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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투기판’ 체험기...“가즈아~ 외치면 저도 미쳐요”

비트코인 시세 변동을 보고 있는 투자자 본인. [중앙포토]

비트코인 시세 변동을 보고 있는 투자자 본인. [중앙포토]

"제가 항상 손발이 차고 그랬었는데, 화투패만 탁 잡으면 혈액순환이 촤악 되는게... 정말 내가 미쳤지 미쳤어."

 
2006년 영화 '타짜'에서 정마담은 표적인 '호구'를 꾀어내는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화투패만 잡으면 온몸이 짜릿해진다고. 요즘은 나도 그렇다. 손발이 항상 차가웠는데, 혈액순환이 촤악 되는 것을 실감한다. 뭇 직장인들의 밤잠을 설치게 한다는 비트코인 투기판, 이른바 '코인판'에서 지난 보름을 견뎌낸 후일담을 풀어놓는다. 불법 도박판에는 전문 타짜라도 있지, 코인판엔 호구만 넘쳐난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하루에 '억억' 부자 되겠네
국내 거래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지난달 하순까지도 1비트코인은 1000만원 선이었다. 11월 27일 1000만원 선을 돌파한 이후에도 계속 올랐다. 하루 100만원 단위가 변하는 건 우스울 정도. 이달 들어 1200만원이었던 비트코인은 지난 6일 한때 1900만원까지 치솟았다.
 
차트를 보며 인간은 수많은 상상력을 동원한다. "어제 사서 이때 팔았더라면"과 같은 몽상은 곧 "집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네"까지 발전한다. 주식 시장에서 대책 없이 당하는 전형적인 초보자의 한계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가상화폐 관련 온라인 게시판에는 비트코인의 무서운 상승세를 두고 각종 '인증'이 쏟아진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 단위까지 투자한 간 큰 이들의 간증이 이어지는 것이다. 초보자가 주식 시장에 이렇게 진입하게 되는 건가. 고민도 잠시. 어느새 푼돈이지만, 여윳돈을 쥐고 거래소로 달려가고 있다면 게임은 끝이다. 정마담은 '어떻게 호구를 판에 앉히느냐가 제일 어렵다'고 했는데, 비트코인 투기판에서 호구는 이렇게 판에 기웃거린다.
너도나도 외치는 '가즈아~'. [커뮤니티 캡처]

너도나도 외치는 '가즈아~'. [커뮤니티 캡처]

잠깐 '코인판' 용어
▶잡코인: 비트코인을 제외한 대안코인(Alternative coin, 알트코인)을 부르는 말. 주식 시장에서 값이 상대적으로 낮고 미래가치가 불확실한 '잡주'를 부르는 말에서 따왔다.
▶가즈아: '가자'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 자신이 보유한 가상화폐의 가격이 오르기를 기원하는 일종의 주문. 효과는 전무하다. 가즈아아아~ Gazuaaa 등 다양한 형태로 쓰인다.
▶존버: 끝까지 버티다. 주로 높은 가격에 사서 가격이 내린 가상화폐를 손절하지 못한 이들이 쓰는 표현. 다시 오를 때를 기다리겠다는 의지.
▶약속의 X시: 다양한 시간 앞에 '약속의'라고 붙이는 표현. 이 시간부터 오르면 좋겠다는 희망. 역시 효과는 검증된 바 없음.
▶하드포크: 기존 가상화폐와 정책적으로, 혹은 기술적으로 다른 목표를 지향하기 위해 다른 코인을 파생하는 기술개념. 일종의 새끼치기. 예를 들어 비트코인의 하드포크 가상화폐는 비트코인골드 등이 있다.
▶대장: 주식 은어 '대장주'와 비슷한 의미. 비트코인을 지칭한다. 가장 비싼 가상화폐의 대표자 격.
▶층: 자신이 매수한 가상화폐 가격을 부르는 말. 가상화폐를 사들일 당시 400원이었다면, '400층 공기 좋네요. 저보다 윗층 계신가요?' 라며 은근슬쩍 다른 사람들의 손실을 가늠한다.
▶기사: 세력이 가상화폐 가격을 들었나놨다 한다는 추측과 무언가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혹은 단체. 버스기사가 버스를 운전하듯, 기사가 가상화폐 가격을 좌지우지 한다는 의미.
 
분석은 없다 '가즈아~' 믿고 나도 간다
차트를 봐도 잘 모르겠다. 빨간 '캔들'은 올랐다는 것이고, 파란색은 내렸다는 의미라는 것만 안다. 기업의 미래가치를 논하는 주식 차트와 비트코인 시장의 가격변동 차트가 같은 의미인지도 불명확하다. 아직 비트코인의 미래가치는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결국 내 투자의 근거를 다른 이들의 '노름'에서 찾는 현상이 반복된다. 가격이 출렁이는 영문도 모른 채 당하기에 십상이다. '가즈아' 단말마는 바로 이 투기의 근거이자 희망이다.
 
