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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메르켈 연정 구성 난항은 불확실성 시대의 전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AP]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AP]

“정치적 불확실성이 라인 강을 건넜다.”

메르켈의 연정 구성 협상 교착 빠지자
"정치적 불확실성이 라인 강 넘었다"

총리직 유지해도 메르켈의 시대 저물 가능성
경험 많고 위기관리 뛰어난 메르켈의 부재
브렉시트와 러시아 제재 등 EU 대응에 숙제
"이참에 메르켈 없는 상황에 대비하자"는 의견도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정부에서 정책 수립을 돕고 있는 프랑스 경제학자 장 피사니-페리는 독일의 연립정부 협상이 교착에 빠진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자유 세계의 지도자'라는 타이틀을 붙여줬던 뉴욕타임스(NYT)도 “독일의 상황은 유럽과 서방이 심각한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 것을 보여주는 전조”라고 우려했다. 9월 총선 후 연정 그림이 보이지 않는 독일은 향후 정치 지형이 더욱 파편화되는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12년 간 총리로 재임하며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온 ‘무티(Muttiㆍ독일어로 엄마) 메르켈'의 입지가 흔들린 데 따른 여파다. 메르켈은 천신만고 끝에 연정을 성공시키거나 재선거를 치를 수 있고, 녹색당 등과 소수 정부를 출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메르켈이 또 총리를 맡더라도 그의 시대가 수년 내 저물 것이라는 예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쏟아지고 있다. 
메르켈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자유서방의 상징적 지도자로 그 존재감이 더욱 커졌다. 그런 그의 퇴장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독일은 물론이고 유럽과 서방 전체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A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AP=연합뉴스]

메르켈 총리가 재선거 가능성을 열어놓으며 배수진을 친 가운데 독일에선 직전 정부에서 대연정에 참여했던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에 다시 대연정을 하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9월 총선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거둔 뒤 제1야당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지만 정치적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독일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마르틴 슐츠 대표는 “재선거가 두렵지 않다. 우리는 또 연정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사민당 내에선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독일 일간 빌트는 22일(현지시간) 사민당 의원 153명 가운데 30명 정도는 연정 협상에 열린 태도를 보인다고 보도했다. 사민당 출신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도 슐츠 대표 등을 만나 연정 참여를 설득할 예정이다.
9월 총선을 앞두고 TV토론을 벌인 메르켈 총리와 마르킨 슐츠 사민당 대표. 사민당은 대연정 참여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9월 총선을 앞두고 TV토론을 벌인 메르켈 총리와 마르킨 슐츠 사민당 대표. 사민당은 대연정 참여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사민당 내에선 재선거가 치러질 경우 의석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다시 한번 대연정을 성공시켜 정국 안정을 주도한 뒤 '포스트(post) 메르켈' 체제로 치러질 다음 총선에서 집권을 도모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연정 협상을 박차고 나간 친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에서도 연정 협상에 다시 임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니콜라 비어 사무총장은 n-TV 인터뷰에서 새로운 조건 아래 재협상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자민당 역시 재선거가 치러질 경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독일 정당들이 재선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의 잠재력 때문이다. 지난 9월 총선에서 극우정당의 약진은 독일 유권자들이 더 이상 정서적으로 극우정당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극우정당을 제외한 각 정당은 재선거가 치뤄져도 더 많은 지지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결국 기존 정치 세력들 모두가 메르켈이 흔들리는 지진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아프리카 난민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아프리카 난민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메르켈이 물러날 경우의 파장은 독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험이 풍부하고 위기 관리 능력이 뛰어난 메르켈의 부재는 유럽의 큰 손실이 될 전망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동진 야심에 맞서 유럽을 단결시켰던 이도 메르켈이었다. 대서양협의회 소속 프란 버웰 연구원은 “메르켈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때 유럽을 단합시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끌어냈는데 그가 물러나면 해당 조치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독일의 불안정성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맞서고 있는 EU에게도 타격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르켈의 퇴장은 트럼프의 일방통행식 외교의 득세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혼자 감당하기엔 힘겨운 상황이 될 것이다. 메르켈에 정치적 타격을 입힌 것이 극우정당의 도약인 것을 감안하면 다른 유럽 국가에 도미노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민자 문제와 세계화의 부작용이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독일 뿐 아니라 프랑스와 네덜란드, 헝가리, 폴란드, 영국 등에서 극우나 극좌 정당이 득세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백악관을 방문한 메르켈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지난 3월 백악관을 방문한 메르켈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하지만 과감한 난민 수용 정책으로 독일과 유럽 전체가 홍역을 앓은 만큼 메르켈 총리가 독일과 EU에서 차지하는 정치적 리더로서의 영향력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있다. 어떤 독일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트럼프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한 자세나 브렉시트, EU 안보 등과 관련한 주요 외교 정책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인 만큼 오히려 포스트 메르켈 시대를 준비하는 계기가 이번에 마련됐다는 반응도 유럽 언론에선 나오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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