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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점포ㆍ폐공장 등 도심 흉물의 화려한 부활

부산 서동미로시장 안 서동예술창작공간 앞에서 펼쳐진 '1평 콘서트'. 송봉근 기자

부산 서동미로시장 안 서동예술창작공간 앞에서 펼쳐진 '1평 콘서트'. 송봉근 기자

 지난달 29일 부산 금정구 서동미로시장. 판소리 춘향가가 가야금 선율에 얹혀 전통시장 깊숙이 울려 퍼졌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행사 중 하나로 서동예술창작공간 앞에서 열린 ‘1평 콘서트’였다. 이날 시장 안에선 ‘빈 집 아트’ 프로젝트도 펼쳐졌다. 비어있는 점포 두 곳과 상가 내 빈 공간을 영화관ㆍ전시관ㆍ체험관 등으로 꾸며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말순(71)씨는 “이런 프로그램들 덕에 시장을 오가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상가 주변이 깨끗해졌다”고 말했다.
 
#도시재생 물꼬 트는 문화 거점
낙후된 도시를 되살리는데 문화가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구도심 내 유휴 공간을 재활용해 조성한 문화 공간이 지역 재생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서동미로시장이 있는 부산 서동은 1960년대 철거민 정책 이주 지역으로, 70년대 금사공단이 들어서면서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번창했던 지역 경제는 IMF 외환위기 이후 금사공단 쇠퇴로 내리막길을 걸었고, 인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 빈 집과 빈 점포가 늘어났다.  
 
지역 경제가 쇠퇴하면서 문 닫는 점포가 늘어난 서동미로시장 상가. 서동예술창작공간이 앞장서 빈 점포를 활용한 '빈집 아트' 사업을 벌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역 경제가 쇠퇴하면서 문 닫는 점포가 늘어난 서동미로시장 상가. 서동예술창작공간이 앞장서 빈 점포를 활용한 '빈집 아트' 사업을 벌이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 서동미로시장 빈 점포를 전시장으로 꾸민 '빈집 아트'. 송봉근 기자

부산 서동미로시장 빈 점포를 전시장으로 꾸민 '빈집 아트'. 송봉근 기자

 
시장 안 골목에 자리 잡은 서동예술창작공간은 방치돼 있던 회센터 건물을 개조해 2012년 문을 연 곳이다. 5년 넘게 쓰레기 더미만 쌓여있었던 2층 건물을 부산시와 금정구청이 10년 장기 임대해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1층에는 갤러리와 작은도서관 등이 들어섰고, 2층은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공간으로 변신했다. 이곳에서 전시회와 공연, 예술 교육ㆍ체험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면서 시장 분위기는 한결 활기차졌다. 운영을 맡은 금정문화재단의 이동용 창작사업팀장은 “이런 생활밀착형 문화 시설이 오페라하우스 같은 대형시설보다 지역 주민들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서동예술창작공간의 활동 반경은 시장 울타리를 넘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오는 15∼30일엔 시장 인근 빈 집 두 곳에서 미술 전시회를 여는 ‘마을미술관’ 사업도 진행한다. 전시회에 참여하는 설치미술 작가 박민경(24)씨는 “서동 지역이란 공간과 호흡을 맞춘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콘텐트’ 폐공장의 변신
폐산업시설의 활용 과정에서도 문화의 효용은 두드러진다. 산업화ㆍ도시화에 따라 용도폐기된 건축물들은 도심의 흉물로 방치돼 철거 대상으로 거론되기 일쑤다. 하지만 폐산업시설이 그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를 담고 있는 문화콘텐트로 활용되면 도시재생의 중심축 역할을 톡톡히 한다. 고려제강 폐공장 건물을 개보수해 만든 부산 ‘F1963’, 쓰레기 소각장을 융ㆍ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새단장한 ‘부천아트벙커 39’,  서울 마포 석유비축기지를 재생시켜 만든 ‘문화비축기지’ 등이 그 사례다. 또 서울 아현동 ‘행화탕’, 경기도 시흥 시화공구상가 지하 목욕탕,  대구 ‘문화장’ 등 문 닫은 목욕탕들도 독특한 분위기의 공연장ㆍ갤러리 등 문화 활동 공간으로 재활용돼 인기를 끌고 있다.
 
버려진 석유비축기지를 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킨 서울 '문화비축기지'. [중앙포토]

버려진 석유비축기지를 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킨 서울 '문화비축기지'. [중앙포토]

문 닫은 목욕탕을 문화 공간으로 재활용하는 서울 아현동 '행화탕'. [중앙포토]

문 닫은 목욕탕을 문화 공간으로 재활용하는 서울 아현동 '행화탕'. [중앙포토]

 
폐공장을 리모델링한 부산 'F1963'의 커피점. 공장 건물의 원형을 그대로 살렸다. [중앙포토]

폐공장을 리모델링한 부산 'F1963'의 커피점. 공장 건물의 원형을 그대로 살렸다. [중앙포토]

1963년부터 와이어로프 공장이었던 ‘F1963’는 2008년 6월 생산시설을 양산으로 이전하면서 한동안 방치됐었지만, 지난해부터 문화 공간으로 본격 개발되고 있다. 지난해 9월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됐고, 현재 커피점과 서점ㆍ원예점 등이 들어와 있다. 전시ㆍ공연장은 오는 30일 개관을 목표로 리모델링 중이다. ‘F1963’ 조성 사업을 지원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박종달 지역문화정책과장은 “낙후된 도심 환경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부족한 문화공간을 확충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인근 지역이 아파트로 재개발되면서 6년 동안 문을 닫았던 '행화탕'은 지난해초 카페와 공연ㆍ전시장을 갖춘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올 5∼10월 '행화탕' 에서 문화가 있는 날 지역특화 프로그램 '예술로 목욕하는 날'을 진행한 서상혁 대표는 "과거와 현재가 섞여 있는 이 공간의 특수성 덕에 창작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관객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지난달 '2017 세계문화대회'가 열린 충북 청주 옛 연초제조창. [중앙포토]

지난달 '2017 세계문화대회'가 열린 충북 청주 옛 연초제조창. [중앙포토]

한때 국내 최대 담배공장이었으나 2004년 문을 닫은 충북 청주 연초제조창도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으로 맹활약 중이다. 공예비엔날레ㆍ세계문화대회ㆍ젓가락페스티벌 등 국제적인 문화행사를 유치했을 뿐 아니라, 최근엔 방탄소년단의 ‘낫 투데이’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달 세계문화대회 참석차 방한한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공공예술 디렉터 데브라 시몬(59)은 행사장인 옛 연초제조창에 대해 “환상적인 공간”이라고 감탄하며 “도시재생에서 역사가 있는 공간을 지키고 다시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ㆍ서울ㆍ청주=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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