 사투리에서부터 민첩한 액션 동작은 물론, 순수와 불안·경계, 신뢰와 우직함이 미묘하게 묻어난 정서를 탄탄한 연기력으로 소화해냈다. 곽도원 역시 스마트하면서도 적당히 능글맞고, 신념 있는 엘리트로 완벽하게 분해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중년의 남자가 '딸들이 좋아하는' 지드래곤의 노래를 함께 들으며 가까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여기서 지드래곤의 노래는 남과 북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다. 양 감독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한국 음악, 빅뱅이 인기 있다고 하더라. (영화가) 전쟁을 다루는 데다 워낙 주제가 무거워 경직될 것 같아서 젊은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영화 '강철비'의 한장면 배우 곽도원은 이번 영화에서 또다시 엘리트 역을 맡았다. [사진 NEW]

영화 '강철비'의 한장면 배우 곽도원은 이번 영화에서 또다시 엘리트 역을 맡았다. [사진 NEW]

 현실과 픽션 사이  
 그런데도 이야기가 너무 묵중하기 때문일까. 영화적 상상력에 기대어 전개되는 영화는 지나친 우연의 남발 등 과해 보이는 설정이 꽤 많아 몰입이 쉽지만은 않다. 부상을 당한 '북한 1호의 남한 피신'이라는 설정도 그중 하나다. 긴급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북한 요원이 차를 달려 남한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북한 요원들이 국군 병원의 방어망을 너무 쉽게 뚫고 공격하는 상황 등도 과한 설정으로 비친다. 엄철우와 곽철우의 만남 등 영화에서 벌어지는 많은 우연들을 '운명'이라고 눙치고 넘어간다.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보는 관객들에겐 양 감독이 두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는 휴머니즘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 역시 관객에 따라 반응의 온도 차가 꽤 나는 대목이다.  
 
영화 '강철비'가 한국 영화의 분단을 그린 이야기로서 얼마나 진화했느냐는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될 듯하다. 김형석 영화 평론가는 '강철비'가 "한국 영화의 분단 서사의 소재를 확장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허술한 구조와 동의할 수 없는 결말은 아쉬움을 남긴다"고 덧붙였다. 북한 캐릭터인 엄철우를 둘러싼 극단적인 설정 등도 기존의 분단 영화의 틀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는 설명이다. 다양한 캐릭터의 입장을 통해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녹여내려고 시도하고, 액션과 유머를 탄탄하게 곁들였지만 '어쩐지 (시사) 강의를 듣는 것 같다'는 평가도 없지 않은 이유다.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더 많이 (날을) 벼리고, (사족을) 더 많이 버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떨쳐지지 않는다.  
 
영화 '강철비'의 한장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는 한반도의 핵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동분서주한다.[사진 NEW]

영화 '강철비'의 한장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는 한반도의 핵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동분서주한다.[사진 NEW]

 
양우석 감독은 "'변호인'이 송우석을 통해 국가란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면, '강철비'를 통해서는 냉철하게 우리의 앞날에 대한 상상을 그려 봤다"고 말했다. '변호인'에 이어 '강철비'를 통해 관객들과 함께 지금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양우석 감독의 도전은 의미 있다. 그러나 묵직한 서사만큼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전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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