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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부산·울산 제조기업 2세들의 벤처투자 실험

26일 울산 울주군 울산과학기술원에서 부산·울산·경남 지역 중견 제조기업 2세들이 벤처 투자를 위해 의기투합했다. (왼쪽부터)강현석 현대공업 대표, 최영찬 라이트하우스 컴바인 인베스트 대표, 조인호 네오넌트 대표. 송봉근 기자

26일 울산 울주군 울산과학기술원에서 부산·울산·경남 지역 중견 제조기업 2세들이 벤처 투자를 위해 의기투합했다. (왼쪽부터)강현석 현대공업 대표, 최영찬 라이트하우스 컴바인 인베스트 대표, 조인호 네오넌트 대표. 송봉근 기자

“젊은 사람들이 백화점 주차요원으로는 일하면서 연봉이 더 많은 제조업체의 공장에는 오지 않으려 합니다. 전통 제조업을 선호하지 않는 환경에서 앞으로 20~30년을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입니다.” (조인호 네오넌트 대표)
 

국내 첫 중견 제조기업 벤처투자 펀드 조성
15개 부산·울산·경남 제조기업 2~3세 참여
동남권 제조업과 수도권 스타트업 생태계 연결
제조업에 혁신기술 더해 고부가가치 창출 목표
“돈 남아 하는 것 아냐, 엄청난 변화에 직면”
특수필름 업체 리비콘 등 투자, 자신감 보여

“예전처럼 기술 설계부터 상품화까지 우리가 다 하기보다 좋은 회사에 투자해 높은 가치를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회사 내부 역량으로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 아이템을 찾으려 해봐도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웠습니다.” (강현석 현대공업 대표)   
 
급변하는 환경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일은 전통 제조기업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최영찬(37) 라이트하우스 컴바인 인베스트(이하 라이트하우스) 대표는 이런 고민에 빠진 제조기업 경영자와 유망한 스타트업·벤처를 이어주기 위해 지난 3월 벤처캐피털 라이트하우스를 설립했다.
 지난 7월에는 산업은행과 라이트하우스의 파트너인 15개 부산·울산·경남 지역 중견 제조기업이 공동출자해 413억원 규모의 중견기업연합펀드를 만들었다. 중견기업들이 연합해 벤처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든 것은 국내 첫 사례라고 한다. 
동남권 중견 제조기업과 수도권 스타트업을 이어주는 벤처캐피털 라이트하우스 컴바인 인베스트를 설립한 최영찬 대표. 송봉근 기자

동남권 중견 제조기업과 수도권 스타트업을 이어주는 벤처캐피털 라이트하우스 컴바인 인베스트를 설립한 최영찬 대표. 송봉근 기자

최 대표는 “기기용 전선 국내 1위 기성전선(본사 부산), 목공 및 UV 도료 국내 1위 조광페인트(부산), 산업용 파이프 국내 1위 현대알비(울산) 등 각 분야에서 수위를 다투는 전통 제조기업들이 이 펀드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참여 기업들은 모두 2~3세 경영자가 경영한다. 
최 대표 역시 선박용 엔진 부품을 만드는 부산 선보공업 창업주 최금식 회장의 장남이다. 선보공업에서는 사업기획팀 이사를 맡고 있다. 최 대표는 “스타트업·벤처 투자는 성과가 나오기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오너십이 있는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며 “2~3세 경영자들은 해외 경험과 다양한 네트워크를 보유한 데다 현재 본업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 벤처 투자자로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26일 울산 울주군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경영관 8층 라이트하우스 사무실에서 최 대표와 펀드에 참여한 조인호(44) 네오넌트(양산) 대표, 강현석(44) 현대공업(울산) 대표를 만났다. 네오넌트는 차량 변속기 정밀 주조품을 만드는 회사로 조 대표는 이전 회사까지 20년 정도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현대공업은 자동차 시트 내장재 제조회사로 강 대표가 10년 전부터 경영해왔다. 
조인호 네오넌트 대표는 ’제조기업들이 축구선수로 살아왔는데 농구선수를 하라고 하는 것처럼 느낄 만큼 엄청난 변화에 직면해 있다“고 토로했다. 송봉근 기자

조인호 네오넌트 대표는 ’제조기업들이 축구선수로 살아왔는데 농구선수를 하라고 하는 것처럼 느낄 만큼 엄청난 변화에 직면해 있다“고 토로했다. 송봉근 기자