지난 8일 가상화폐 게시판은 당시 199만원을 달리던 잡코인1 얘기로 가득했다. 시험 삼아 공부 좀 해볼까. 잡코인1에 주문을 넣고 매수가 체결됐다. 그런데 불과 10분 만에 240만원까지 올랐다. 꿈이냐 생시냐. 약 20% 정도의 수익이 발생한 셈이다.
 
몇 분이 더 흐르자 20%까지 올랐던 수익은 다시 마이너스대로 진입했다. 197~198만원 선에서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길 몇 시간. 결국 198만원에 전량을 매도했다. 손에는 땀이 나고, 일에는 집중할 수 없었다. 무섭게 변하는 수익률 숫자를 보느라 눈길을 차트에서 돌릴 수 없었다. '잡코인1 가즈아~' 믿고 나도 갔다가 작은 흥분만 경험한 채 소득 없이 빠져나와야 했다.
비트코인 시세 변동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투자자 본인. [중앙포토]

비트코인 시세 변동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투자자 본인. [중앙포토]

 
이 코인이 아닌가벼...저 코인으로
그러다 실제로 대박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이전까지 300원을 밑돌던 잡코인2가 9일 새벽 900원을 돌파했다. 잡코인1을 부여잡고 고민하던 사이 다른 잡코인2가 대박을 쳤다. 그날은 아침부터 수많은 인증 게시물에 시달려야 했다. "3배 먹고 나왔어요~"
 
쓰린 속을 부여잡고 새벽에 900까지 올랐다는 잡코인2를 800원에 사들였지만, 오전 내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결국 768원에 매도. 가상화폐 투기의 무서운 점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매수할만한 다른 가상화폐가 없을까 잡코인3에 기웃거리게 된다는 점이다.
 
많은 투자자가 잡코인에 눈길을 주는 이유는 하나다. '초대박' 꿈을 실현할 가능성이 비트코인보다 크기 때문이다. 1비트코인의 가격은 현재 1500만원이 넘는다. 등락이 아무리 심해도 3000만원까지 오르지 않는 이상 200% 이익 실현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20원짜리 코인이 하루아침에 1000원이 됐다고 상상해보라. 5000% 수익 실현도 꿈은 아니다. 잡코인으로 '가즈아'를 외치는 이들이 "내일 아침 벤츠 매장에서 만나자" "5000층에서 만나자"라며 서로를 다독이는 이유다.
 
주말은커녕 잠도 못 자요
10일 오전부터 대폭락 사태가 발생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가상화폐 거래를 지원한다는 모 거래소를 기준으로 거래 가능한 128개 가상화폐 중 125개에 파란불이 떴다. 전날까지 2400만원을 오갔던 비트코인 가격도 1400만원대 하방을 뚫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미리 발을 뺀 이들도 있고, 고점(높은 가격)에서 물렸다(팔지 못했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로 등장했다. 새벽부터 심야까지. 평일에서 주말까지 코인판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르는 것은 가상화폐 거래가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산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하지는 않을까. 차트만 눈이 빠져라 쳐다보는 코인판 초보는 밤잠을 못 이루고, 주말에도 쉴 수 없다. 이들을 언론에서는 '코인판 좀비'로 부르기 시작했다. 진짜 가상화폐 투기판에선 아무도 이런 용어를 쓰지 않는다. 전형적인 언론이 가져다 붙인 용어다.
10일 오전 대폭락 장이 펼쳐진 모습. [중앙포토]

10일 오전 대폭락 장이 펼쳐진 모습. [중앙포토]

 
정부는 규제 한다는데...
지난 8일 법무부가 가상화폐 거래 금지를 검토한다는 설이 전해졌다. 10일 대폭락 사태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코인판에 올라탄 이들은 전문가·초보자 할 것 없이 앞날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도박판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마냥 규제를 반길 입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 계획은 지난한 입법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는 점, 가상화폐 대부분이 중앙집중화폐와 달리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둔다는 점, 저항이 거셀 수 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다는 견해다. 가상화폐의 미래 가치가 아니라 단기 수익성 투기에만 매몰된 현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막대한 리스크를 기업이나 거래소가 아닌 개인 투자자만 떠안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원을 운영하는 차명훈 CEO는 "지금 코인 투기는 정말 큰 문제"라며 "가상화폐는 기술기반 투자 시장인 만큼 기술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전혀 이러한 움직임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어서 그는 "국내 많은 거래소가 오늘 가격 상승률 1위인 코인이 무엇인지 대놓고 보여주는 등 투기를 조장하는 느낌"이라며 "(투기를 위한) 단체카톡방도 많고, 텔레그램 등 메시지 서비스에서도 유료 정보 방이 운영될 정도"라고 진단했다.
 
정부의 규제와 관련해서도 차 CEO는 "당연히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투기성으로 몰아간다거나, 과대광고를 하는 것, 거래소의 예수금 관리에 대한 관리·감독 측면에서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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