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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지역 의견까지 듣겠다는 정부 … 제대로 된 구조조정 할까

JReport 12/11

JReport 12/11

지난달 말 경제부처 수장들이 잇따라 구조조정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구조조정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터라 이들의 발언은 주목을 받았다.
 

‘새 구조조정 추진방향’ 살펴보니
금융논리에 더해 산업 측면 고려
성동·STX조선 컨설팅 다시 하기로
대우조선처럼 회생 가능성 커져

노동계 힘 커져 엄격한 적용 힘들어
“한계기업 놔두면 경제에 더 큰 타격”

그런데 그동안 구조조정의 콘트롤타워로 인식되던 금융위원장은 말이 없었다. 지난달 20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구조조정을 언급하더니 지난달 27일에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발언 내용도 심상치 않았다. 백 장관은 “앞으로의 구조조정은 산업부가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앞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계에서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주요 구조조정 사례

최근 주요 구조조정 사례

이 관측은 지난 8일 기재부와 금융위 등 9개 부처 명의로 ‘새로운 기업 구조조정 추진방향’이 발표되면서 힘을 얻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당장 구조조정 대상인 성동조선 등을 살려주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힌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와서다.
 
물론 정부 발표 자료에는 성동조선이나 STX 조선의 구조조정 및 존폐에 대한 구체적 명시는 없었다. 하지만 행간에는 ‘중소 조선사 생존’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 상당히 많이 담겨 있다.
 
먼저 주목되는 건 산업적 측면과 금융논리를 균형 있게 반영하겠다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보도자료에서 “기존의 금융 논리 중심의 구조조정에서는 산업생태계 등 산업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미흡했다”고 명시했다.
 
한계기업 수

한계기업 수

정부는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더 높다는 이유로 지난해 한진해운을 퇴출했다. 국내 1위, 세계 7위의 대형 선사로서 상징성과 부산·경남 지역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등의 이유로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는 원칙을 고수했다.
 
성동조선 역시 한진해운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높다”는 내용의 EY한영 실사보고서 등을 근거로 성동조선은 생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굳힌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논리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을 함께 고려한다”는 새 구조조정 원칙이 나왔다는 건 금융위 입장만을 수용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구조조정 과정에 지역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부분은 성동조선 등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지역 여론이 ‘조선소 청산 반대’로 모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 실제 성동조선의 소재지인 경남 통영시와 STX 조선해양이 위치한 경남 창원시에서는 두 업체를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이다.
 
두 업체를 대상으로 외부 컨설팅을 다시 하기로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대우조선해양이 컨설팅을 새로 받은 뒤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선업 컨설팅을 의뢰받은 맥킨지는 “‘빅3’ 중 대우조선의 독자생존이 가장 힘들다. 매각 또는 분할해서 ‘빅2’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조선 업계가 발칵 뒤집히자 정부는 “맥킨지 컨설팅 보고서는 참고자료일 뿐”이라며 2017년 1월 삼정KPMG에 새롭게 컨설팅을 의뢰했다. 정부는 삼정KPMG 실사보고서를 근거로 삼아 대우조선에 정책자금 신규지원을 결정했다. 대우조선이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다.
 
성동조선에 대해서도 이미 EY한영의 실사보고서가 있지만, 채권단과 정부는 조선해양플랜트협회 주관으로 성동조선과 STX조선을 대상으로 외부 컨설팅을 새로 하기로 결정했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컨설팅에는 2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알려져 내년 1월 말이나 2월 초쯤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기업 구조조정 추진방향

새로운 기업 구조조정 추진방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 경제와 산업의 국제 경쟁력 약화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빠르고 효율적인 구조조정이 필수적인데, 이번 구조조정 원칙이 이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계기업은 3126개로 2012년 2794개보다 12% 정도 늘어났다. 한계기업은 영업이익이 금융 이자에도 못 미치는 기업으로 흔히 ‘좀비기업’이라고 불린다. 이런 한계기업에 금융회사가 빌려준 자금만 121조원에 이른다. 이런 기업들을 과감하게 퇴출해야 이 자금이 새로운 혁신기업들로 흘러 들어가 경제에 새 살이 돋아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회생가치가 없다면 과감하게 정리해야 새로운 혁신기업들이 태어나 전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역과 소통을 늘리겠다는 건 향후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노동 친화적인 현 정부가 노동계의 뜻을 거스른 채 대량 실업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는 구조조정에 제대로 나선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해운업을 이대로 놔두면 계속 곪아서 염증이 더 커지고, 결국 그게 터지면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박진석·하남현 기자, 한애란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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