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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장관, 세월호 유골 보도 이틀 전 알고 있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23일 세종청사 해수부 브리핑룸에서 논란이 된 세월호 현장 유골 은폐와 관련해 사과하고, 실무자 옆에 서서 경위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23일 세종청사 해수부 브리핑룸에서 논란이 된 세월호 현장 유골 은폐와 관련해 사과하고, 실무자 옆에 서서 경위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세월호 미수습자 영결식이 열린 18일 이후인 20일 오후 5시에 유골 발견 소식을 보고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소식은 22일 오후 5시에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알려지게 됐다.

현장 책임자 “새벽부터 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과
“목포와 세종, 서울로 근무지 삼원화돼 보고 순서 바뀌어” 해명도

 
 23일 김영춘 장관은 세종정부청사 해수부 기자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20일 오후 5시에 첫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브리핑에서 발표된 해수부 조사 결과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골이 최초 발견된 시점은 2017년 11월 17일 금요일 오전 11시 20분쯤이었다. 같은 시각 현장을 순찰하던 국방부 유해발굴단 소속직원 백성기 원사가 사람 뼈인 것으로 확인하고, 현장수습반 팀장 해양수산부 지민철 사무관에게 유선으로 통보했다. 이를 11시 30분쯤 현장수습반 팀장이 최초로 실물을 확인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23일 세종청사 해수부 브리핑룸에서 논란이 된 세월호 현장 유골 은폐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23일 세종청사 해수부 브리핑룸에서 논란이 된 세월호 현장 유골 은폐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연합뉴스]

 
 해수부 세월호 후속대책 김현태 부단장은 11월 17일 금요일 오후 1시 30분쯤 현장수습반장 해수부 김철홍 과장으로부터 유해발굴사실을 보고 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현태 부단장이 현장수습반에 유해발굴사실을 비공개토록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후속대책 이철조 추진단장과 사전 협의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철조 단장은 11월 20일 월요일 오후 5시쯤 김영춘 장관에게 관련 사실을 보고했다. 다음날인 11월 21일 화요일 오후 2~3시쯤 유해발굴사실을 고 조은화 양 유가족과 김창준 선체조사위원장에게 알리면서 언론에도 전해졌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지난16일 오후 목포신항 철재부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수습자를 가슴에 묻고 오는 18일 목포신항을 떠날 방침이라고 밝히며 수색에 앞장선 잠수사와 현장 관계자, 국민께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지난16일 오후 목포신항 철재부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수습자를 가슴에 묻고 오는 18일 목포신항을 떠날 방침이라고 밝히며 수색에 앞장선 잠수사와 현장 관계자, 국민께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수습자 가족, 유가족들에게 보고가 안 됐다는 사실은 22일에서야 비로소 알고 그래서 부단장을 보직 해임을 했다”고 밝혔다. “18일에 목포신항에서 영결식이 진행이 됐고 현장에 있었는데 왜 미리 보고 받지 못했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왜 보고를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후속대책 이철조 추진단장은 이날 브리핑에 참석해 이같은 질문에 “18일에 추모식을 오전 9시부터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전날 세운 각종 제단이라는 게 밤 사이에 강풍에 쓰러져서 새벽부터 장소를 실내로 부랴부랴 바꾸면서 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죄송하지만 끝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 했다”고 사과했다.
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교사, 남현철 군, 박영인 군의 발인이 엄수된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고인의 유가족이 영정과 함께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교사, 남현철 군, 박영인 군의 발인이 엄수된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고인의 유가족이 영정과 함께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현장수습본부 직원들이 근무하는 소재지가 세종청사뿐만 아니라 목포신항 그리고 가끔씩 국회 보고라든지 장차관 보고를 위해서 서울사무소도 왔다 갔다 하고 하는 상황”라며 “그래서 말하자면 근무지 자체가 삼원화돼 있다 보니 일단 장례식 이후에 장차관 보고 일정을 잡으면서 이렇게 장관과 차관의 보고순서가 바뀐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고 답변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8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제일장례식장에 마련된 세월호 미수습자 단원고 고(故) 양승진 교사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치고 빈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18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제일장례식장에 마련된 세월호 미수습자 단원고 고(故) 양승진 교사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치고 빈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다음은 기자회견 전문
 <김영춘 장관>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춘입니다.
 
