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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카와 아야의 서울 산책] ‘할머니 치매’ 말하지 말라는 한국, 먼저 초고령사회 된 일본 사례 참고를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술에 취할 때마다 똑같은 영화를 보는 친구가 있다. 정우성·손예진 주연의 아름답고 슬픈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다. 한류 붐 전성기 일본에서도 큰 히트를 쳤다. 그 친구는 아름다운 영화 전반부는 대사를 다 외울 정도로 많이 봤지만 슬픈 후반이 시작되면 영화를 바로 꺼버린다고 했다. 아내(손예진)가 점점 기억을 잃어가면서 남편(정우성)조차 잊어버리는 모습이 가슴 아파서 못 보겠다는 게 이유다.
 
영화 속 주인공이 앓았던 알츠하이머병은 이제 흔히 듣는 병명이 됐다. 이 영화가 개봉된 2004년 일본에서는 ‘치매’라는 말 대신 ‘인지증’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일본어 ‘치매(痴呆)’는 ‘바보’라는 뜻을 상기시키는 차별적인 뉘앙스가 있다. 이 때문에 본인이나 가족이 병을 숨기려고 하는 원인이 됐다는 이유다. 고령화로 인해 치매 환자가 늘어나면서 편견을 없애자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 후생노동상은 2012년 462만 명이었던 인지증 환자가 2025년엔 7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보통 우리가 치매라고는 부르지만 병의 종류와 증상은 다양하다. 그중 제일 환자가 많은 것은 알츠하이머병이다. 우리 할머니도 알츠하이머병 환자다. 언젠가 한국 친구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다른 데서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 한국에선 아직 일본에 비해 환자 수가 적어서 그런지 편견이 있는 모양이다.
 
할머니는 3~4년 전부터 내 이름은 물론 내가 당신의 손자라는 것도 잊어버렸다. 신기한 것은 거의 모든 종류의 채소를 싫어하셨는데 그 기억도 없어졌는지 이제는 잘 드신다. 아무튼 할머니의 이야기를 내가 숨겨야 할 이유는 없다. 영화처럼 아름답지는 않지만 내게 할머니의 치매는 인간의 기억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해 줬다.
 
일본 신문사에서 치매에 대해 1년 동안 취재한 적도 있다. 일본에서 치매가 사회적으로 크게 화제가 됐던 2014년의 일이다. 계기는 치매 환자가 선로로 들어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다. 철도회사는 사고로 인해 발생한 대체 운행 비용과 인건비 720만 엔의 손해배상을 사망자 가족에게 요구하는 재판을 제기했다. 환자가 선로에 들어가지 않게 가족이 조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1, 2심에서 법원은 철도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가족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고 그 결과 큰 파장이 일어났다. 가족에게 너무 혹독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최고재판소는 1, 2심의 판단을 뒤집고 가족에게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 재판이 화제가 되면서 치매 환자가 행방불명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사실도 이슈화됐다. 2016년 경찰에 신고 된 행방불명 치매 환자 수는 1만5432명이다. 사고로 사망했는데 신원 확인이 안 되는 경우도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환자 가족들을 취재해 보면 조금만 방심해도 집을 나가 버리는 환자를 찾아다니느라 고생이 많다. 돌아오지 않는 경우에는 울면서 죄책감을 털어놓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행방불명의 심각한 상황이 보도되자 전국에서 지역 단위로 지켜보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일부 지역에선 어느 집에 환자가 있는지 파악하고, 환자가 없어지면 인상착의 등을 방송해 동네 사람들이 같이 찾아다니는 시스템 등이 생겼다.
 
최근 한국에서 ‘귓불에 주름이 있으면 없는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높다’는 보도를 봤다. 치매 가능성이 궁금한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또 이런 연구가 치매 예방의 기회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가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을 어떻게 지원할지 편견을 없애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한국에서도 앞으로 치매 환자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이때 세계에서 가장 빨리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사례가 참고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젊은 세대도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생각으로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할 문제다.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동국대 대학원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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