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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홍수·지진 잦은데도 집값이 더 비싸다고?

지난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서울을 포함해 전국에서 진동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이 상당했죠. 수능이 1주일 연기되는 초유의 결정이 있었고 인근 지역에선 여전히 여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진은 포항의 주택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특히 피해가 컸던 북구 지역 5개 동에선 지진 이후 수천 건의 매물이 쏟아져 주민들의 불안 심리를 드러냈습니다. 반면 지진피해로 철거에 들어가는 아파트를 대상으로 투기꾼들이 발 빠르게 달려들고 있다는 소문도 돕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 걸려 장만하는 보금자리가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동서고금이 같겠지요. 그런데 세계 주택 시장 사례를 보면 천재지변이 잦은 곳의 집값이 싼 것만도 아니랍니다. 오히려 미국에선 허리케인·지진 등 위험에 높게 노출된 지역 주택값의 상승률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고보면 모있는 기한 계뉴스]가 '자연재해와 집값'을 들여다봤습니다.
 
허리케인이 몰고 온 높은 파도로 인해 부서지고 뒤집힌 캘리포니아 해안경비초소. [로이터=연합뉴스]

허리케인이 몰고 온 높은 파도로 인해 부서지고 뒤집힌 캘리포니아 해안경비초소. [로이터=연합뉴스]

홍수·지진·산불 잦은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집값 1위 
지난 2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새너제이(산호세) 지역은 100년 만에 덮친 최악의 홍수로 물바다가 됐습니다. 주민 1만4000명이 긴급 대피하고 도로·주택의 침수·파손이 잇따르면서 총 피해 규모가 7300만 달러(약 800억원)에 이르렀습니다. 아직도 일부 지역은 복구가 진행 중일 정도죠.
 
홍수뿐인가요. 새너제이가 속한 캘리포니아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 미국에서 지진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지난 2014년 8월엔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나파카운티에서 규모 6.0의 강진이 발생해 새너제이와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등 인근 도시 주민 100만여 명이 진동을 느꼈습니다. 1906년 규모 8.3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땐 3000여명이 숨지고 이재민 30만명이 발생하기도 했죠. 요 며칠 동안도 LA 인근에 대형산불이 발생해 여의도 면적 110배가 넘는 지역을 태우고 주민 20만명이 대피했습니다.
지난 10월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 로사에서 발생한 산불이 힐튼 소노마 와인 컨트리 호텔을 덮쳐 검붉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월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 로사에서 발생한 산불이 힐튼 소노마 와인 컨트리 호텔을 덮쳐 검붉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새너제이는 미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이자 이베이, 시스코 시스템즈, 어도비 등의 정보기술(IT) 기업 본사가 있는 이곳 평균 집값은 108만5000달러(약 11억8000만 원)에 이릅니다. 게다가 상위 5개 도시 중 하와이 호놀룰루(4위)를 제외한 4곳이 캘리포니아에 있습니다. 1위 새너제이에 이어 샌프란시스코(88만5600달러), 애너하임 산타아나(74만2200달러), 호놀룰루(72만5200달러), 샌디에이고(58만9900달러) 순입니다(지난 8월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NAR) 집계).
 
지난 2월의 물난리도 새너제이 집값을 꺾진 못했습니다. 미국 부동산 정보업체 질로(zillow.com)에 따르면 새너제이 주택을 가격별로 줄 세웠을 때 중앙에 위치하는 집의 가격, 즉 중간 주택 값(median home value)은 93만4000달러로 지난 1년간 11.3% 올랐습니다. 내년에도 5.4% 상승이 예상된다는군요. 미국 전체의 중간 집값은 같은 기간 6.5% 올랐고 내년 3% 상승이 예상되는 데 말입니다. 참고로 미국 전체 중간 집값은 20만3400달러로 새너제이 집값의 4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중심 도시 새너제이를 멀리서 본 전경.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중심 도시 새너제이를 멀리서 본 전경. [사진 위키피디아]

 
위험지역 중간 집값, 평균 상승률 웃돌아 
미국 부동산 시장 조사기관 애톰(ATTOM)이 고안한 ‘자연재해 주택 위험 지수(Natural Hazard Housing Risk Index)’란 게 있습니다. 미국 내 3000개 이상 카운티와 2만2000개 도시를 6대 재해 위험에 기초해 인덱스화한 것이죠. 6대 재해란 지진·홍수·우박·허리케인·토네이도·산불을 포함하는데요, 이를 통해 총 7100만 주택(단독·아파트 포함)을 다섯 등급(매우 높음·높음·중간·낮음·매우 낮음)의 위험군으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2012년 3월 미국 중남부 텍사스주 랭카스터를 관통하고 있는 토네이도 관측 사진. [중앙포토]

2012년 3월 미국 중남부 텍사스주 랭카스터를 관통하고 있는 토네이도 관측 사진. [중앙포토]

 
2017 조사 결과에 따르면 놀랍게도 미국 부동산 시장이 회복한 지난 5년간 재해 위험이 높은 도시의 중간 주택값은 평균 65%나 올라 전체 평균(45%)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위험도가 낮은 지역과 비교하면 상승률이 두 배 이상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백분위 80 도시, 즉 위험 순위로 따졌을 때 상위 20% 도시의 중간 주택값이 65% 뛸 동안 백분위 20, 즉 위험 순위로 따졌을 때 하위 20% 도시는 32% 상승에 그쳤습니다. 기간을 10년으로 늘려도 매우 높은 지역(백분위 80)은 9% 상승했고, 반면 매우 낮은 지역(백분위 20)은 10년간 3%만 올랐습니다.  
 