  어제 긴급히 발표한 사안에 대해 세월호 수습을 주관하는 주무부처의 장관으로서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미수습자 가족 분들과 유가족 분들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계신 바와 같이 지난 11월 17일 11시 30분경 세월호 선내 객실구역에서 수거된 폐지장물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1차 현장 감식결과 사람 뼈로 추정되는 뼈 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에서는 이를 뒤늦게 11월 21일 선체조사위원회에 보고하고 22일에 국과수에 DNA 감식을 요청하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미수습자 수습은 유족들만의 문제가 아닌 온 국민의 염원임을 감안하여 저는 현재의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관련자에 대한 조속한 조사를 지시하였고, 오늘 우선 1차로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국민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앞으로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서 이번 사태가 발생한 원인을 한 치의 의혹도 없이 명백하게 밝혀서 국민 앞에 소상하게 보고드리는 한편, 이와 관련하여 책임져야 할 사람은 반드시 엄중한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전체 세월호 수습과정을 되짚어보고, 혹여 라도 미진한 사항은 없는지 철저히 재점검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후에도 미수습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추가 발견된 경우는 물론이고, 어떤 다른 상황이 현장에서 발생하더라도 결코 자의적이거나 비밀스럽게 처리하지 않을 것이며, 재발방지 대책에도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그럼 이번 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관련자에 대한 조사를 직접 담당하였던 감사관이 상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일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분들과 유가족 분들,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에 대해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끼쳐 드리는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조직의 기강을 다잡고 분골쇄신의 노력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미수습자 가족 및 유가족들에 대한 지원 대책 마련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드립니다.
 
  이상입니다.
 
 
<류재형 감사관>
  해양수산부 감사관 류재형입니다.
 
  세월호 유해발굴사실 지연조치와 관련하여 금일 08시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1차 조사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현재까지 김현태 부단장 등 총 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하였습니다.
 
  먼저,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골이 최초 발견된 시점은 2017년 11월 17일 금요일 오전 11시 20분경이며, 최초 발견자는 상하이 살비지 소속 작업자입니다.
 
  같은 시각 현장을 순찰하던 국방부 유해발굴단 소속직원 백성기 원사가 사람 뼈인 것으로 확인하고, 현장수습반 팀장 해양수산부 지민철 사무관에게 유선으로 통보하였습니다. 이를 11시 30분경 현장수습반 팀장이 최초로 실물을 확인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김현태 부단장에 대한 1차 조사 결과, 11월 17일 금요일 13시 30분경 현장수습반장 해수부 김철홍 과장으로부터 유해발굴사실을 보고받은 후 미수습자 가족들의 추모식과 장례식 일정에 차질을 우려하여 발인 및 삼우제 이후에 유해발굴사실을 전파하려 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현태 부단장이 현장수습반에 유해발굴사실을 비공개토록 지시하였고, 유해발굴사실 지연 전파에 관한 사항을 세월호 후속대책 추진단장 이철조와 사전 협의한 정황도 확인하였습니다.
 
  유해발굴사실을 고 조은화 양 및 선체조사위원장 김창준에게 알린 시점은 언론보도와 같이 11월 21일 월요일 14시에서 15시경입니다.
 
  이는 11월 20일 월요일 17시경 이철조 단장이 유해발굴사실을 장관님께 보고하는 과정에서 즉각적인 조치 지시를 받고 이루어진 사항입니다. 이상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를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위법 부당행위 여부와 고의성 여부 등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며, 최종 조사가 마무리되는 즉시 그 결과를 별도로 다시 한 번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답변]
※마이크 미사용으로 확인되지 않는 내용은 별표(***)로 처리했으니 양해 바랍니다.  
 
<질문> 일단 김현태 부본부장쪽에서는 왜 17일 당일이 아닌 21일에, 그러니까 조금 장례식이 지나고 이거를 알리자고 얘기했는지 일단 그게 궁금하고요. 그리고 알리려면 다 알려야 되는데 왜 두 분에게만 알렸는지.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는 21일에 보고했을 때 그럼 차관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그것도 좀 알고 싶습니다.  
 
