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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서·김원홍 축출한 최용해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어

다시 바뀐 김정은 정권 ‘2인자’
최용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AP=연합뉴스]

최용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AP=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권력구도 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7일 노동당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대규모 인사를 단행한 데 이어 후속 조치들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엔 군 총정치국을 겨눴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최용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시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총정치국 제1부국장을 처벌했다. 총정치국장은 선군정치를 표방했던 김정일 시대에 권력 서열 2위였다. 김정은 시대에도 여전했다. 그런 총정치국장이 처벌된 것은 기존 권력 구도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을 의미한다.
 
이런 동향은 이미 감지됐다. 제2차 전원회의가 끝난 다음 날(10월 8일) 열린 김정일 총비서 추대 20주년 경축대회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경축대회 참석자를 김영남-최용해-박봉주-황병서 순서로 표기했다. 이전에는 김영남-황병서-박봉주-최용해 순이었다. 정치국 상무위원 호명 순서에서 황병서가 기존의 2순위에서 4순위로 밀려났다. 최용해와 자리가 바뀐 것이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고령(89)으로 얼굴마담 격이다. 결국 최용해가 실질적인 권력 서열 2위에 오른 셈이다.
 
김정은이 이번에 총정치국을 겨눈 것은 인민군을 장악하는 마지막 수순으로 풀이된다. 총정치국은 인민군의 당 정치사업 추진, 군 간부 인사, 군사작전 명령서에 대한 당적 통제 등을 맡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총정치국이 군부대에 보내는 정치위원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정치위원은 해당 부대에 파견된 노동당의 대표다. 군사지휘관이 부대를 군사적으로 책임진다면 정치위원은 정치적·당적 책임을 진다. 부대 안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와 어긋나는 작은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그와 비타협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밝혔다.
 
‘총정치국장=군부의 상징’은 김정일 작품
총정치국장을 북한 군부의 상징으로 만든 것은 김정일이다. 1994년에 사망한 김일성이 생존했을 때까지는 인민무력상이 군부의 상징이었다. 그 밑에 양대 권력으로 총참모장과 총정치국장이 있었다. 하지만 김정일이 집권하면서 총정치국장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군부가 언제든지 정권의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총정치국이 군부 동향을 확실히 장악함으로써 군부 쿠데타 등 정권을 위협하는 요소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게 만들었다.
 
김정일이 집권하면서 총정치국장에 앉은 사람은 조명록(1928~2010)이다. 그는 광복 이후 45년 11월 26일 호위총국장을 지낸 전문섭(1919~98)과 함께 김정일을 번갈아 업고 함경북도 옹기항으로 귀국했다. 조명록은 95년 총정치국장에 오른 뒤 사망할 때까지 그 자리를 맡아 김정일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군대를 만들었다. 김정일은 조명록이 사망한 이후 총정치국장에 아무도 임명하지 않고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체제를 유지했다. 총정치국장은 ‘심복 중의 심복’을 임명한다는 방증이다.
 
김정은은 권력을 잡은 이후 지난 6년 동안 군 서열 2위인 총참모장을 5명(이영호-현영철-김격식-이영길-이명수)이나 바꾸었다. 군 서열 3위인 인민무력상도 마찬가지다. 김정각-김격식-장정남-현영철-박영식 등으로 다섯 번 교체했다. 인민무력상의 경우 김일성 집권 46년 동안 5명(최용건-김광협-김창봉-최현-오진우), 김정일 집권 17년 동안 3명(최광-김일철-김영춘)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김정은이 얼마나 수시로 군 수뇌부를 갈아치웠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6년간 군 서열 1위인 총정치국장 자리를 거친 사람은 자신의 심복인 최용해(재임 2012~2014)와 황병서(2014~2017) 단 2명뿐이다.
 
