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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문재인의 새마을과 박정희의 새마을은 다르다

고대훈의 Fact&Fiction
#fiction 1. 미얀마의 최고 실권자 아웅산 수지가 새마을운동에 감사를 표했다.
 
 
조명수 전 원장(오른쪽 끝)이 8일 새마을역사관에서 유학생들에게 새마을운동의 역사와 정신 을 설명하고 있다. 베트남·카메룬·니카라과 등지에서 온 학생들은 연세대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김상선 기자]

조명수 전 원장(오른쪽 끝)이 8일 새마을역사관에서 유학생들에게 새마을운동의 역사와 정신 을 설명하고 있다. 베트남·카메룬·니카라과 등지에서 온 학생들은 연세대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김상선 기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새마을운동은 ‘적폐’로 몰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들고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계승한 일이니 당연했다. ‘새마을’이란 글자를 다 떼겠다고 공무원 사회에선 소동이 벌어졌다. 정부의 무상원조를 전담하는 외교부 산하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9월 KOICA는 2018년부터 해외에서 ‘새마을’이란 이름이 붙은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중단하거나 ‘새마을’ 명칭을 빼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016년 KOICA가 스스로 신설했던 ‘글로벌 새마을 청년봉사단’ 제도도 폐지키로 했다.
 
그러던 지난 11월 13일 필리핀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웅산 수지 등 정상들로부터 한국이 자국의 새마을운동을 도와줘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이에 “지난 정부 사업이라도 성과가 있다면 발전시키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졌다. 죽었던 ‘새마을 ODA’ 사업이 되살아났다. ‘키르기스공화국 새마을 기반 농촌개발사업’ 등 새마을 ODA 관련 16개 사업에 200억원이 넘는 돈이 배정됐다. ‘죽은 박정희가 산 문재인을 설득했다’ ‘문재인 정부가 새마을운동을 재평가했다’ 등 섣부른 관측이 무성했다.
 
ODA에 ‘새마을’을 붙인 건 박근혜 정부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3월 개발도상국 농촌 개발을 돕는 ‘지구촌 새마을운동 종합추진계획’을 확정했다. 기왕 돈을 대주기로 한 원조사업에 ‘새마을운동’이라는 포장을 덧씌운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집행된 새마을 ODA 사업은 모두 1600억원대였다. 1970년 박정희가 시작해 47년간 그 맥을 지켜온 새마을운동중앙회(회장 소진광)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부의 원조사업일 뿐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지난 5일 오전(현지시간)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열린 제4회 우간다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우간다 새마을지도자들이 각 마을의 새마을기를 들고 행사 시작을 알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지난 5일 오전(현지시간)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열린 제4회 우간다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우간다 새마을지도자들이 각 마을의 새마을기를 들고 행사 시작을 알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아웅산 수지가 언급한 새마을운동은 2014~2016년 미얀마의 마을 인프라 구축에 지원한 160억원의 원조를 뜻한다. 이를 ‘새마을’로 개념을 둔갑시키는 바람에 혼동 속에 되니 안 되니 하며 호들갑을 떤 해프닝이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차원에서 벌이는 ‘해외 새마을운동 시범마을 육성 사업’의 경우 라오스·탄자니아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7개국 27개 마을에서 진행 중이다. 주민들 스스로 주택개량 사업 등에 나서도록 마을마다 연간 3000만원 정도를 지원하는 게 고작이다. 새마을운동에 정통한 조명수 전 유엔거버넌스센터(UNGC) 원장은 “새마을 ODA가 ‘원조받는 게 새마을운동’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수혜국에 심고 있다”며 “박정희의 새마을정신을 박근혜가 망쳐버린 셈”이라고 했다.
 
 지난 6일 오전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강당에서 '새마을운동 지역사회 지도자 기본 과정'을 마친 이들을 위한 수료식이 진행되고 있다. [김솔 인턴기자]

지난 6일 오전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강당에서 '새마을운동 지역사회 지도자 기본 과정'을 마친 이들을 위한 수료식이 진행되고 있다. [김솔 인턴기자]

 
#fiction 2. 새마을운동은 잊혀진 유물이다.
 