<답변> 21일이 화요일인가? 나한테 보고한 게 20일이죠? 월요일이고.  
 
제가 김현태 부본부장으로부터 직접 듣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철조 단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김현태 부본부장이 17일... 미수습자의 장례식 바로 전날이었기 때문에 골편이 발견된 직후에 그 골편의 주인이 기왕에 수습된, 선체의 수색과정에서 수습되었던 몇분 중의 한 분일 거다, 라고 짐작하고 예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진행되는 장례식은 미수습자 장례식인데 가능성이 크지 않은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미리 알려서 장례일정에 혼선을 초래하고, 만약에 장례가 연기될 경우는 한 2주일 가량 확인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 동안 아주 힘든 고통의 시간을 또 더보내게 하는 것이 2년 동안 미수습자 가족들과 함께 지냈던 현장 책임자 입장에서 못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장례식을 치르고 3.5제까지 치르고 나서 본인들에게 통보해 주는 것이 좋겠다.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통보해주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고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21일 시점에서 은화, 다윤이엄마에게만 통지를 한 이유는 역시 그 골편이 은화나 다윤이의 것이라고 하는 그런 예단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것은 또 21일이 삼오제 날이었습니다. 21일 삼오제를 지내고 나서 미수습자 가족에게 연락을 해드려야 되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때문에 우선 21일 시점에서는 선조위원장에게 보고하고 나서 바로 은화, 다윤이 엄마 두 사람에게만 연락을 해서 알려드렸다고 그렇게 저는 들었습니다.  
 
차관에게는 그 사실 그대로를 그냥, 이철조 단장이 보고를 했고, 차관은 특별히 거기에 대해서 제가 했던 주문 이상 더 이상 특별한 주문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 장관님은 월요일에 보고를 받으셨다고 했는데 그럼 보고를 받으셨을 때 김현태 본부장이 예단한 것처럼 그렇게 삼우제 이후에 가족들에게 알리는 게 좋겠다고 동의하신 겁니까?  
 
<답변> 아니요. 그때는 그런 상황까지는 전혀 보고가 없었고요. 이야기가 되지 않았고요.  
 
<질문> 그러면 장관님께서 보고 받으신 내용은 뭡니까?  
 
<답변> 17일에 뼛조각이 조그만 게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뼈는 은화나 다윤이의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렇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왜 그동안 보고를 하지 않았느냐, 질책을 하고, 설령 그게 은화나 다윤이 것이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그전에 있었던 과정들이 있습니다. 뼈가 발견이 되거나 하면 통보하는 절차도 있고 매뉴얼이 있습니다. 그대로 왜 진행을 안 했느냐, 질책을 하고, 즉시 그 절차를 개시해서 연락을 하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질문> 그러니까 지금 말씀은 부본부장의 예단을 질책을 하셨다는 건데요. 그러면 월요일에 바로 그 사실을 공개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답변> 그 시점에서는 일단 저희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절차 매뉴얼대로 즉시 선조위에 연락을 하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질문> DNA 감식도 전에 은화나 다윤이의 유골로 추정된다는 그 예단을 했다는 걸 그 얘기를 듣고 단순히 질책만 하셨다는 겁니까? 그 논리가, 어떤 DNA나 과학적인 분석 없이 이미 수습된 두 학생의 유골로 추정했다는 부단장의, 부본부장의 얘기를 사실상 그대로 수용하고 월요일 그렇게 보고를 받으시고 수요일까지 시간을 끈 것 아닙니까?  
 
<답변> 시간을 끈 게 아니라 일단 실무진들의 판단이 옳고 그르고에 대해서 제가 동조하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일단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통보해야 될, 또 보고해야 될 업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보고에 대한 절차를 즉시 밟아라, 라고 지시를 한 거고, 그 이후에 과정에 대해서는 저는 좀 시간을 두고 미수습자 가족분들, 특히 그런 분들이 수용을 어떻게 하시는지 결과를 지켜보자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질문> 월요일이면 20일이에요. 20일에 장관께서 처음 이 사실을 알았다는 말씀이시죠?  
 
<답변> 예, 그렇습니다.  
 
<질문> 그러면 절차대로 하라고 지시를 했으면 21일, 22일까지 절차대로 진행이 안 됐거든요.  
 
