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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모텔에선, 두드려도 답 없으면 바로 문 땁니다

도숙자(賭宿者) 리포트 <중>
< 글 싣는 순서 >
<상> 엘리트 무용수 출신 사업가의 몰락
<중> 죽어서야 떠나는 사람들
<하> 한탕 도시를 관광 명소로
카지노가 폐장하는 오전 6시에 강원랜드 지하 1층 택시 승강장에는 긴 줄이 생겨난다. 매일 100대 이상의 택시가 이들을 전국으로 실어나른다. [김준영 기자]

카지노가 폐장하는 오전 6시에 강원랜드 지하 1층 택시 승강장에는 긴 줄이 생겨난다. 매일 100대 이상의 택시가 이들을 전국으로 실어나른다. [김준영 기자]

지난 3월 16일 강원도 정선군의 호텔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남 장성군에서 건설업을 하던 안모(37)씨였다. 그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쪽지가 나왔다. ‘미안하다. 도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한다.’ 짤막한 유서였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자살로 판정했다. 조사에 따르면 숨지기 1년 전에 강원랜드에 들렀던 게 비극의 원인이 됐다. 그는 이후 그곳을 자주 오가며 약 25억원을 잃었다.
 
안씨의 죽음은 ‘재산 탕진 후 자살’이라는 뚜렷한 인과관계가 확인된 경우다. 경찰은 유서나 메모 등으로 죽음을 선택한 원인을 도박으로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만 ‘도박 자살자’로 분류한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최근 강원경찰청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카지노 도박 때문에 정선경찰서 관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는 61명이다. 연평균 6명꼴이다.
 
정선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관할 지역의 자살자를 포함한 변사자가 54명이다. 그중 자살자는 21명이다. 정선군 인구(약 3만8000명) 1만 명당 변사자, 자살자는 각각 14.2명, 5.5명이다. 지난해 전국의 변사·자살자 수 평균인 1만 명당 6.0명, 2.5명과 비교하면 둘 다 두 배가 넘는다.
 
21명 중 도박에 의한 자살로 분류된 이는 한 명뿐이다. 나머지 20건의 자살 중 상당수가 도박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어 ‘신병비관’ 등으로 기록돼 있다. 정선경찰서 관계자는 “외지인이 빚과 생활고에 쪼들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는 십중팔구 도박이 원인이겠지만 대부분 그렇게 구분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강원도 정선군 일대를 돌아다니는 도박자 상담 버스에 강원랜드 측에 자살자 문제 대응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하준호 기자]

강원도 정선군 일대를 돌아다니는 도박자 상담 버스에 강원랜드 측에 자살자 문제 대응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하준호 기자]

안씨가 숨지기 20여 일 전에도 비슷한 사망 사건이 있었다. 정선군 사북읍의 한 모텔에서 최모(44)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에서 파악된 것은 그가 2010년에 스스로 강원랜드에 출입금지를 신청했다는 사실 정도다. 유족을 찾을 수 없어 경찰은 ‘행방불명자 자살’로 분류하며 조사를 끝냈다. 그의 죽음은 도박에 의한 자살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씨의 주민등록지는 부산시 당감동이었다.
 
정부 통계가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고요한 죽음’들은 정선군 주민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일이 돼 있다. 지난 8일에 만난 한 정선군 주민은 “근처 모텔이나 차 안에서 도박꾼이 자살했다는 소문은 잊을 만하면 들려온다”고 말했다. 사북읍에서 15년째 전당포를 운영 중인 한 주민은 무심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정선에서 사람 죽은 게 기사가 되나요? 이 동네에선 외지인 누가 죽었다 해도 별로 관심이 없어요.”
 
이 지역 모텔이나 공공 화장실에는 ‘슬픈 관행’이 생겼다. 주인이나 관리인이 문을 두드렸을 때 답이 없으면 곧바로 문을 강제로 연다. 사북읍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송모씨는 “우리 모텔에서도 몇 년 전 봄에 자살을 시도한 남자가 있었다. 한동안 안 나와서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약을 먹고 쓰러져 있어 바로 119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정선군에서 만난 ‘도숙자’ 김모(69)씨는 “카지노를 오가며 만나 친해진 아우가 얼마 전부터 농약을 갖고 다녔는데 최근에 안 보이네. 죽었나 봐”라고 말했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100일 이상 카지노를 출입한 ‘강박적 고객군’ 수는 2174명이다. 직장인이 연 100일 이상 출입하려면 매 주말 2~3일을 ‘출근’해야 한다. 이들은 정선군에서 ‘랜드 출퇴근족’이라 불린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출퇴근족의 집결지는 강원랜드 부근의 택시 승강장과 고한사북시외버스터미널이다. 카지노 폐장 시간인 오전 6시쯤에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이들로 북새통이 된다. 근처에서 만난 60대 남성은 “나도 처음엔 출퇴근족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출퇴근을 하다 여기에서 잃은 돈이 수십억은 돼. 집 잃고, 가족 잃고, 여기에 너무 빠져버렸어”라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도박 중독 상담을 하는 방은근 목사는 “출퇴근족 대부분은 자신이 이미 도박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말했다.
 
강원랜드는 출입 일수 한도(한 달 15회)를 두 달 연속으로 모두 채우거나 본인 또는 가족이 요청하면 카지노 출입을 제한·정지시킨다. 지난해 9551명이 이 명단에 새로 등록됐다. 29일 기준으로 출입 금지자 수는 4만4605명이다. 그런데 정선군 일대에는 이들을 노리는 ‘하이에나’가 있다. 사설 도박장이다. 카지노에 갈 수 없는 사람, 카지노보다 ‘화끈한’ 판을 원하는 사람들이 가정집이나 허름한 사무실에서 도박을 한다.
 
김재훈 강원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 정선분소장은 “이 일대 1000여 명의 도숙자 중 카지노 출입을 정지당한 사람들은 사설 도박장을 이용하며 도박의 끈을 놓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주영 중독심리상담소 ‘회복으로 가는 길’ 소장은 “출퇴근족들은 나중에는 장기 휴가를 내고 카지노에 간다. 결국에는 생업도 포기하고, 심해지면 사설 도박장을 전전한다. 그게 바로 도숙자가 되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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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한영익·김준영·하준호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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