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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힘내라, 이흑산

김효경 스포츠부 기자

김효경 스포츠부 기자

카메룬 난민 출신 프로복서 이흑산(34)이 26일 국제경기 데뷔전을 치렀다. 본명은 압둘라예 아산이다. 일본 선수를 KO로 눕힌 그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이었다. “잘생겼다” “힘내라”는 열렬한 응원에 “고맙다”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그는 카메룬에 남긴 8세짜리 딸이 세상을 떴다는 슬픈 소식을 얼마 전 들었다. 자리 잡는 대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던 피붙이였다. 이날 대전료는 90만원, 그중 절반 정도를 받는다. 주변의 도움으로 한국 챔피언이 됐지만 갈 길이 멀다. 그를 지도해 온 이경훈 관장은 “세계랭커가 돼야 복싱에 전념할 수 있는데 기량·나이를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이흑산은 생계를 위해 복싱선수로 카메룬군에 입대했다. 월급도 없이 구타에 시달리던 그는 2015년 10월 경북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참가차 방한했다가 탈영했다. 난민 신청을 했는데 기각됐다. “송환되면 박해받을 거라는 공포의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사유였다. 복싱 덕분에 이런 사연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 덕인지 지난 7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를 도운 법무법인 APIL의 이일 변호사는 “난민 심사는 엄격하다. 이흑산 선수의 딱한 사정이 널리 보도돼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운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국내에는 수많은 ‘아산’이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10월 통계월보에 따르면 1994년 이후 지난달까지 약 24년간 난민 신청자는 3만82명에 달한다. 난민으로 인정된 건 3%(767명)로 그야말로 바늘구멍 뚫기다. 한시 인도적 체류 허가(1446명)를 합쳐도 10%가 안 된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2015년 집계한 세계 난민 보호율 37%에 한참 못 미친다.
 
난민은 지구촌 전체의 문제다. 지난해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선 사상 처음 난민 선수단이 출전했다. 에게해를 헤엄쳐 건넌 시리아 난민 수영선수 유스라 마르디니(19)는 전 세계를 감동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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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 난민도 급증 추세다. 올해에만 7291명이 한국 거주를 신청했다. 정부의 난민 관련 예산 16억원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이일 변호사는 “(난민을 받아들인다고) 나랏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난민 지위라는 게 ‘한국 정부한테 돈 받는 자격’이 아니라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 정도라는 이야기다.
 
태극 문양 트렁크를 입고 승리한 이흑산은 “카메룬으로 송환됐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내게 살 기회를 준 한국이 고맙다”고 말했다. 피부색이 다르고 한국말도 어눌하지만, 그는 이미 한국 사람이었다.
 
김효경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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