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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회의서 자해 시도 약사, "우발적으로 칼 꺼냈다"

편의점에 판매 중인 안전상비의약품. 약사회 간부가 '안전성'을 이유로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조정에 반대하면서 자해 시도를 했다. [연합뉴스]

편의점에 판매 중인 안전상비의약품. 약사회 간부가 '안전성'을 이유로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조정에 반대하면서 자해 시도를 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제5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회의가 열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강봉윤 대한약사회 정책위원장이 자해 시도를 했다. 안전상비약 지정심의위원회는 약학계·의학계·시민단체 등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강봉윤 정책위원장도 이 중 한명이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약 품목을 조정하기 위해 논의를 진행해왔다. 강 위원장은 그 동안 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를 격렬히 반대했다.  
 

산으로 가는 편의점판매약 확대 정책
칼 꺼낸 강봉윤 약사회 정책위원장
"결론 정해놓고 몰아가는 방식 받아들일 수 없다"
경실련 남은경 사회정책팀장
"정부는 무모한 행동했다고 타협하면 안 돼"

현재 편의점 판매가 가능한 안전상비약은 해열진통제(5종)·감기약(2종)·소화제(4종)·파스(2종) 등 13개 품목이다. 5차 회의에서는 상비약 품목에 지사제(스멕타)·제산제(겔포스)를 새로 추가하고 기존 판매 품목인 소화제 2개를 제외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위원들의 의견을 최종적으로 모아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조정(안)을 확정해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표결처리 단계에서 강 정책위원장의 돌발 행동으로 위원회는 파행됐다. 그는 왜 회의 중 자해를 시도했을까. 다음은 강봉윤 정책위원장과의 일문일답.
강봉윤 대한약사회 정책위원장.

강봉윤 대한약사회 정책위원장.

Q. 자해 시도를 한 이유는 뭔가.
1차 회의를 시작할 때 강윤구 지정심의위원회 위원장이 다수결이나 표결로 입장을 정리하지 않고 합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5차 회의에서는 다수결로 조정안을 밀어붙이려 했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몰아가는 식이었다. 회의가 비상식적으로 흘러가는데,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자해밖에 없었다.
 
Q. 칼을 미리 준비한, 계획된 행동이 아니었나.
전혀 아니다. 나는 등산용 칼을 잘 휴대하고 다닌다. 그 칼로 과일을 깎아먹는 등 다용도로 쓰던 작은 칼이었다. 회의를 마냥 지켜볼 수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칼을 꺼내 든 것이다. 볼펜으로 찌를 순 없지 않겠느냐.  
 
Q. 정부 회의장에서 칼을 드는 것은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위지 않은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자해하려고 칼을 꺼낸 것은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무리였다. 다만 국민 건강권에 반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걸 참을 수 없었다는 점을 국민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Q. 품목 조정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뭔가.
품목 선정에 문제점이 많다. 제외할 품목은 안전성이 가장 뒤떨어지는 약을, 추가할 품목은 국민의 요구가 많은 약으로 정해야 한다. 하지만 위원회에서 추진하려는 품목 조정안은 그런 근거가 부족하다. 약사회에서는 품목 조정보다 더 근본적인 대안을 내놨지만 회의에서 검토되지 않았다.  
 
Q. 대안이 뭔가.
심야나 공휴일에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전문가의 돌봄이다. 보건소마다 취약 시간대에 공중보건의사, 공중보건약사를 배치해 공공 의약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심야나 공휴일에 문제가 되는 응급실 과밀화와 비용 부담 문제가 일부 해소되고, 전문가의 복약지도 하에 안전하게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다.
 

Q. 이번 처사가 국민 편의를 무시하는 이기주의적 행동이 아닌가.
약사회가 대안 없이 반대만 한다면 직능 이기주의로 몰아갈 수 있지만 그게 아니다. 오히려 위원회가 타당한 논의나 토론 없이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12월 중에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제6차 회의를 열고 품목 조정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중앙포토]

보건복지부는 12월 중에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제6차 회의를 열고 품목 조정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중앙포토]

하지만 약사회의 바람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시민단체 측은 이번 강 정책위원장의 돌발 행동을 직능 이기주의로 봤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정책을 결정할 때 전문가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둬 의견을 제시해줘야 한다”며 “이번 자해 사태는 약사단체 이익을 지키기 위한 파워게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특정 직역이 극단적인 행동을 보여 정책에 영향을 주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 팀장은 “원래는 4개 품목 확대를 검토했는데 약사회가 반대해 2개로 줄인 것이다”며 “정부는 특정 직역이 무모한 행동으로 위협한다고 해서 전처럼 적당히 타협하지 말고 방향을 제대로 잡아줘야 한다. 약사회가 빠진다면 약학 분야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 내 6차 위원회 회의를 열고 안건을 재차 논의할 계획이다. 윤병철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그동안 진행된 지정심의위원회 회의는 10명 위원 전원이 참석한 상태에서 논의가 이뤄졌고, 합의와 절충 과정을 충분히 거쳤다”며 “약사회가 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과장은 이어 “약사회가 불참한 채 위원회가 결론을 도출할지 말지 다른 위원들과 논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선영·이민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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