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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풍찬노숙(風餐露宿)

풍찬노숙(風餐露宿)
-장철문(1966~  )
 
시아침 12/9

시아침 12/9

열무 솎듯 쑥쑥 뽑아서 박스에 던졌다
 
박스를 들어 문밖에 냈다
 
서너 박스는 재활용 쓰레기로 내고
 
너덧 박스는 주위에 돌리고
 
서너 박스는 동네 도서관 사서에게 맡겼다
 
정신의 한 모서리가
 
해빙에 어긋난 축대처럼 헐거워졌다
 
어젯밤 참 편안하게 잤다
 
잠자리에 누워서
 
웃풍이 숭숭 드는 정신의 남루를 바라보았다
 
미련의 골재들이 뽑혀나간 집이
 
숭숭 넓어서
 
오늘 아침, 이사 나가기가 아깝다
 
흥부네 까대기에 누워서 보는 일출의 아침이다
 
젊은 시절에는 책을 읽고 모으는 일이 재산을 늘리는 일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사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방을 갖고 싶었고 책과 함께 생을 밀어붙이리라 다짐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책장에 빡빡하게 꽂힌 책들의 무게감이 삶을 누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사를 하면서 책을 버린 경험이 시인에게 무한한 자유와 여유와 넓이를 선사했다. 덜어내고 비워내고 나누는 일 때문에 풍찬노숙을 한다고 해도.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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