<답변> 그렇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거기에 대한 확인은 전혀 하지 않으셨나요?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답변> 저는 당연히 제가 지시를 했기 때문에 그 지시가 그대로 이행되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22일 시점에서 선조위원장에게는, 선조위에는 보고가 됐지만 미수습자 가족, 유가족들에게 보고가 안 됐다는 사실은 22일에서야 비로소 알고 그래서 부단장을 보직 해임을 하고 *** 지시를 들어갔습니다.  
 
<질문> 장관님, 장관님이 이번 사건 관련해서 처음 보고를 받은 시점이 20일이라고 그러셨나요?  
 
<답변> 예, 월요일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질문> 21일 아니에요?  
 
<답변> 월요일입니다. 월요일 저녁 5시가 좀 넘어서 보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질문> 여러 가지 사안을 감안하더라도 유골이 발견된 시점은 17일이지 않습니까?  
 
<답변> 예.
 
<질문> 그러면 18일에 목포신항에서 영결식이 진행이 됐고 장관님도 현장에 계셨잖아요.
 
<답변> 그렇습니다.  
 
<질문> 그러면 현장수습본부 관계자들이 외부에 공개는 하지 않더라도 장관님한테는 언제든지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거 좀 이상한데요.
 
<답변> 저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왜 보고를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질문> 날짜를 좀 정확하게 집고 넘어갔으면 하는데요. 자료를 보면 단장이 차관에게 구두보고한 게 ‘21일 화요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장관은 ‘20일 월요일 저녁’에 이미 보고를 받았다고 하면 그 보고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순서도 그렇고.
 
<답변> 아마 이철조 단장이 옆에서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만, 그 시점까지도 정식보고를 저한테 한 것은 아니... 그런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보고를 하고 그 끝에 이 문제를 곁들여서 보고를 하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 실무진에서는 보고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를 고민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 그러면 이철조 단장께서 보고를 언제, 어떻게 차관, 장관께 했는지 정리를 해 주시고요. 그리고 보면 일단 단장한테는 다 보고가 됐고 윗선으로 보고가 안 된 것 같은데 그러면 ‘장례식 마칠 때까지 좀 보고를 미루자.’ 라고 했던 그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누가 어떻게 결정한 건지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답변> (관계자) 세월호현장수습본부장 이철조입니다. 지금 저희들이, 현장수습본부 직원들이 근무하는 소재지가 세종청사뿐만 아니라 목포신항 그리고 가끔씩 국회보고라든지 장차관님 보고를 위해서 서울사무소도 저희들이 또 왔다 갔다 하고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근무지 자체가 삼원화돼 있다 보니 일단 장례식 이후에 장차관님 보고일정을 잡으면서 이렇게 장관님과 차관님의 보고순서가 바뀐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장례식 이후에 미룬 이유는 17일에 오후 늦게 현장수습부본부장으로부터 유선보고를 받았습니다. 현장수습본부장께서 미수습자 가족들과 긴밀한 소통과 대화를 쭉 해오고 있는 상태였고 미수습자 가족들의 심리적인 상태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런 사항에서 뼈가 한 점이 발견되었는데 여러 모로 합리적 추론을 해 보니 ‘은화 그리고 다윤이의 유해일 가능성이 극히 높다.’ 그런 상황에서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통보를 했을 때 장례식을 앞두고 극도로 심리적인 상태가 불안하셨는데 심리적인 어떤 충격이 가중되는 그런 역효과가, 악효과가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라는 현장실증보고를 받았습니다.  
 
받고, 현장에서의 어떤 종합적인 흐름과 판단상황을 존중하면서 수긍을 하였고요. 그렇게 해서 저희들은 장례식 이후에 미수습자 가족들께서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을 좀 찾은 다음에 말씀을 드리는 게 도리가 아닌가, 라고 저희들이 생각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질문> 단장님, 잠깐 내려오지 마시고요. 장관님한테 아까 드렸던 질문 다시 한번 드려볼게요. 17일에 확인하시고 나서 20일에 보고하셨다고 했는데 18일에 영결식장에 장관님도 계셨습니다. 왜 보고 안 하셨나요? 혹시 장관님도 심적으로 큰 충격을 받으실까 봐 안 하신 겁니까?  
 
