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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권력과 자본에 의해 왜곡된 말들

번역전쟁

번역전쟁

번역전쟁
이희재 지음, 궁리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대중추수주의’ 또는 ‘인기영합주의’로 번역된다. 그러나 populism은 원래 19세기 말 미국에서 농민이 결성한 정당(Popular Party)의 강령을 뜻했다. 미국 사회가 급속히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농업은 소외되었고, 결국 소작농과 영세농은 스스로 정치세력을 형성해 자신의 이익을 외쳤다. 이때의 포퓰리즘은 지금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와 거리가 있었다. 포퓰리즘은 ‘서민주의’로 이해해야 한다.
 
민영화를 뜻하는 영어 privatization은 독일어 Reprivatisierung에서 나왔다. 나치가 1930년대 초반 추진한 재민영화 정책을 이르는 말이었다. 나치는 철강·석탄·조선·철도 등 주요 기간산업을 민영화했다. 집권을 도운 대기업에 대한 보상의 성격도 있었고, 소련 공산주의와의 차별화도 필요했다. 당시는 나치 권력이 기업을 좌지우지할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권력이 기업의 눈치를 보는 세상이다. privatization은 더 이상 민영화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사유화’가 올바른 번역이다.
 
언어는 한 나라의 역사고 한 민족의 문화다. 그 맥락 속에서 언어는 말해져야 하고 이해되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다. 그러나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언어 고유의 맥락은 자주 무시되고 흔히 왜곡된다. 영국 런던대에서 영한 번역을 가르치고 있는 지은이가 이 불일치의 문제를 따진다. 특히 권력과 자본이 점령한 언어의 의미를 끈질기게 파고든다. 언어의 사회적 맥락을 추적하는 일은 다른 시공간을 무시로 넘나드는 일이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사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번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떤 언어든 말로 담아내는 것 자체가 번역이다. 언어를 마주하는 지은이의 자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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