조 대표는 “스타트업·벤처 생태계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형성돼 지역 제조기업이 벤처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며 “라이트하우스의 전문 투자 인력이 전국은 물론 외국에 있는 유망 스타트업·벤처를 발굴, 한 달에 한 번 정보를 공유해줘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트하우스의 투자 인력은 9명이다. 서울·부산·울산·광주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이 벤처캐피털은 전통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혁신기술을 보유한 벤처와 새로운 분야인 핀테크·사물인터넷 같은 기술 기반 벤처에 절반 정도씩 투자한다. 
최 대표는 “각각의 생태계를 형성해 온 동남권의 산업, 수도권의 스타트업, 서울 여의도의 금융 을 연결해 우리만의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강현석 현대공업 대표는 ’지역 중소·중견 제조기업이 유망한 스타트업을 직접 찾아 투자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강현석 현대공업 대표는 ’지역 중소·중견 제조기업이 유망한 스타트업을 직접 찾아 투자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이들은 “청년창업자를 많이 양성하는 것도 좋지만 투자받은 뒤 진정한 사업이 시작된다”며 지속성을 강조했다. 라이트하우스는 수익성보다 기술을 상품화해 얼마나 오래 영위할 수 있을지 중요하게 본다. 이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수십 년 동안 업을 유지해 온 15개 중견 제조기업 경영자들의 안목이 빛을 발한다는 설명이다.
 최 대표는 “대부분 벤처 투자 펀드는 60~70%가 정부 돈이지만 중견기업연합펀드는 80%가 파트너 기업들의 투자금인 데다 피땀 흘려 나온 돈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수익을 내는 데만 급급해 서둘러 회수하거나 ‘투자 게임’을 벌이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연합펀드는 주로 창업한 지 3~7년 된 벤처에 10억~20억원씩 투자한다. 11월 중순 디스플레이 업체 리비콘에 첫 투자를 했다. 이 업체는 전기장 유무에 따라 투명·불투명해지는 필름 PD-LCD를 제조한다. 이 제품은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스카이워크에 설치됐다. 최 대표는 “아직 밝힐 수 없지만 추가로 회사 두 곳에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영찬 라이트하우스 대표(가운데)와 투자자로 참여한 울산·양산 지역 제조기업 2세 경영자들이 지난 2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최영찬 라이트하우스 대표(가운데)와 투자자로 참여한 울산·양산 지역 제조기업 2세 경영자들이 지난 2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최 대표는 선보공업에서 10년 넘게 신사업 투자를 담당해왔다. 그는 “중소·중견기업이 혼자 이 일을 하기엔 제한된 네트워크, 독단적으로 이뤄지는 투자 결정, 투자 후 관리 부재 등의 한계가 있다”며 라이트하우스 설립 이유를 밝혔다. 그는 지난해 2월 선보공업 자본과 개인 자금으로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기관)인 선보엔젤파트너스를 설립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2~3세 경영자들이 돈이 남아 재미로 투자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현업을 유지하기도 빠듯하다. 축구선수로 살아왔는데 농구선수를 하라고 하는 것처럼 느낄 만큼 엄청난 변화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중견기업연합펀드의 성과가 아직 눈에 띄게 드러나진 않지만 선보엔젤파트너스가 55개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이들을 육성하는 것을 볼 때 앞으로 기대가 크다”며 “투자한 기업을 인수합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와 강 대표는 각각 3D 프린팅, 친환경 소재 관련 벤처를 눈여겨보고 있다.
벤처캐피털 라이트하우스는 매월 스타트업, 벤처, 중견 제조기업 경영자들을 초청해 전통 제조업과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연결점을 찾고 있다. [사진 라이트하우스 컴바인 인베스트]

벤처캐피털 라이트하우스는 매월 스타트업, 벤처, 중견 제조기업 경영자들을 초청해 전통 제조업과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연결점을 찾고 있다. [사진 라이트하우스 컴바인 인베스트]

라이트하우스는중견기업연합펀드를 출범하기 전에도 동남권 지역 중견 제조기업이 벤처에 투자할 수 있게 다리 역할을 했다.
최 대표는 “전통 제조기업이 혁신기술을 보유한 벤처와 투자·협업관계를 이뤄 부가가치를 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센서 제어기기 업체인 오토닉스(부산)가 제조용 로봇 플랫폼으로 사업을 고도화하거나, 조광페인트가 특수페인트와 고분자 필름 분야에 진출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등 한두 달 안에 구체적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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