<답변> (관계자) 말씀드린 대로 이거는 미수습자 가족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장례식 이후에 진행하는 게 도리다, 라는 생각을 했었고요.  
 
<질문> 그거는 유족이나 미수습자 가족들한테는 양해가 될 수 있는 문제예요. 그런데 장관님한테는 왜 보고를 안 하셨어요?  
 
<답변> (관계자) 그거는 미처 저희들이 생각을 못 했고요. 특히 18일에 추모식을 저희들이 9시부터 하려고 했습니다. 했는데, 그 전날 세운 각종 제단이라는 게 이게 밤 사이에 강풍에 쓰러져서 새벽부터 장소를 실내로 부랴부랴 바꾸면서 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끝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 했습니다.  
 
<질문> 단장님 마저 질문을 드릴게요. 그러면 17일부터 20일까지는 그런 이유가 있다고 치고 20일에 장관님께 보고드리고 장관님 절차대로 진행하라고 했는데 그 절차대로 진행한 게 22일이잖아요. 그러면 이틀간은 어떤 이유 때문에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셨는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은화, 다윤이라고 예단한 이유가 뭔지도 궁금하고요. 그리고 끝으로 이 표에 보면 17일부터 21일까지가 있는데 중간에 20일 장관보고 내용은 왜 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
 
<답변> (관계자) ***
 
<질문> ***<질문> 장관님, 20일 월요일에 보고를 받으셨고, 절차대로 조치를 하라고 했는데 화요일, 수요일까지 언론보도상에 아무것도 안 나타나고, 그 조치대로 이행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를 못하셨습니까? 목요일까지?  
 
<답변> (관계자) 제가 말씀 올리겠습니다. 20일 월요일 장례식의 마지막 절차인 화장 및 봉안절차가 미수습자 세분에 대해서 평택 서호추모공원에서 열렸습니다. 열리고, 식구들을 버스에 태워서 다 환송을 보내드리고 즉시 서울 사무소로 가서 보고를 드렸습니다. 보고를 드렸고, 화요일에 미수습자, 아, 죄송합니다. 은화네, 다윤이네 어머니한테 저희들이 통보를 했고, 선체조사위원회 위원장한테도 대면 설명을 드렸습니다.  
 
드리면서 부본부장하고 또 상의를 했습니다. 상의를 했는데 부본부장께서 장례식이 끝난지 얼마 안 된 이 시점에서 다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너무 도리가 아닌것 같다, 굉장히 지금 마음적으로 장례를 거치는 3일 동안 굉장히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저희들이 조금만 기다리면서 차분히 마음이 정리가 되면, 추스러지면 그때 말씀드리자, 라는 현장의 보고를 있었고, 그래서 그것을 제가 수긍을 했다...  
 
<질문> 단장님, 같은 말씀이 계속 겉도는데, 그러면 장관님이 지시하신 것을 단장님이 임의로 무시하셨단 말씀이세요?  
 
<답변> (관계자) 예, 그 이후로 또 보고를 해야 하는데 미처 업무를 하다보니 보고 시간을 놓친 것 같습니다.  
 
<답변> (관계자) 감사관실에서 작성한 자료와 관련해서 감사관이 간단한 추가 설명이 있겠습니다.  
 
<답변> (관계자) 아까 발언 내용에 11월 20일 17시 이철조 단장이 장관님께 보고를 했던 내용이 담겨져 있었고요. 그부분이 급히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돼서 그것은 다시  수정해서 다시 한번 배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답변> (관계자) 대변인입니다. 이것은 추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들이 기자분들께 제공한 자료는 저희 보도참고자료하고 그다음에 간단하게 표로 되어있는 자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감사관께서 모두에 읽으신 자료는 배포가 안 된 사항입니다. 그런데 모두에 읽으신 자료에는 분명히 장관님께서 보고 받은 시각이 월요일 오후 5시라고 감사관님이 분명히 말씀하셨고요.  
 
그런데 그 자료가 지금 기자분들께 배포된 자료에는 그게 안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혼선이 있었습니다.  
 