6일 낮 서울 분당에 있는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강당은 녹색 물결로 가득 찼다. 새마을 엠블럼이 새겨진 녹색 조끼를 입은 50~70대 남녀 300여 명은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했다. 이어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노래도 4절까지 불렀다. 전국 30개 시·군·구에서 올라와 2박3일 동안 ‘새마을운동 지역사회 지도자 기본 과정’을 마친 이들을 위한 수료식 장면이다. 조재범 연수원 부원장은 “새마을운동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고, 가난과 좌절을 풍요와 희망의 역사로 바꾸어 놓은 위대한 국민운동이었다”며 “그 평가의 중심에는 헌신적 노력을 기울인 새마을 지도자가 있다”고 격려했다. 시계가 1970~80년대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새마을운동을 잊힌 운동으로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7년 현재 새마을운동중앙회는 18개 시·도 지부와 228개 시·군·구 지회, 2496개 읍·면·동 조직 아래 207만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정부가 없애고 말고 할 조직이 아니라는 얘기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중앙DB]

1970년대 새마을운동 [중앙DB]

새마을운동의 빛이 바랜 건 사실이다. 1970년 4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한해(旱害)대책 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기한 것이 새마을운동의 출발이다. 농촌과 도시의 아침을 깨운 ‘새벽종이 울렸네’의 70년대는 새마을운동의 전성기였다.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기에도 “입법, 사법, 행정부 위에 새마을부”라고 할 정도로 막강했다. 김영삼 정권에선 ‘신한국창조운동’이, 김대중 정권에선 ‘제2 건국운동’이 새마을운동을 위협했고 노무현 정권은 ‘무시정책’으로 홀대했다. 박근혜 정부는 “새마을운동은 우리 현대사를 바꿔놓은 정신혁명”이라고 부활을 예고했고, 그런 과정에서 나온 게 ‘새마을 ODA’였다.
 
현재 새마을운동은 봉사단체의 성격을 띤 ‘공동체운동’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지역 회원들을 중심으로 소외계층 돌봄, 한 자녀 더 갖기 운동, 친환경 가꾸기 등을 하고 있다. 소진광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 “한마디로 잘살기 운동이다.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자조운동으로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운동”이라고 했다.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내 새마을역사관에 전시된 수료생 명부와 기념사진 [김솔 인턴기자]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내 새마을역사관에 전시된 수료생 명부와 기념사진 [김솔 인턴기자]

 
#fiction 3. 새마을운동은 국내용이다.
 
8일 오후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내 새마을역사관. 박정희의 친필 메모, 각종 서류들과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연세대 행정학과에서 ‘새마을운동과 지역사회개발’ 과목을 수강 중인 석사 과정의 외국인 유학생 30여 명이 현장학습 중이었다. 캄보디아·미얀마 등 동남아, 카메룬·세네갈 등 아프리카, 니카라과 등 남미 국가에서 온 이들은 모국에서 지역 개발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다.
 
지난 8일 현장학습을 위해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을 찾은 외국인 유학생들 [김솔 인턴기자]

지난 8일 현장학습을 위해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을 찾은 외국인 유학생들 [김솔 인턴기자]

니카라과 출신의 네메시스 호드손(28·여)은 “새마을운동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파룩 조더(40)는 “한국이 눈부신 성장을 하게 된 배경에 새마을운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세네갈의 마마두 시스(36)는 “새마을운동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칭찬과 부러움 일색이었다. 강의를 맡고 있는 조명수 전 원장은 “새마을운동의 개념, 발전 과정, 지도자의 역할과 자질, 추진 전략 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새마을운동 기록물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아프리카와 동남아, 중남미 74개국이 새마을운동을 자국의 근대화 모델로 삼고 있다. 외국인 6만여 명이 한국에서 새마을 교육을 받고 돌아갔다. 지난해에는 아프리카·동남아·남미 41개국이 참여한 ‘새마을운동글로벌리그(SGL)’가 출범했다. 새마을이 이제 국제화의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공과(功過)는 논쟁적이다. 낡고 촌스러운 농촌운동을 연상시키고, 전근대적 관변단체라는 의심이 남아 있다. 농촌 근대화 운동의 성공적 모델이라고 인정하는 반면 ‘유신체제의 파시즘 이데올로기’라고 혹평한다. 국민의 기억에서 지워버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새마을운동은 건재하다. 우리 사회에서 반세기가량 끈질긴 자생력을 갖고 생존한 ‘운동’은 드물다. 조명수 전 원장은 “새마을운동은 한국적 정신과 문화를 국제사회에 전파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인식과 국격을 높일 수 있는 토대”라고 했다.
 
 
 
고대훈 논설위원 
 

*이 기사 제작에는 김솔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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