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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낸 특허·논문에 낯선 이름 … 알고 보니 지도교수 가족 끼워넣기

「 공대 대학원 실험실 부조리에 대한 고찰: ‘텀블러 폭탄 사건’ 그 이후 」
 

민주주의는 생활이다 ⑥
공대생 성과 가로채기 끊이지 않아
에밀레종 공양 빗대 ‘공밀레’ 자조
‘텀블러’뒤 주춤하던 인격비하 재발

◆ 서론=본 연구는 공대 대학원 랩(lab·실험실)의 ‘비민주성’을 살펴보고 공학 석·박사 연구생(이른바 ‘공돌이’)이 처한 현실을 진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 방법은 대면 조사법을 사용했다. 연구는 특히 6월 13일 발생한 연세대 대학원생 ‘텀블러 폭탄 사건’ 이후의 변화를 살펴봤다. 사제폭발물로 지도교수에게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김모(25)씨는 당시 “논문 지도 과정에서 교수로 인해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 본론
① 성과물 인력(引力)의 법칙: 연구 성과는 교수에게 수렴된다

 
서울의 한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있는 P씨(27)는 최근 자신이 낸 특허에서 낯선 이름을 발견했다. 지도교수가 지난해에 학생들이 낸 특허에 고교 3학년인 그의 아들 이름을 올린 것이었다. 박씨는 “ 교수님이 특허를 신청하라고 채근했는데 아들 ‘스펙’ 용도였던 것으로 의심된다”고 푸념했다.
 
다른 대학원의 한 교수는 연구원들의 논문에 지방대 교수인 부인을 공동 책임저자로 올리도록 했다. 학생들은 “교수님 부인이 연구 실적을 쌓은 뒤 다른 대학으로 옮기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돌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에 ‘공밀레’가 있다. 열악한 연구 환경 속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만든, 연구생들의 피와 땀이 토대가 된 결과물을 일컫는다. 어린 아이를 공양해 만들었다는 ‘에밀레종’에서 유래한 은어다. 대학원생들은 “또 교수님만 좋은 공밀레가 됐네”라고 자조한다.
 
② 가성비 보존의 법칙: 대학원생 인건비는 최저값을 유지한다
 
공돌이들이 ‘가성비(가격 대비 효용 )’ 좋은 인력이라는 점은 선행 연구들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이번 조사에서 “지도교수가 차린 회사에서 일했는데, 4대 보험은 언감생심이고 돈도 못 받았다” “ 시험 문제 내고 채점까지 하느라 연구는 주말이나 심야에 한다” 등의 하소연이 쏟아져 나왔다.
 
컴퓨터공학 석사 과정에 있는 N씨(26)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3월에 등록금을 충당하려고 교내에 하루 한 시간짜리 근로장학생을 신청했어요. 지도교수님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는 불같이 화를 내며 반성문을 쓰라고 했습니다. 연구실에서 주기로 한 장학금도 깎였고요.”
 
서울대 대학원 인권 실태 조사

서울대 대학원 인권 실태 조사

③ 교수 관성의 법칙: 관행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K씨(29)는 텀블러 사건 발생 직후 지도교수가 불러 면담을 했다. 평소 고함치며 윽박지르던 교수였다. 그에 따르면 교수는 “불만 있으면 말로 해라. 폭탄 같은 거 터뜨리지 말고”라고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며칠 뒤 “너 8학군 출신 아니지? 그래서 그런지 좀 모자란 것 같다” 등의 인격 비하 발언이 다시 시작됐다.
 
관성의 법칙은 이미 깨졌으며 현재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소수설도 있다. 서울의 한 대학교 전자공학과 박모 교수는 “요즘은 연구에 뜻이 있는 대학원생 한 명을 양성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갑질’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④ 연구실 유전의 법칙: 교수 특성은 연구생에게 대물림된다
 
실험실에는 교수의 ‘아바타’ 격인 ‘랩장’(최고 학번 선배)들이 있다. 그들은 지도교수의 언행을 따라 하며 후배들의 군기를 잡는다. 지난달 대학원 세미나에 참석한 J씨(30)는 랩장에게 욕설을 들었다. 내복을 입은 후배에게 농담을 던진 게 화근이었다. “미친 XX야. 내복을 입은 게 어쨌다고 네가 상관하냐.” 알고 보니 랩장도 내복을 입고 있었다.
 
◆ 결론=대학원생들에 따르면 바뀐 것이 별로 없었다. 텀블러 폭탄 사건이 일어난 뒤 여러 대학원에서 ‘연구생 권리장전’이 선포되거나 인권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졌지만 교수에 대한 인권 교육 실시 등의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공대 대학원 연구생들은 성과물 인력의 법칙, 가성비 보존의 법칙, 교수 관성의 법칙, 연구실 유전의 법칙이 여전히 유효한 이론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현·최규진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일러스트=심정보 디자이너
 
※ 이 글은 국내 대학 공학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들, 현직 대학 교수 등과의 인터뷰를 논문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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