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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만들고 투명도 조절하는 스마트 유리창 시대 온다

[도시와 건축] 유리 이야기
영국 스태퍼드셔주에 있는 리치필드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다양한 색상의 작은 유리조각들을 밀랍으로 연결해 유리창을 만든 것이 스테인드글라스다. [AP=연합뉴스]

영국 스태퍼드셔주에 있는 리치필드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다양한 색상의 작은 유리조각들을 밀랍으로 연결해 유리창을 만든 것이 스테인드글라스다. [AP=연합뉴스]

영화 ‘쿼바디스’를 보면 재미난 장면이 나온다. 로마를 불태워버릴 정도로 광기가 있는 네로황제가 울면서 자신의 눈물이 귀하다며 작은 유리병에 눈물을 담는 장면이다. 영화의 이 장면처럼 로마시대에도 유리를 사용했다. 유리를 나타내는 ‘glass’란 말의 라틴 어원은 ‘glaesum’으로 보석 중 하나인 ‘호박’을 지칭한다. 고대부터 ‘유리’는 투명하고 빛나는 물질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돼왔다.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3000년께부터 돌구슬에 유리질 유약을 사용하였으며, 기원전 1350년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유리 제조공장의 유적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고대에는 백색모래를 절구로 갈아서 질산칼륨과 섞은 다음 용광로에서 ‘함모니트룸’이라고 불리는 덩어리를 만들고 이를 다시 녹여서 백색의 유리 덩어리를 만들었다. 이 같은 고대의 유리는 지중해와 서아시아지역에서 제조되어 사용되었다. 기원 전 1500년께 만들어진 유리는 주로 화려한 색상의 유리구슬형태이다. 이때의 유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투명한 유리가 아니고 불투명하고 색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오히려 타일에 가까운 느낌이다. 기원 전 1세기 무렵에는 빨대 같은 막대기에 유리를 두고 입으로 불어서 유리병 모양을 만드는 ‘대롱불기기법’이 시작되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이 기법을 통해서 유리제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빛 투과 특성 지닌 특별한 재료
고딕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컬러 시청각 성경 자료 제공

판유리 보급되며 유리창 퍼져
너무 많이 써 사생활 노출 논란도
열손실보다 온실효과가 골칫거리

 
유리는 빛을 투과시킨다는 물질적인 특징 때문에 건축에서는 오래전부터 특별하게 사용돼 왔다. 그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고딕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이다. 유리는 불순물이 들어가게 되면 색상을 띤다. 예를 들어서 철분성분이 많아지면 녹색의 유리가 된다. 중세시대의 기술력으로는 투명한 판유리는 만들 수 없었고 다양한 색상의 작은 유리조각들을 밀랍으로 연결해서 유리창을 만든 것이 스테인드글라스다. 이때 채색을 한 그림을 그려서 사용하였다. 당시에 문자는 극히 일부 특권층의 권력의 근원이었다. 책들은 모두 필사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서 일반 대중은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일례로 성경책 한 권의 가격은 작은 농장 12개 정도의 가격이었다. 책을 만드는 일은 대부분 수도원에서 했고 성직자들과 일부 귀족만 글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종교집단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극동아시아의 경우에는 성경책 대신에 공자와 맹자의 서책들이 그 역할을 하였다. 옛 선현의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양반들만이 권력에 접근 가능했던 것이다.
 
 
종교건축 통해 권력창출 역할
이처럼 과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맹으로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성경책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림이나 조각이 사용됐고 성경책 속 일화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는 일종의 극장처럼 컬러 시청각 자료를 제공해주는 도구였다. 이처럼 유리는 종교건축을 통해서 권력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유리가 스테인드글라스라는 형식으로 건축과 미디어에 큰 역할을 하였지만 그 당시에도 대부분의 건축물에는 유리가 사용되지 않았다.
 
인간은 주광성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빛은 필수적이다. 건축물의 실내공간에 빛을 들이는 기능은 창문이 한다. 빛을 투과시켜서 들어오게 하는 유리가 창문에 도입되기 전에는 기후대와 문화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창문이 나타났다. 더운 건조기후의 중동이나 인도에서는 창문은 개방돼 있고 햇볕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스크린 형태의 창문이 발달했다. 중동 지방의 아라베스크 문양의 창살은 바람은 창살 사이로 들어오게 하면서도 더운 직사광선은 막아주고 햇빛은 난반사시켜서 안으로 들어오게 해준다. 추운 날씨가 있었던 중세 유럽의 경우에는 창문은 나무문으로 만들어져서 밀폐가 되어야 했다. 빛이 들어오게 하려면 춥더라도 나무문을 열어야 했다.
 
