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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신화 담긴 삼국유사 번역본, 체코서 2000권 완판”

한국 고전 번역의 대가 교수 2인
미리암 뢰벤슈타이노바 교수(왼쪽)와 로스 킹 교수가 한국 고전 번역의 갈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미리암 뢰벤슈타이노바 교수(왼쪽)와 로스 킹 교수가 한국 고전 번역의 갈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미리암 뢰벤슈타이노바(59) 체코 카렐대 교수와 로스 킹(56)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를 8일 경기도 성남시의 한국학중앙연구소에서 만나 한국 고전의 효과적인 해외 전파를 위한 길을 물었다. 
 
뢰벤슈타이노바 교수가 번역한 체코어판 삼국유사.

뢰벤슈타이노바 교수가 번역한 체코어판 삼국유사.

두 사람은 한국 고전 번역의 대가다. 뢰벤슈타이노바 교수가 번역한 한국 관련 도서는 10여 권을 헤아린다. ‘구운몽’ ‘한국 고전영웅 소설집’(이상 1992년), ‘인현왕후전’ ‘한중록’(97년)을 비롯해 고은 시인의 시집인 ‘순간의 꽃’(2005년), ‘그것은’(2011년), ‘만인보’(2013년) 등 현대와 고전을 넘나든다. 2013년엔 일연의 삼국유사를 체코어로 번역해 제11회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았다. 
 
체코어 번역본은 현지에서 ‘완판’을 기록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한국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킹 교수는 99년부터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한국어 교육 마을을 운영 중인 한국어 전도사다. 한국어 보급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에는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뢰벤슈타이노바 교수는 이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린 ‘한국 고전 영문 번역 국제학술회의’ 참석차 방한했다.  
 
킹 교수는 현재 성균관대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한국 문학과 한국어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쓴소리도 많았다. 인터뷰는 한국어로 진행됐다.

 
한국 사람들도 고전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내용이 어렵고, 읽기도 어려워한다.
뢰벤슈타이노바 교수=삼국유사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겠다. 삼국유사는 역사적 기록이면서도 건국 신화다. 여기에 다양한 설화가 담겨 있다. 책은 불교의 입장에서 한국 역사와 전통을 다룬다. 삼국유사는 공식 역사와 설화가 섞인, 즉 정보의 질적 차원에서 불균형적인 출처를 사용했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 재미와 설득력이 있다. 여기에 삼국유사엔 교양이 아닌 유희를 목적으로 하는 소설의 성격도 담겨 있다. 번역자로서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라 생각한다. 이런 복합적인 묘미가 한국 고전의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종교와 신화, 무속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공부하면서 번역해야 했기에 쉽지만은 않았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고전을 번역하는 데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뭔가.
킹 교수=우선 한문으로 기록된 고전이 많다. 우리처럼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한문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다. 그러려면 한국에 와야 하는데, 그와 관련한 지원이 부족하다. 한국 고전 연구자가 되는 데 핵심은 결국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다. 한국어를 잘하고, 더 나아가 한문까지 이해해야 고전을 번역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현재로선 개별 연구자들이 ‘맨땅에 헤딩을 하는 식’으로 버티고 있다.

뢰벤슈타이노바=나 역시도 한문을 독학으로 배웠다. 모국인 체코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차세대 연구자들에게는 더 나은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같은 곳에서 전략적으로 외국인 학자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 지원이 신진 학자들에게 더 주어져야 한다.
 
고전을 번역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공부와 시간이 필요한가.
킹=한국 사람처럼 말한다면, ‘천자문은 뗐다’, 사실 현대 중국어를 통해 한문은 자연스레 접할 기회가 제법 있다. 다만 한국인 학자들과 함께하는 강독 같은 훈련이 더 필요하다. 같은 한자를 사용하더라도 중국과 한국은 문화적인 맥락이 다르다. 개인적으론 한국어를 공부한 지 30년이 넘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뢰벤슈타이노바=기초적인 페이스를 닦는 데는 5년, 깊이 들어가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삼국유사를 번역하는 데에는 동료 교수와 함께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한국 문헌을 접하기는 쉽나. 고전 문헌을 보기 힘든데.
킹=적어도 하드웨어상으로는 일본이나 중국을 능가한다. 온라인에 관련 텍스트가 잘 올라와 있다. 텍스트에 접근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뢰벤슈타이노바=말씀하신 대로 텍스트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이를 제대로 읽어내고 이해하기까지 시간과 훈련이 부족하다. ‘학문 후속 세대’를 키워내는 데 필요한 자원이 많이 부족해 여러모로 어렵다.
 