쉽게 말해 자연재해에 쉽게 노출되는 지역 집값이 그럴 위험이 낮은 지역 집값보다 상승률이 훨씬 높은 겁니다. 통계는 왜곡을 막기 위해 중간값을 사용하지만 평균값으로 비교했을 때도 추세가 비슷할 걸로 보입니다.
 
주택 구매 때 자연재해 변수 크게 안봐 
미국 사람들이 일부러 위험한 지역에 가서 살고자 하는 걸까요? 그럴 리가요. 오히려 이 결과는 ‘주택 구매 심리에서 자연재해 빈도는 최우선 고려 대상이 아니다’로 이해돼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조사기관 리얼리티트랙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자연재해 위험이 높은 가구가 가장 많은 주는 캘리포니아주(840만 가구)라고 합니다. 플로리다주(670만)·뉴욕주(240만)·뉴저지주(230만) 등이 뒤를 잇네요. 대도시로 보면 뉴욕시(350만)·로스앤젤레스(LA·250만)·마이애미(190만)·휴스턴(120만) 등 순서고요.
 
지난 8월 2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주민들이 허리케인 '하비'에 의해 물에 잠긴 차량을 안전지대로 옮기는 것을 돕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8월 2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주민들이 허리케인 '하비'에 의해 물에 잠긴 차량을 안전지대로 옮기는 것을 돕고 있다.[AP=연합뉴스]

익숙한 이름들 아닙니까? 네, 이미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 즉 경제 펀더멘털이 확실한 도시들입니다. 고소득 일자리가 있고 교통·학군·환경 등 사람들이 중시하는 주거 요소를 갖춘 발달된 지역·도시들이지요. 다시 말해 일부 천재지변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람들은 이런 곳에 몰려 살기를 원합니다. LA만 해도 인구가 지난 5년간 2.2% 증가했고 같은 기간 주택 평당 가격이 65% 올랐다고 합니다.  
 
강·바다 끼고 문명 발달, 인구·인프라 집중
그렇다면 질문을 다시 해봅시다. 어떻게 사람들은 재해 위험이 높은 곳에 몰려 살기 시작한 걸까요.  
 
사실 웬만한 대도시들은 해안가이거나 강을 끼고 있습니다. 인류 4대 문명 발상지를 기억하십니까.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 모두가 큰 강을 끼고 태동했습니다. 식수를 얻고 땅을 갈아 경작하고 수확한 곡물을 유통하기 위해선 강가에 사는 것이 편했으니까요. 또 이 물길을 통제하고 치수(治水)를 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지배 구조가 발달했습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를 관통해 흐르는 나일강. 세계 주요 고대문명은 강을 끼고 발원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를 관통해 흐르는 나일강. 세계 주요 고대문명은 강을 끼고 발원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근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강가 혹은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소가 세워져 기계문명이 가속화됐고 강과 바다를 통해 무역·통상을 했습니다. 서구 열강 제국주의의 침략도 나라의 관문을 여는 개항(開港)부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한 도시의 발달은 홍수·허리케인 등을 감수하고서라도 거기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지진·산불 등 다른 재해 요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풍부한 광물·유전이나 비옥한 토양 등 다른 환경적 강점이 사람들을 끌어모읍니다. 애톰사의 대런 브룸퀴스트 수석 부회장의 말처럼 “주택 구매자들은 일자리나 삶의 질을 더 중시한다. 몇몇 아름다운 집들이 허리케인·산불·우박·홍수 지대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는 거죠.
 
내진설계 등 방재비용 추가돼 더 비싸
물론 사람들은 재해에 당하고만 있지 않습니다. 산불 위험 지역에 살면 목재보다는 화재 방지 마감재를 한 건물을 선호합니다. 지진이 잦은 곳에서는 내진 설계가 강화된 집을 찾습니다. 토네이도 위험 지역이라면 지하실이 있는 집에 먼저 관심이 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재해 방지 설비가 추가되면 주택 가격은 더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 전체로 봐도 기상 예보, 통신, 방재 설비 등 인프라 투자 비용이 추가됩니다. 
 
이렇게 도시는 더욱 발달합니다. 영국의 부동산 전문업체 세빌스의 욜란드 반스 세계리서치부문 대표도 파이낸셜타임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대형 규모의 도시가 위험 지대에서 성장하고 번성하는 이유는 경제적 이익이 위험보다 크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가 아무리 지진의 위험에 떨어도 오지 산골의 안전지대보다 융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재난훈련을 받고 있는 도쿄 이주미 초등학교 어린이들. 머리에 쓴 것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위에서 떨어지는 물체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모자다. [도쿄 로이터 = 연합뉴스]

진지한 표정으로 재난훈련을 받고 있는 도쿄 이주미 초등학교 어린이들. 머리에 쓴 것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위에서 떨어지는 물체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모자다. [도쿄 로이터 = 연합뉴스]

 
다만, 주의할 게 있습니다. 이상의 통계와 집값 얘기는 발달된 선진국 기준이란 겁니다. 당장 6대 재해 중에 가뭄이 없는 것만 봐도 아프리카·중동 등 사막 지대와 별개 얘기란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주택시장이란 것도 일정한 인구와 삶의 질이 전제돼야 가능한 거니까요. 그리고 그런 경우에라야 태평양의 높은 파도가 포세이돈의 분노가 아니라 ‘해안 조망’의 가치로 다가올 것입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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