그동안 총정치국은 많은 ‘정치군인’을 배출했다. 대표적 인사가 이번에 처벌된 것으로 알려진 김원홍이다. 그는 2011년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으로 있다가 김정은 정권의 출범과 함께 2012년 4월 국가보위상(한국의 국가정보원장)을 맡았다. 올해 초 숙청됐다가 지난 4월 총정치국 제1부국장으로 복귀했다. 최근 주가를 올리는 박영식 인민무력상과 김수길 평양시 당위원장 등도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출신이다. 김정은이 잦은 교체로 ‘군기’를 잡은 총참모장·인민무력상과 달리 승승장구하던 총정치국 수장들을 이번에 처벌한 데는 인민군을 확실하게 노동당 아래에 두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 대북 소식통은 “군을 검열하던 중 (황병서 관련) 부패 사실이 드러나 처벌이 불가피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은 최용해에게 그 일을 맡겼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최용해의 주도 아래 당 조직지도부가 총정치국의 당에 대한 불순한 태도를 문제 삼아 총정치국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최용해는 지난 대규모 인사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과 당 부장을 추가로 맡았다. 북한은 당 부장을 구체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당 조직지도부장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용해의 위상을 고려할 때 조직지도부장 이외에 마땅한 직책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민군을 노동당 아래 두려는 의도 보여
조직지도부장은 중앙당·군·내각 등 모든 조직에 설치된 당 위원회를 직접 지도하는 자리로 사상 통제와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김일성 동생 김영주(재임 1960~73년)와 김정일 국방위원장(1973~2011년)이 맡았던 자리다. 조직지도부는 본부당·전당·군사·행정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있었다. 군사 부문이 인민군의 3대 조직인 총정치국·총참모부·인민무력성의 당 지도를 담당하고 있다. 최용해가 황병서·김원홍을 처벌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경로를 통해서다. 권력 서열 2위여도 조직지도부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 탈북민 인터넷 신문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는 “총정치국을 지도하는 조직지도부 13과장 앞에서 총정치국장도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군시대를 상징했던 총정치국장이 권력 서열에서 밀려남으로써 선군(先軍) 정치에서 선당(先黨) 정치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선군 정치로 북한이 병영국가라는 이미지가 부각됐고 자신이 군부 독재자라는 프레임에 갇힐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은 여기서 벗어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총정치국장을 누름으로써 군부의 위상을 격하시키고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는 군이 아닌 당(黨)이 중심이다.
 
김정은이 최용해에게 ‘힘’을 실어 주는 이유는 그가 세력이 없고 진정성 있는 조언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 세력을 만들 필요가 없는 항일빨치산 2세로 직언을 서슴지 않아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중요하게 쓰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최용해 부인 강경실은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먼 친척뻘로 만수대예술단 출신이다. 그곳에서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용희를 알게 됐다. 따라서 최용해 부부는 김정은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최용해는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도 소개됐다. 김일성은 “최용해는 자기 어머니 김철호가 서거한 그날도 장례식에 잠깐 참석하고는 인민문화궁전에 나가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성사시키기 위한 국제준비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 나는 그 보고를 받고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적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영원한 ‘2인자’는 없다. 최용해 역시 언제든지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다. 그는 2014년 총정치국장 시절에 ‘군부 내에서 자신의 인맥을 구축해 세력화될 조짐이 있다’는 내용이 김정은에게 보고되면서 지방으로 좌천될 것으로 알려졌다. 장진성 대표는 “최용해는 북한체제의 뿌리인 항일혁명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지만 김영남처럼 그냥 상징적 명예 권력자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권력층 내부에서 언제든지 처벌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장 대표는 “최용해 본인도 이 점을 늘 의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용해 아버지 최현(1907~1982)도 김일성과 각별한 사이였지만, 걸핏하면 사람들을 권총으로 협박하는 데다 여자 문제까지 겹쳐 김일성이 76년 4월 인민군 창건일 관련 회의에서 그를 군벌주의자로 낙인 찍고 인민무력상에서 해임했다.
 
북한 옛 지도부가 최현 전 인민무력상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김정일(왼쪽 넷째)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혼자 머리를 숙이지 않고 정면을 쳐다보고 있다. 왼쪽부터 김일, 김일성, 오진우, 김정일, 이종옥. [사진 노동신문]

북한 옛 지도부가 최현 전 인민무력상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김정일(왼쪽 넷째)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혼자 머리를 숙이지 않고 정면을 쳐다보고 있다. 왼쪽부터 김일, 김일성, 오진우, 김정일, 이종옥. [사진 노동신문]

최현은 김정일과도 애증의 관계였다. 북한이 편찬한 『김정일전』을 보면 74년 2월 노동당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이 당 정치위원이 되면서 후계자로 확정될 때 최현·오진우을 비롯한 항일빨치산 출신이 앞장섰다고 기록돼 있다. 최현은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는 데 1등 공신이었지만 3대 혁명소조운동을 군대에 확산하는 문제로 놓고 갈등을 빚었다. 
 
3대 혁명소조운동은 사상·기술·문화 등 3대 혁명을 청년 인텔리·당 간부를 비롯해 대학 졸업생들이 사회 전반에 파견돼 관료주의·형식주의를 없애는 운동이다. 김일성이 그 지휘 권한을 김정일에게 주었다. 최현은 군부의 독립성과 권위를 내세워 군대에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다. 김정일이 최현을 찾아갔을 때 부대 입구를 지키고 섰던 병사들에게 제지당해 되돌아갔다는 소문도 있다. 노동신문 82년 4월 11일자 4면에 실린 사진이 김정일-최현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최현의 시신 앞에 김일성·김일·오진우·이종옥 등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애도를 표시하면서 머리를 숙이고 있지만, 김정일만 머리를 숙이지 않고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섭섭한 점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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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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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