동양의 경우에는 창문이 훨씬 더 과학적이었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종이가 발명되어 유리가 없던 시절에도 종이를 이용해서 창문을 만들었다. 나무로 창살틀을 만들고 그 위에 종이를 붙여서 만든 창호지 창문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창호지 창문은 문을 닫은 상태에서는 바깥 경치를 볼 수 없지만 종이를 통해서 빛은 투과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추운 날씨에 문을 닫고 있어도 햇빛이 방에 들어오게 하여 밝은 실내 환경을 얻을 수 있었다. 창호지 창은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창문을 부의 상징으로 간주, 창문세 부과
프랑스 파리 서쪽 라데팡스 지역의 한 빌딩이 다른 빌딩 유리 외벽에 비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서쪽 라데팡스 지역의 한 빌딩이 다른 빌딩 유리 외벽에 비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금은 ‘창’과 ‘유리창’을 거의 동의어로 볼 정도로 창문은 당연히 유리로 만들어진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 유리창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 르네상스 이후에 유럽에서 판유리가 보급되면서 유리 창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유리는 귀한 건축 재료였기 때문에 돈이 많은 귀족들에게도 사용하기 어려운 재료였다. 그래서 국가는 세금 징수의 한 방법으로 창문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영국은 집안에 난로의 개수를 이용해서 세금을 매겼다. 난로가 많으면 세금도 많이 징수했다. 하지만 난로는 집안에 들어가야 숫자를 셀 수 있었기 때문에 세금을 징수하기에는 여간 불편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영국은 1696년부터 난로세를 폐지하고 창문세를 도입하였다. 유리창은 제작하기 비싸기 때문에 집에 창문이 많으면 부자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유리창의 숫자에 따라서 세금을 징수했는데, 여섯 개까지는 면세였고, 일곱 개부터 차등적으로 중과세했다. 이러한 제도는 주택세가 나오기 전까지 150년 동안 시행이 되었다. 창문세를 시행하던 시기에 사람들은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서 창문을 없애고 벽으로 만드는 일들도 생겨났다. 창문이 없으니 채광과 통풍이 안 되어서 위생이 나빠지고 전염병이 돌기도 했다. 그 밖에도 시민들은 햇볕을 받지 못해서 우울증을 앓기도 하였다.
 
 
산업화의 산물로 쇼윈도 등장
그러한 시기를 거쳐서 유리가 창문에 본격적으로 대량 도입이 된 것은 근대 산업혁명 이후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물건들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도시로 모여들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거주하였고 공산품은 대량생산되었다. 공장에서 양산된 물건들은 팔려야 했다. 그래서 생겨난 건축 장치가 ‘쇼윈도’이다.
 
이 당시에는 자동차가 보급되어서 도로의 중앙에는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가 차지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느린 시속 4km의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건물 옆으로 밀려났다. 밀려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도’가 생겨났다. 인도는 자동차보다 20cm가량 높다. 이 높이는 일반적으로 직경이 50cm 정도의 바퀴를 가진 자동차가 쉽게 올라가지 못할 정도의 높이다. 인도가 20cm보다 더 높으면 자동차 문을 열 때도 불편하고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갈 때에도 계단이 하나 더 필요해지기 때문에 20cm 정도가 적당했다. 사람들은 건물에 가깝게 붙은 인도 위를 줄 지어서 걷기 시작했고, 인도 위를 걷는 사람들에게 가게 안의 물건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 1층 벽면을 최대한 투명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유리창을 크게 키운 쇼윈도다.
 
흑백 기록사진을 보면 높은 천정의 자동차매장이 거대한 투명유리의 쇼윈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리창을 최초로 사용한 건물은 1883년에 완공된 일본공사관 건물이다. 구한말 충무로와 종로의 상권을 일본인이 가져간 것도 유리창 쇼윈도 때문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유리창은 보통 투명하기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투명한 동시에 비치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리를 걷다가 쇼윈도 너머의 물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유리창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도 자주 쳐다본다. 일종의 나르시시즘을 유발하는 건축 재료가 유리창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건축에서 유리창이 지나치게 많이 사용되어서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몇 년 전 부산의 한 호텔의 벽면이 모두 유리여서 가까이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의 주민들이 호텔의 내부가 너무 들여다보인다고 민원을 제기한 사례도 있었다. 에너지적인 측면에서 유리창은 에너지 소비의 주범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단열이 안 되어 유리창으로 열이 모두 빠져나가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판유리 사이에 아르곤 가스를 넣은 복층유리가 나와서 단열이 크게 향상되었다. 과거 전도를 통해서 열 손실이 많았던 알루미늄새시 창틀 역시 창의 바깥쪽 창틀과 안쪽 창틀을 분리시키고 그 사이에 열 절연재인 고무재료를 넣은 단면으로 디자인되어 단열성이 극대화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유리창의 문제는 겨울철의 열손실보다는 여름철의 온실효과가 더 큰 문제다.
 
 
5000년 이상 진화해 온 유리
유리는 5000년 넘게 계속해서 진화·발전해왔다. 최근에는 밖에선 안보이고 안에서만 보이는 유리, 반사가 전혀 없어서 완전히 없어 보이는 유리, 전기를 흘려서 투명한 유리를 불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유리도 있다. 네덜란드 건축가 MVRDV는 유리덩어리로 투명한 벽돌을 만들고 시멘트 모르타르대신에 투명본드를 이용해서 건물의 입면을 만든 사례도 있다. 현재의 3D프린트 기술로는 투명한 재료까지 프린트가 가능하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에 건축을 3D프린트로 만든다면 지금처럼 공장에서 제작한 판유리를 가지고 와서 창틀에 끼우는 대신 3D프린터로 직접 투명한 유리창을 프린트해내는 날이 곧 올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보다도 더 기대되는 것은 태양광발전을 하는 투명한 유리창이다. 현재의 기술로도 약간의 발전이 가능한 투명유리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효율성이 떨어져서 상용화되고 있지는 않다. 조만간 효율성이 향상되면 우리의 모든 유리창이 전기를 발전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고 때로는 영상을 보여주는 스마트 유리창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더욱 다이내믹하고 풍성한 건축과 도시를 보게 될 것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아테나움 건축상, 아시아건축가협회 건축상 등을 수상했고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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