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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문필가들의 또렷한 족적

“당신은 나에게 무엇이 되었삽기에 / 살아서 이 몸도 죽어서 이 혼까지도 / 그만 다 바치고 싶어질까요 /….’  
 
1920년대 최초의 여성잡지 ‘신여자’를 나혜석 등과 창간하고 자유연애·자유결혼·자유이혼을 부르짖었던 선구적 여성 문예인 김일엽(1896~1971)이 1928년 쓴 이 글은 62년 출간된 회고록 『청춘을 불사르고』에 실려있다.  

  
한국 문학사에서 여성 작가들이 남긴 족적은 작지 않고 적지 않다. 삼성출판박물관이 작고한 여성 작가들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기획한 것은 이를 되짚어보려는 시도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헐뜯고 힐난하는 희한한 논쟁이 벌어지는 요즘이라 의미가 더 크다. 김종규 관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여류 작가’라는 말에는 성차별적 뉘앙스가 없지 않고 역사성이나 사상성, 사회인식이 부족하다는 뜻도 다소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 세계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보편적 인간의 문제를 현실과 역사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일례로 여성 작가가 쓴 첫 장편 소설은 박화성(1903~1988)이 1932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백화(白花)’다. 고려 말엽의 유명한 기생 백화가 간신배들 때문에 무고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는 이야기로, 작품의 스케일이 워낙 커서 글쓴이가 여성일 리 없다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당대를 풍미한 무용수 최승희가 쓰고 오빠 최승일이 엮은 『최승희 자서전』(1937)을 비롯해 노천명의 첫 수필집 『산딸기』(1948), 화가 천경자의 첫 수필집 『여인소묘』(1955), 이미륵이 1946년 출간한 독문소설을 국내에 번역해 소개한 독문학자 전혜린의 『 압록강은 흐른다』의 1973년 판본, “여류 문인들의 친목과 권익을 도모하여 여류 공통의 과제를 연구하기 위해” 1965년 창립된 한국여류문학인회가 만든 『여류문학』(1968) 창간호 등 귀한 책들을 볼 수 있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삼성출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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