‘정(情)’이나 ‘한(恨)’ 같은 한국적 개념은 번역이 어렵지 않나.
킹=‘정’이나 ‘한’ 같은 말은 외국인 입장에선 일종의 만들어진 신화다. 한국 사람과 외국 사람은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개념들을 외국 사람들의 눈에 잘 이해되게끔 풀어내는 게 중요하다. 한국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그 번역물을 접하게 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풀어내야 한다. 영어권에서는 훨씬 더 영어에 맞게 길들여진 번역을 선호한다. 이색적이고 외국 냄새가 나는 번역은 오히려 안 팔린다. 시장에 맞출 수밖에 없다.

뢰벤슈타이노바=어차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 다 다른 만큼 그 의미도 다르게 받아들인다. 삼국유사 번역의 경우 삼국시대와 그 이전 시대의 이야기를 현대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아닌가. 결국 독자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후속 세대를 키워내기 힘들다는 의미는.
킹=현재까지 박사 제자 4명을 키워냈다. 이 중 두 사람은 교수가 됐다. 이들이 공부한 과정은 정말 눈물겨웠다. 내가 재직 중인 브리티시컬럼비아대는 북미에서 가장 큰 아시아학과(Department of Asian Studies)를 가진 곳이다. 지난 9년 동안 이 학과의 학과장으로 일해 왔다. 객관적으로 볼 때 한국 정부는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교환학생처럼 제대로 한국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노력이 부족하다.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는 그럴 만한 기회가 꽤 있다. 한 예로 전근대 한국어나 일본어를 공부하려면 적어도 7~8년은 걸린다. 대학원에서 학생을 지원해 봤자 5년 정도 지원해 주는 일도 쉽지 않다. 학생 입장에선 2~3년은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다. 그런 1~2년 정도의 시간에 한국에서 한국인 학자나 학생들과 함께 원전(原典)을 공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 정부는 번역물 같은 생산품(product)만 강조할 뿐 사람을 키우는 투자엔 인색한 것 같다.

뢰벤슈타이노바=난 박사 제자 5명을 배출했다. 다들 그렇겠지만 쉽게 공부한 사람은 없다. 고전을 공부할 수 있게 한국 정부 차원에서 동기 부여를 해주는 일도 많이 부족하다.
 
한국 고전 번역물의 인기는 어떤가.
뢰벤슈타이노바=일연의 삼국유사를 번역해 내놓은 책 2000부가 완판됐다. 다양한 신화와 사건들이 녹아 있다는 점이 독서를 즐기는 체코인들의 취향에 잘 맞았던 것 같다.

킹=대단하다. 북미의 경우 현대 유명 한국 소설가라도 번역본을 200~300부 가량 찍어내는 게 일반적이다. 사실 자국 문학 작품의 번역 작업은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다. 일본 같은 경우 100년 이상 자국 문화 보급에 힘을 기울여 왔다. 한국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이제 시작 단계라고 보는 게 맞다. 그리고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북미 지역은 철저히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다.
 
그래도 최근 한국어와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 않나.
킹=한류의 인기를 등에 업고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한류를 너무 믿고 있다. K팝 같은 통속 문화가 인기를 얻다 보니 더 이상 투자를 안 해도 된다고도 생각한다. ‘너네가 배우고 싶으면 와라’ 거의 이런 느낌이다. 이는 일본·대만·중국과 분명히 다른 점이다. 한국 내 각 대학들이 외국인 학생을 위해 운영하는 한국어 어학당도 매출을 올리기 위한(money making) 기관에 불과하다. 외국인에게 제대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한 예로 외국인 어학당에서 가장 높은 레벨에 있는 학생들은 대개 중국인 학생들이다. 한국인과 문화적 맥락을 함께하는 한자 문화권 출신이란 얘기다. 제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려 한다면, 유럽계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학생들이 가장 높은 레벨로 올라갈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 이런 학생들에게도 한자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한글만 제대로 알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대한민국의 민족주의에 불과하다.

뢰벤슈타이노바=한국어의 인기가 높다. K팝이 기여한 것도 많다. 하지만 학자의 길은 조금 다르다. 언어를 잘 배우고, 그다음에 역사를 깊이 있게 배워야 한다. 현재 같은 식이라면 연구자를 길러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을 것이다.

킹=언제 피크(peak)를 찍을지 모르는 한류만 너무 믿고 있어선 안 된다. 북미 지역에선 1년 정도 한국어를 배우다 포기하는 학생이 많다. 그만큼 한국어가 배우기 어려운 언어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고전 번역이나 연구에 쓰이는 고급 학술 한국어는 어떻겠나. 최근 성균관대에서 국제한국학센터(IUC)를 만들어 고급 학술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그런 류의 노력이 많이 부족하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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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