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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김장문화 혁신시킨 ‘절임배추 원조’ 충북 괴산 가보니

22일 오전 충북 괴산군 문광면 절임배추 공장에서 손기용(왼쪽) 대표가 직원들이 배추를 들고 웃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2일 오전 충북 괴산군 문광면 절임배추 공장에서 손기용(왼쪽) 대표가 직원들이 배추를 들고 웃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2일 오전 충북 괴산군 문광면 송평리 ‘괴산 시골 절임배추 영농조합’. 절임배추 생산 공장의 창고에 가보니 800~1000㎏짜리 대형 마대 자루에 배추가 가득했다. 절임배추를 실은 택배 차량은 상차 작업이 끝나자 마자 급하게 공장을 떠났다.

대형 절임통에 배추가 한 가득…12시간 동안 공장 풀가동
올해 312억원 매출 예상…괴산 지역 특산물로 자리매김
96년 괴산 문광면서 절임배추 첫 상품화 전국 유통
양념만 버무리면 끝…절임배추 등장 후 주부들 김장 걱정 덜어
김장 직접 담그는 가정 52% "절임배추 사용" 매년 증가세

 
공장 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직원들이 소금물에 절인 배추를 절임탱크에서 꺼내 컨베이어 벨트에 쉴새 없이 올려놨다. 자동 세척기로 줄줄이 옮겨진 배추를 4차례 세척을 마친뒤 반으로 썰어 투명 비닐봉투에 담았다. 
조합 직원인 오경(46·여) 차장은 “오늘 절임배추 1만4000㎏을 납품해야 한다”며 “일반 가정뿐만 아니라 기관에서도 절임배추 주문이 쇄도해 온 종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힘들어도 보람 있다는 눈치였다. 
괴산시골절임배추영농조합 손기용 대표가 24시간 동안 절인 배추를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괴산시골절임배추영농조합 손기용 대표가 24시간 동안 절인 배추를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산골 마을 괴산이 김장철 대목을 맞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지역 특산물로 자리매김한 절임배추 덕분이다. 집집마다 갓 재배한 배추를 손질해 도시에 납품하고, 절임배추를 대량 생산하는 공장도 들어섰다. 작황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소득을 얻게된 농민들은 “절임배추가 괴산의 효자 특산물이 됐다”며 입을 모은다.
 
괴산은 ‘절임배추의 원조’다. 1996년 절임배추를 가장 먼저 상품화하고 전국에 유통했다. 98년 괴산의 절임배추 농가들이 생산자협의회를 구성한 데 이어 2012년 절임배추를 전문으로 납품하는 영농조합법인 설립했다. 
국내산 천일염으로 배추를 절이고 천염 암반수로 씻어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방식이다. 절임배추의 등장으로 도시 주부들은 김장이 한결 쉬워졌다. 택배로 받은 절임배추에 양념만 넣고 버무리면 손쉽게 김장을 담글 수 있어서다.
절임배추 공장 앞에 쌓여있는 배추. 괴산시골절임배추 영농조합은 괴산 지역 농민들이 재배한 배추를 포기당 500~600원에 수매해 절임배추를 생산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절임배추 공장 앞에 쌓여있는 배추. 괴산시골절임배추 영농조합은 괴산 지역 농민들이 재배한 배추를 포기당 500~600원에 수매해 절임배추를 생산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김장 의향 및 김장채소 수급 전망’에 따르면 직접 김장을 하는 가구 중 ‘절임배추 사용한다’는 비율이 52%인 반면 ‘신선 배추를 구매한다’는 비율은 48%였다. 2011년 절임배추 사용이 39%, 신선 배추 활용이 61%였던 것과 비교하면 절임배추 사용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마트에서 판매된 김장용 절임배추 판매건수는 72만9000건으로 신선 배추 판매건수(31만1000건)를 2배 이상 앞질렀다. 올해 4인 가족 기준 김장비용은 신선배추 활용이 21만626원, 절임배추 24만3824원, 포장김치 구매 비용은 42만9377원이다.
올해 4인 가족 기준 김장 비용. [농림축산식품부]

올해 4인 가족 기준 김장 비용. [농림축산식품부]

절임배추와 신선배추 구매 건수. [농림축산식품부]

절임배추와 신선배추 구매 건수. [농림축산식품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노호영 엽근채소관측 팀장은 “편의성을 중시하는 소비문화가 김장 트렌드를 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절임배추를 활용해 김장을 담그면 절임과정의 복잡성을 줄일 수 있어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부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신선 배추가 날씨와 작황에 따라 가격 변동폭이 큰데 반해 절임배추는 단순 가공품으로 일정한 가격(2만5000~3만2000원)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구매 증가요인”이라고 덧붙였다.
김장배추 구매형태별 선호도 추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장배추 구매형태별 선호도 추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괴산에선 올해 660개 농가, 482㏊ 농지에서 절임배추 104만 상자(1상자 당 20㎏)를 생산할 예정이다. 예상 매출액은 약 312억원이다. 이는 괴산군 한 해 예산(4500억원)의 7%에 달하는 상당한 규모다. 
최한균 괴산군 유통가공팀장은 “절임배추는 10a당 농가 평균 소득액이 647만원으로 다른 농작물에 비해 월등히 높다. 김장이 시작되는 11월초부터 다음달 중순까지 수요가 집중적으로 몰린다”고 말했다.
 
