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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냉전시대 비밀 벙커, 미래유산 옷 입고 미술관으로 변신

여러분은 벙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벙커란 적의 항공기나 미사일 등 공중에서 공격하는 것을 방어·방지하기 위해 만든 지하 시설을 뜻해요. 미국 대통령이 사는 백악관 이스트윙(동쪽 건물) 지하 벙커는 비상시 핵심 지휘부가 모이는 곳으로 할리우드 영화에도 나오죠.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처음 만들어져 핵 공격도 견딜 수 있다고 해요. 우리나라 청와대에도 지하 벙커가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6년 전시 대피 시설로 만들어졌다가 노무현 대통령 때 국가 위기관리상황실로 개조했어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 등이 열리는 이곳은 특히 이명박 대통령 시절 자주 언론에 등장했는데요, 이 전 대통령은 여기서 금융위기 대책회의를 했죠.  
 
우리나라에 비상사태가 벌어졌을 때 한미 양 국군 지휘부가 지휘소로 사용하는 벙커는 알려진 것만 6개입니다. 서울 관악산 수도방위사령부가 관리하는 B-1,서울 용산 국방부에 있는 B-2,서울 용산 미군기지에 있는 한미연합사 CC(Command Center) 서울, 한강 이남에 있는 한미연합사 지휘통제소(TANGO·탱고)와 한미연합 항공작전지휘통제부인 전구항공통제본부(TACC), 후방지역에 있는 CP(Command Post) 오스카 등이죠. 얼마 전 방한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찾은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도 핵 공격에 견딜 수 있는 최신형 폴아웃(Fall-Out) 벙커가 건설 중이에요.
 
군사 작전에 쓰이는 이들 벙커는 엄중하게 관리됩니다. 앞서 나온 비상시 지휘소로 사용하는 벙커의 경우, 대부분 그게 있다는 사실조차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이 방문하면서 알려졌죠. 오스카 벙커는 대구 캠프 워커지역에 있다는 것 외엔 알려진 게 별로 없어요. 캠프 험프리스에 짓고 있는 벙커의 경우 외부 노출 등을 우려해 미군 측이 직접 공사를 담당할 정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예 관련 정보가 없는 벙커도 있습니다. 2005년 5월 여의도 환승센터를 짓기 위해 현지조사를 하던 중 발견된 여의도 벙커가 바로 그것이죠. 
2015년 3월 현지 조사를 위한 벙커 출입구 진입 현장. [사진=서울시]

2015년 3월 현지 조사를 위한 벙커 출입구 진입 현장. [사진=서울시]

 
여의도 벙커는 국토교통부 지하 시설물 도면에도 기록돼 있지 않아요. 수도방위사령부에도 해당 기록이 없는 등 공적인 문서에선 관련 자료를 전혀 찾을 수 없었죠. 비밀에 싸인 여의도 벙커의 활용 방안을 놓고 고민하던 서울시는 2015년 간략한 시설을 갖춘 뒤 벙커를 일반에 공개하는 시민 체험 행사를 열었어요. 이때 설문조사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결과 문화시설로 활용하기로 하고 2016년부터 리모델링 공사를 했습니다. 지난 10월 19일 정식 개관한 SeMA 벙커에 전민주 소중 학생기자가 찾아가 봤습니다.  
SeMA 벙커는 개관전 '여의도 모더니티'를 통해 수많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장소로서 여의도에 주목했다.

SeMA 벙커는 개관전 '여의도 모더니티'를 통해 수많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장소로서 여의도에 주목했다.

 
여의도 환승센터 옆 출입구로 들어서면 좁은 계단 아래 SeMA 벙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송가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 큐레이터가 전민주 학생기자를 반갑게 맞이했죠. 송 큐레이터는 “여의도 지하 비밀 벙커로 알려져 있지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을 맡으며 정식 명칭이 SeMA(Seoul Museum of Art) 벙커가 됐다”고 설명을 시작했어요. 2005년 발견 당시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내시경으로 조사한 끝에 벙커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합니다. 내부에는 무릎 높이로 물이 차 있었고, VIP실(20평)에는 소파와 화장실·샤워실, 대기실(180평)에는 단상 같은 지휘대와 화장실 외에 이렇다 할 시설은 남아있지 않았죠. “시민들의 의견에 따라 전시공간으로 바꾸며 대기실 벽은 하얗게 둘렀지만, VIP실(역사갤러리) 벽은 당시 타일을 살렸고 바닥 역시 그때 그대로”라는 송 큐레이터의 말에 전민주 학생기자는 바닥을 유심히 살펴봤어요.  
전민주 소중 학생기자가 김남수 작가의 '엑소트로피아'를 보고 있다. 비디오아트에는 작가가 찍은 벙커 사진과 영상도 포함됐다.

