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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모두의 성지,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지만, 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닌 도시.’  
사전은 예루살렘을 이렇게 규정한다. 모순인 듯한 이 표현이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이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에서 모두 성지로 삼는 곳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란 뜻을 가진 이곳은 기원전 1000년 무렵 다윗왕이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으며 도시의 꼴을 갖추게 됐다. 기원전 63년 로마군에 함락된 이후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가 되며 자연스레 기독교의 성지로도 자리매김했고, 638년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에 의해 함락돼 오랫동안 그들의 지배를 받는다. 이 도시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각축장이 된 이유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튀르크제국이 영국군에 패하며 이 도시가 있는 팔레스타인 땅은 영국의 수중에 들어간다. 이때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물밀듯 들어가며 아랍인들과의 갈등이 격해진다.
 
유엔은 1947년 팔레스타인을 유대지구와 아랍지구로 양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크게 반발했고,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가 맞붙은 제1차 중동전쟁이 터진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동서로 양분돼 각각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통치하게 되지만,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까지 완전히 점령하게 된다.
하지만 국제 사회는 지금까지 예루살렘의 특수성을 고려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곳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발표한 것이다.  
 
 
‘올드시티’는
세 종교의 주요 성지가 몰려있는 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는 동예루살렘에 있다. 이스라엘은 제3차 중동전쟁 당시 동예루살렘을 점령했다. 
현재 올드시티는 높이 약 10m, 길이 약 4㎞의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솔로몬왕 시절 건축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옛 성벽이 파괴되자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술레이만 2세가 1500년대 중반 재건한 것이다. 올드시티 총면적은 1km²에 불과하지만 220여 개 역사기념물이 밀집돼있고 아르메니아인ㆍ이슬람ㆍ유대인ㆍ기독교 구역으로 나뉘어있는 복잡한 곳이다.
 
유네스코(UNESCO)에서도 1981년 ‘예루살렘 옛 시가지와 성곽(Old City of Jerusalem and Its Walls)’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해 보호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유산 등재 신청을 한 나라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슬람 국가 요르단이란 사실이다.
그런데도, 분쟁이 끊이지 않아 유네스코에서는 1982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에 이곳을 올렸다. 올드시티 남쪽으로 ‘팔레스타인: 올리브와 포도나무의 땅’ ‘예수의 탄생지: 예수 탄생 교회와 순례길, 베들레헴’ 등이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라 있을 정도로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의 역사적 가치는 크다. 
 
 
‘통곡의 벽’(Wailing Wall)은
헤룻왕 시절 지어진 제2성전의 서쪽 벽. 로마군의 침략으로 파괴돼 그중 일부만 남았다.

헤룻왕 시절 지어진 제2성전의 서쪽 벽. 로마군의 침략으로 파괴돼 그중 일부만 남았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솔로몬왕이 세운 제1성전(유대인 신전)이 바빌로니아의 침입으로 파괴된 후, 헤롯왕 시절 재건된 제2성전의 서쪽 벽을 말한다. 유대인에 가장 중요한 성지 중 하나다.
제2성전은 기원전 70년께 로마군의 침략으로 파괴됐고 이후에도 수없이 침략당해 그중 일부인 서쪽 벽만 남게 됐는데, 이 앞에서 슬퍼하는 유대인이 많아 ‘통곡의 벽’이라 불리게 됐단 설이 전해진다. 현재도 수많은 유대인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이들은 소망을 적은 종이를 벽의 갈라진 틈에 밀어 넣으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통곡의 벽은 이슬람교도에게도 중요한데, 모하메드가 메카에서 예루살렘으로 그를 데려다준 날개 달린 말을 이 벽에 묶어두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또 이슬람교에선 통곡의 벽이 ‘바위의 돔’ ‘알 아크사 모스크’ 등 이 주변 이슬람 성지를 모두 포함한 구역인 ‘하람 아샬리프(고귀한 성소)’의 서쪽 벽이라 보고 있다.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는
예수가 묻힌 장소로 여겨지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 중 하나다.
동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36년에 처음 이 교회를 지었지만 이후 파괴되고 재건되길 반복했다. 현재 건물은 1149년 십자군이 다시 만든 것이다.
성묘교회를 이해하려면 올드시티 내 ‘십자가의 길’에 있는 ‘(예수가) 십자가에 이르는 14단계 장소’를 알아야 한다. 이 장소들에는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 처형당하고 묻히기까지 각각의 과정이 담겨 있는데, 이중 마지막 다섯 지점이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성묘교회 내부에 있다. 십자가를 지고 온 예수의 옷이 찢긴 곳(제10지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곳(제11지점), 예수가 묻힌 곳(제14지점) 등이다.  
 
예수의 고난을 품고 있는 중요한 성지이기에, 교회 내부는 기독교의 여러 종파가 각각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교회의 열쇠는 이슬람교 측에서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바위의 돔은 이슬람교의 가장 신성한 건축물 중 하나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바위의 돔은 이슬람교의 가장 신성한 건축물 중 하나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였던 아브드 알-말리크가 691년 완공한 건물로 이슬람교에서 가장 신성한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모하메드가 대천사 가브리엘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지는 바위가 있는 자리에 지어졌으며, 이름도 거기에서 유래했다. 이곳은 유대교와 기독교에도 중요한 곳인데,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느님의 제물로 바친 장소로 신성시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아브드 알-말리크는 이슬람의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유대인의 제2성전을 파괴한 자리에 바위의 돔을 지었다. 유대인에게 이곳이 가슴 아픈 장소이자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팔각형으로 지어진 이 사원은 외부를 덮고 있는 아름다운 타일과 빛나는 황금빛 돔으로 유명하다. 처음에 금으로 만들어졌던 돔은 이후 구리, 알루미늄 등으로 바뀌었고 현재 이 돔에 씌워진 금박은 요르단의 후세인 전 국왕이 기증한 것이다. 돔 꼭대기에는 이슬람교의 중요한 상징인 보름달 모양의 장식이 있다.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은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즉 ‘슬픔의 길’이라 불리는 곳으로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었다는 약 800m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올드시티 성벽 ‘사자의 문’으로 들어가 이 길을 걷다 보면 예수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곳(제1지점)부터 시작해 예수가 유죄 선고를 받은 곳, 십자가를 진 곳, 첫 번째로 넘어진 곳,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 한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준 곳 등이 차례로 나온다.  
 
각 장소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기념하는 교회가 따로 세워져 있을 정도로 신성시되고 있다. 가령 베로니카란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에는 여인의 이름을 딴 베로니카 교회가 세워진 식이다. 제10지점부터 예수가 묻힌 제14지점까지는 성묘교회 내에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이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이 십자가의 길 대부분은 올드시티 내 이슬람 구역에 속해 있다.  
 
 
‘겟세마네 동산’(Gethsemane)은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벽 밖, 동쪽에 있는 곳이다.
  
‘겟세마네’는 ‘올리브 기름을 짜는 틀’이란 뜻으로 현재 이곳에는 고뇌의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겟세마네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끝내고 제자들과 함께 올라 기도를 올린 곳으로, 예수는 이곳에서 체포됐다고 알려진다.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겪는 장소’로 전해지는 까닭이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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