이날 찾은 공장은 괴산 절임배추의 뜨거운 인기를 실감케 했다. 사무실 안에서는 “한 상자에 20㎏, 3만원입니다. 주말까지 10개요. 네 알겠습니다”란 말이 계속 들렸다. 11월 달력은 주문 물량을 적은 글자로 빼곡했다. 예약 전담 직원 수만 4명이나 됐다. 생산라인 직원들은 오전 8시에 출근해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12시간 동안 끊임없이 절임배추를 생산하고 있었다. 
세척을 마친 절임배추를 포장하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세척을 마친 절임배추를 포장하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절임배추는 반자동시스템으로 만들어졌다. 15~16도로 유지되는 저온 저장 창고에서 배추를 보관했다가 기계로 잎 솎아내기 작업을 한다. 이후 배추 500포기가 들어가는 대형 절임통(총 20곳)에서 하루 동안 배추를 절인다. 이튿날 오전 컨베이어 벨트에 배추를 올려놓으면 공기방울 세척기가 자동으로 배추를 씻는다. 마지막으로 사람의 손을 거쳐 세척한 배추는 금속검출기로 이물질 잔존 여부를 확인한 뒤 포장에 들어간다.
 
괴산시골절임배추 영농조합 손기용(54) 대표는 “해썹(HACCP)인증을 받은 공장에서 깨끗하게 생산된 절임배추만을 선별해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며 “크기가 작은 배추는 따로 모아 불우이웃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괴산시골절임배추 영농조합이 운영하는 절임배추 공장. 이 조합은 2012년 '자연한포기'란 브랜드로 절임배추를 전국에 판매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괴산시골절임배추 영농조합이 운영하는 절임배추 공장. 이 조합은 2012년 '자연한포기'란 브랜드로 절임배추를 전국에 판매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괴산 절임배추는 문광면에서 처음 시작됐다. 손기용 대표는 “90년대 중반 문광면에 사는 한 농민이 서울에 갔다가 도시 주부들이 김장을 하면서 배추를 절이기 힘들고, 배추 잎 등 부산물 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절임배추를 팔기 시작했다”며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는 작업부터 절단, 김장 쓰레기 처리까지 해결할 수 있어 절임배추가 히트를 쳤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달리 괴산 배추가 인기인 이유는 무엇일까.
괴산은 토양에 석회질이 많아 배추가 알차고 단단해 김장용으로 안성맞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을철 밤낮 기온차가 10도 이상 나는 준고랭지에서 자라 잎이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강하다. 
배추를 절이는데 들어가는 소금은 국내산 천일염을 쓴다. 농가들은 2012년 전남 신안 도초농협과 천일염 공급 계약을 맺고 최고의 천일염을 공급받고 있다.
절임배추 공장에서 소금물에 절인 배추를 손기용 대표가 바라보고 있다. 대형 절임통에는 배추 500포기가 들어가며 균일한 염도를 맞추기 위해 누름판으로 배추를 고정해 소금물에 담가 놓는다. 프리랜서 김성태

절임배추 공장에서 소금물에 절인 배추를 손기용 대표가 바라보고 있다. 대형 절임통에는 배추 500포기가 들어가며 균일한 염도를 맞추기 위해 누름판으로 배추를 고정해 소금물에 담가 놓는다. 프리랜서 김성태

 
괴산군은 절임배추 생산으로 연간 1000t 이상 발생하는 폐 소금물을 활용해 소금을 만드는 염전을 만들었다. 바다가 없는 내륙 지역인 괴산에서 역발상을 한 것이다. 
이곳에선 한해 100t 안팎의 소금을 생산해 도로 제설 현장이나 공설운동장·테니스장·게이트볼장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69억원을 들여 2만 7700㎡ 규모의 '소금랜드'도 건립했다.  
 
괴산에서 배추를 재배하는 농민 권오길(61)씨는 “괴산에서 처음 선보인 절임배추가 새로운 김장 문화를 만들고 농가들의 소득 창출에도 기여한 것 같다”며 흐뭇해 했다. 
괴산=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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