전민주 소중 학생기자가 김남수 작가의 '엑소트로피아'를 보고 있다. 비디오아트에는 작가가 찍은 벙커 사진과 영상도 포함됐다.

 
SeMA 벙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대기실은 전시장이 되어 문화시설이 부족한 여의도에 동시대 현대미술을 알리는 역할을 해요. 개관 기획전 ‘여의도 모더니티’가 11월 26일까지 열렸죠. 송 큐레이터는 “대한민국과 서울의 근현대 발전 과정의 중심에 여의도가 있던 시기를 조명하고, 벙커가 지어지고 발견된 상황 등을 고려해 사진·사운드·영상 등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전시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여의도 비행장에서부터 1971년 국군의 날 첫선을 보인 5.16 광장을 거쳐 현재 여의도 공원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연작이 눈길을 끌었죠. 군사적·정치적 공간에서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어온 여의도의 모습과 벙커가 겹쳐 보이는 듯합니다.
역사갤러리에서 송가현(왼쪽) 큐레이터가 전민주 학생기자에게 벙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역사갤러리에서 송가현(왼쪽) 큐레이터가 전민주 학생기자에게 벙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VIP실은 역사갤러리로 바뀌었습니다. 사진·영상 등을 통해 벙커와 여의도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하죠. 서울시는 벙커에 대한 단서를 항공사진에서 찾았어요. 1976년 사진에는 없던 벙커 출입구가 1977년 사진에 나타나 1976년 말에서 1977년 초 만든 것으로 추정하죠. 송 큐레이터는 "1978년 5.16 광장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열을 한 단상 밑이 벙커 출입구 위치"라며 "중요한 행사 때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대통령 등 VIP 요인들의 대피시설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설명했어요. "당시는 냉전시대였고, 대통령이 대피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걱정하던 시기"라고 덧붙였죠. 1978년 국군의 날 행사 사진을 보던 전민주 학생기자는 “그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얼마나 위협받고 있었을까 압박감이 보이는 듯하다”며 “하지만 만약 위협을 받았을 때, 그 자리에 있던 국민들이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죠. 벙커는 그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됐어요.
1978년 5.16 광장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 사진. 단상 아래로 지하 벙커 출입구가 위치한다.

1978년 5.16 광장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 사진. 단상 아래로 지하 벙커 출입구가 위치한다.

 
역사갤러리 안쪽에는 당시 설치됐던 세면대와 좌변기도 놓여 있는데요. 현재 SeMA 벙커에는 화장실이 없어 주변 시설을 이용해야 합니다. 2016년 리모델링 공사 진행을 맡았던 김선배 서울시 안전총괄과 주무관은 “당시에도 정화조 시설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만약 사용했다면 내부에서 오물을 따로 모아서 버리는 식으로 처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죠. 이어 “오래된 구조물이라 충격 및 손상 등이 우려됐으며, 최대한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따로 공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역사갤러리 중앙에 놓인 소파 역시 발견 당시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복원한 거예요. 벙커가 얼마나 견고하게 지어졌는지 보여주는 코어 조각도 있습니다. 지표면에서 2.2m 아래 위치한 이곳의 천장·바닥·벽 모두 50㎝ 두께의 콘크리트로 이뤄져 외부 폭격을 피하기 위한 용도임을 추정할 수 있죠. 
조사 당시 무릎 높이로 물이 차 있던 대기실의 모습. [사진=서울시]

조사 당시 무릎 높이로 물이 차 있던 대기실의 모습. [사진=서울시]

 
벙커가 미술관이 된 국내 첫 사례인 SeMA 벙커에는 개관 후 한 달간 하루 평균 500여 명이 찾아왔습니다. 송 큐레이터는 “우리나라 땅에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장소였던 이곳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그 공유 공간에서 문화예술을 함께 향유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죠. “SeMA 벙커 개관 기획전은 끝났지만 12월 7일부터는 새로 ‘비전 온 비전’이라는 영상 전시가 열린다”며 “앞으로는 벙커가 가진 공간·시간적 상황을 넘어 다양한 전시를 선보일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학생기자 취재 후기
전민주(경기도 광명중 1) 학생기자
"SeMA 벙커는 정치적·군사적 안전성을 생각해 만들었다고 하지만, 알려진 내용도 없고 공적인 문서도 없어 항공자료로 찾아냈다는 점만 해도 수상하고 비밀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죠. 어쩌면 와보지 못했을 곳에 오게 돼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아요. 개관 기획전은 끝나서 아쉽지만 다음 또 그다음 전시도 살펴보고 싶다는 기대감이 생겼죠. SeMA 벙커처럼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공간들이 많이 발견되어 우리나라의 역사에 기록됐으면 해요."
 
글=김현정 기자 hyeon7@joongang.co.kr, 사진=송휘성(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전민주(경기도 광명중 1)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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