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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가치+독특한 콘텐트 한류 전파, 기업들이 나설 때

[경영, 인문학에 길을 묻다]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영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한 장면.

영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한 장면.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변방에 있던 독일문학을 일약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를 옮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문호다. 19세기 초반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매료되어 이집트 원정 때 병영에서 열독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프러시아를 점령한 후 작가 괴테를 초대하여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자유’ 코드 내재된 괴테 작품
유럽인 호응 얻으며 ‘獨流’ 형성
한류도 지속적 성장 위해선
공감 이끌어 낼 콘텐트 늘려가야
기업의 한국문화 보급 역할 중요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시대의 산물이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괴테가 살았던 시대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에커만과의 대화』에 실린 괴테의 증언이다.
 
“나는 1749년에 태어나 80대 노인이 된 오늘까지 혼란과 격변의 시기에 살게 해 주신 신에게 오히려 감사하네. 나는 생후 6세에 리스본 대지진을 겪었고, 10대 청소년 시절, 7년 전쟁이 발발하여 프랑스군이 나의 고향 프랑크푸르트를 점령하는 것을 겪었으며, 20대에 ‘질풍과 노도’의 시대에 자유를 갈구하며 정신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 30대에는 바이마르공국에 스카우트 되어 고위관료를 하면서 현실 정치에도 몸을 담았었지. 40대에 프랑스 대혁명을 겪었으며, 50대에는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천년 역사의 우리 신성로마제국이 무너지는 것도 목격했어. 그때 나는 유럽의 지배자 나폴레옹을 세 번이나 만났어. 그 후 나폴레옹도 패전으로 몰락하자 절대군주들이 과거 반동정치로 회귀하려고 했지만 국민들의 힘에 의해서 권력자들이 권좌에서 쫓겨나고 온 유럽에 자유의 물결이 휩쓸고 가는 역동적 역사의 현장에 나는 있었어.”
 
 
자유 갈구 시대 분위기에 영향 받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초판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초판본

괴테가 20대 청년시절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8세기 후반, 무렵 ‘질풍과 노도(Sturm und Drang)의 시기’ 대표작이다. 당시 유럽은 절대주의 왕정에서 계몽시대로 이행해 가는 과도기였다. 이 시기의 유럽국가들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는데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괴테는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로 시대의 부조리에 저항을 시도했다. 그는 당시에 금기시되었던 주제들을 작품 속에 과감히 다루어 독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괴테는 절대왕정의 압제를 받던 시민들에게는 ‘해방자’로 다가온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 베르테르(Werther)는 우울증을 치료할 목적으로 자연경관이 뛰어난 발하임이라는 소도시를 찾는다. 그는 무도회에서 멋진 춤 솜씨를 가진 쾌활한 여인 샤를로테(Charlotte, 애칭으로 Lotte)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로테가 자신과 지적 감성과 성격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느낀 베르테르는 로테와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녀에게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윤리적인 판단과 이성에는 거슬리지만 로테를 만나고 싶은 일념 하나로 계속해서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어느새 둘 사이에 애정이 싹트게 된다.
 
그 사이 알베르트가 출장에서 돌아오게 되고, 베르테르는 깊은 실의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둔 채 로테를 위해서 알베르트와 친분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결과와 형식만을 중시하는 알베르트가 로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베르테르는 그녀에게 점점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 베르테르의 생일날 로테가 그를 찾아와 선물을 전하게 되고 베르테르는 그것을 사랑의 징표로 생각하고는 열정적인 사랑에 사로잡힌다. 알베르트와 로테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베르테르는 훌쩍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돌아온 베르테르에게 알베르트와 로테가 결혼했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다시 만난 로테는 왠지 베르테르를 차갑게 대했다. 그러나 서먹했던 관계도 잠시뿐 그들은 다시 예전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어 시와 음악으로 서로의 감성을 교류한다. 점차 감정의 자제력을 잃어 가는 베르테르는 한때 로테를 사랑하다 미쳐 버린 청년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고 베르테르는 그를 동정하는 동시에 암울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로테를 찾아간 베르테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로테는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히 작별 인사를 건넨다. 절망에 빠진 베르테르는 여행을 빙자하여 알베르트에게 호신용 권총을 빌리게 되고 로테의 손에 의해 건네진 그 총으로 목숨을 끊고 만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귀족과 평민 간 신분의 벽을 허무는 사랑, 유부녀와의 불륜, 자살 등 당시에는 금기시되어 있던 소재들을 과감히 다뤘다. 이 소설은 주인공들의 내면의 섬세한 감정을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으로 디테일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감상적인 젊은층 사이에 폭발적인 인가를 끌었다. 단순히 실연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봉건적인 인습과 귀족사회의 통념을 배격하고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고 자유를 되찾으려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베르테르가 입었다는 푸른색 프록코트와 노란 조끼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의상이 되었고, 괴테가 전혀 예상하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흥분한 젊은이들이 베르테르를 따라 자살하는 ‘베르테르 신드롬’ 이라는 모방 자살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독일 적국 사령관 나폴레옹도 괴테 존경
괴테의 초상화