<질문> 어제 저녁에 온 저희 문자를 보면, 여기에 현장수습본부가 선체조사위원회에 알린 시간이 11월 21일이라고 되어있는데 지금 단장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17일 오후에 받으셨다고 하신 거잖아요? 어제 그러면 기자들한테 보낸 문자가 잘못됐던 건가요?  
 
<답변> (관계자) 자료에도 선체조사위원장을 방문하여 상황 설명이라고 21일로 되어있습니다만.  
 
<답변> (관계자) 화요일, 예, 화요일입니다.  
 
<답변> (관계자) 이번주 화요일입니다.  
 
<질문> 아니, 17일에 단장님께서는 보고를 받으신 거잖아요?  
 
<답변> (관계자) 예.  
 
<질문>  장관님께 질문드리겠는데, 오전에 국무총리 주재로 회의할 때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사의를 의미합니까?  
 
<답변> 원칙적인 자세를 말씀드린 겁니다. 제가 이번 일을 철저히 진상조사하고 책임질 사람은 문책을 하고 재발방지대책도 제대로 만들겠다, 그 앞에는 물론 상황에 대한 경위설명을 다 했고요. 그러고나서 결론적으로 제가 지휘책임자로서 져야 할 책임의 크기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 나가겠다,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질문> 아까 질문이 나왔었는데 은화, 다윤이의 뼈조각으로 예단한 합리적인 추론 근거를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고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도 같은 의견이었는지 좀 전달해 주십시오.  
 
<답변> (관계자) 예, 저희들이 금년도 4월 11일 육상거치를 한 이후 4월 16일부터 본격적으로 선체 내 수색을 했습니다. 수중수색은 그것보다 좀 더 빠른 4월 초부터 시작을 했고, 금년 11일 초까지 해상과 선체 내에서 정말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꼼꼼하게 수색을 해왔다, 라고 저희들은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총 유해가 147점, 치아 9점 포함입니다. 147점을 수습을 했고, 68점이 선체 내, 60대 중반이 수중에서 나왔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선체 내에서 수거한 뻘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저희들이 4월부터 10일까지 수색작업을 진행하면서 매일매일 현장 관리를 하고 공기층을 검토하고 기술적으로 검토하고 어디에 뼈가 있을까 이런 것을 쭉 검토하고 그 결과 저희들이 찾았을 때 디엔에이그래서 147점에 기 포함되지 않았던,  
 
<질문> ***
 
<답변> (관계자) 그래서 전체, 말씀드리겠습니다. 합리적인 저희들이 추론과 검토를 했을 때 147점에서 연장선상에 있는 1점이 아니겠느냐, 라고 저희들이 검토를 했던 거고요. 그래서...
 
<답변> 제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선체를 인양하고 나서 객실부에서 유해가 찾아진 것은... 세 사람입니다. 다윤이, 은화, 그리고 이영숙 씨 세 분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그 이외에는 어떤 다른 유해도 발견이 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발견된 골편도 객실부에 있던 폐지장물에서 나온 거기 때문에 적어도 그 세 분 중의 한 분 일거다, 라고 예단을 한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치르는 미수습자 장례에는 그 세분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부단장이 장례식에 혼선을 주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질문> 두 가지를 여쭈고 싶은데요. 그러면 이 사태가 시작된 게 김현태 부본부장이 단장에게 보고하면서 가족분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뒤에 알려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서 시작이 됐다고 판단을 하면 되는 것인지.  
 
<답변> 그게 있는 그대로 사실입니다.  
 
<질문> 그러면 지금 보직 해임을 하셨잖아요. 그 책임을 묻겠다는 건데, 그러면 이것을 인지하셨을 때 보직 해임을 안 하시고 왜 뒤늦게 어제 언론 보도가 되고 나서 보직 해임을 하고 본부 대기를 시켰는지...
 
<답변> 일단 제 입장에서는 제가 월요일에 '절차대로 통지를 해라, 지금이라도.', 장례식이 중간에 있었던 그 2~3일의 시간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즉시 선조위와 가족들에게 통보를 하고 공개하는 절차를 밟으라고 지시했는데도 그 지시가 이행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제가 그 현장 책임자를 보직 해임하고 문책을 하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질문> 그러니까 장관님은 17일에, 아니 20일 오후 5시에 첫 보고를 받을 때 이미 사흘 전에 '유골이 하나 발견이 됐고, 미수습자의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며 장례식 일정을 고려하여 알리지 않겠다.'라고 하는 보고를 받으신 거잖아요?
 