괴테의 초상화

우리나라의 한류가 지금 동남아는 물론, 문화강국인 유럽에까지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사람들은 일시적인 현상으로서 언젠가는 사그라진다고 진단하기도 하고, 잘 관리하면 지속가능하게 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21세기 한류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18세기에 활동한 괴테와 그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고 있다. 괴테는 당시 세계인들을 열광시킨 ‘독류(獨流·German waves)’의 주역이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는 한류의 미래를 위한 길라잡이가 될 만한 코드가 숨겨져 있다.
 
먼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는 당시 유럽의 정치와 사회가 처한 시대적 코드가 내재되어 있다. 그 코드는 바로 ‘자유’ 였다. 괴테의 작품에는 자유를 갈구하는 평민들과 청년들의 모습이 절제되어 보여지고 있다. 사랑과 불륜, 그리고 자살로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은 단순히 권위에 대한 도전과 반항이라는 과거의 폐습 타파에 그치지 않고 ‘자유를 향한 갈구’라는 미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던 귀족의 특권과 통치자들의 규범은 타파되고 언젠가는 남녀가 신분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만나 사랑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비전과 기대가 녹아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는 코스모폴리탄적 가치관이 들어 있다. 자유뿐만 아니라, 정의, 사랑, 인권 등 국적과 인종, 문화권을 초월하는 인류보편적 가치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국경을 초월하여 이 작품에 열광했던 것이다.
 
괴테가 일으킨 독류에는 문화적 컨텐트가 차고 넘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외에도 인간의 방황과 구원이라는 인류보편의 주제를 다룬 『파우스트』, 한 인간의 깨달음과 수련, 성장과정을 다룬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등은 독일이라는 국경을 넘어 당시 유럽인들을 감동시켰으며 이들은 괴테가 생산한 문화상품에 대해 열렬히 구매할 뿐만 아니라 충성도가 매우 강했다. 심지어 적국의 사령관 나폴레옹도 독일인 작가 괴테를 만나 존경을 표했을 정도였다.
 
최근 우리 학계에는 한류가 ‘한국산 문화’인가, 아니면 ‘한국적인 문화’인가라는 논쟁이 점화되고 있다. 괴테의 경우를 살펴보면, 괴테의 작품에는 유럽의 보편적 가치가 강하게 녹아있는데, 이러한 보편적 가치라는 기초 위에 독일 특유의 문화 컨텐트와 스토리텔링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그래서 독류는 오늘날에도 세계의 문화애호가들의 자발적인 충성도를 이끌어 내고 그 흐름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K-pop과 한식 등 한국의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한류가 영국과 독일의 경우처럼 문화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글로벌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특유하면서도 세계인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컨텐트가 차 있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근대사에서 열강들의 침탈과 일제의 강점, 그리고 해방직후의 혼란과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삶을 겪으면서도 이를 극복해 온 국민으로서 세계인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독일 못지않은 컨텐트 강국이 충분히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국가 홍보와 상업적 수익추구라는 이해관계가 개입하면서 컨텐트 개발 작업이 갈 길을 잃고 지지부진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전 세계에 진출해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한류문화의 전파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혐한’을 극복하고 상업적 이익을 초월하여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가운데 감정적인 유대를 형성하여 한국문화를 보급하는 일을 민간 기업들이 담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성국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서울대 인문대 졸업,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박사, 베를린 자유대 등 객원교수 역임. 대한리더십학회 초대 회장, 한독경상학회·한국인사조직학회 및 아시아-유럽미래학회 회장, 한국경영대학·대학원협의회 이사장. 『인적자원관리 5.0』『모멘트 리더십』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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