<답변> 예, 그렇습니다.
 
<질문> 그러면 그 사실을 21일 선체조사위에는 제대로 보고가, 했나요? 17일에 발견됐고 이러저런 이유 때문에 알리지 않았다.
 
<답변> (관계자) ***
 
<답변> 그러니까 21일에 보고를 한 거죠. 선조위원장께 보고한 겁니다.
 
<질문> 그러면 그 특별법 위반 취지는 가능성 소지는 없는 건가요?
 
<답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 다른 케이스에서는 당일에 바로 보고가 되거나 혹은 현장 사정상 유해를 수습하면서 한 공간에서 계속 유해가 나오거나 그럴 수도 있으니까 하루나 이틀 정도를 묶어서, 모아서 보고를 하고, 또 신원확인 과정을 거치고, 감식 절차를 거치는 그런 일들이 그동안에 계속 있어 왔습니다. 그렇게 봤을 때 3~4일이라는 시간이 이미 경과를 하고 4~5일에 했다고 하는 것은 보고의무 자체를 지키지 않은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질문> 정말 죄송한데요. 장관이 직접 모든 사정을 보고 받고 '절차대로 조치를 해라.'라고 월요일 오후에 지시를 했는데 그 절차대로 지시, 밑에 있는 공무원분들이 그 절차대로 지시를 이행을 하지 않았고, 그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수요일 오후까지 장관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게 맞습니까?
 
<답변> 예, 그렇습니다.
 
<질문> 그게 어떻게 말이 되는 거죠?
 
<질문>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질문> 예, 그게 어떻게 말이 되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데요.
 
<답변> 우리 실무진단은 그 보고를 우선 선조위원회에 보고를 하고, 또 다윤이... 은화, 다윤이 엄마들에게 알려준 것으로 우선 1차적인 작업을 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삼우제를 지내고, 25일이 삼우제인데 삼우제를 지내고 미수습자 가족들께는 연락을 하겠다. 이렇게 내부적으로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질문> 그 부단장님의 예단은 그렇다 치고 지금 이철조 단장님도 그렇게 17일에 유선보고를 받았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신 건지, 판단을 하신 건지 궁금하고요.  
 
선체조장위원장한테 대면보고하셨다고 하는데 그때 위원장님께서 무슨 말씀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답변> (관계자) 아까 말씀드린 대로 부단장께서 미수습자 가족들과 계속 소통하고 대화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현장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또 미수습자 가족들의 심리라든지 이런 상황이 돼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전체적인 현황을, 상황을 감안해서, 그리고 미수습자 뼈 나온 후에 주인이 누군지를 합리적, 나름대로 예단을 해서 그거를 전체적으로 현장실증보고를 한 거고요.  
 
그래서 가장 현장을 잘 아는 부단장이 보고한 내용에 대해서 또 어느 정도 존중을 하면서 수긍을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라는 생각을 했었고요. 다만, 이 과정에서 저희들이 생각의 시각이 한편으로 조금 좁혀졌지 않나, 그런 점은 분명히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질문> 한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17일에 김현태 부단장이 이철조 단장에게 보고까지 했고 그렇게 하자, 라고 결정이 난 것 같은데 왜 실제로 보직해임은 부단장만 된 것 아닙니까? 그 책임선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알고 싶고요. 그리고 장관께서는 20일에 보고 받으셨는데 그 뒤로 전혀 챙긴 게 없다고 보는 게 맞는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우선 뒤 질문부터 말씀드리면 20일에 저녁에 지시를 하고 지시가 그대로 이행될 줄로 알고 그다음, 다음 날 22일까지 확인을 못 했던 것은 제 불찰입니다. 직원들이 선조위에 보고한 것으로 일단 자기가 해야 될 최소한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제가 기대한 것은 그것보다는 더 나아가서 유가족들,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도 다 연락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는데 그런 것도 이행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 정말 아쉽게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묻겠습니다.  
 
<질문> 아니, 아까 질문한 선조위에서 입장이 어떤지도 말씀해 주십시오.  
 
<답변> (관계자) 현장수습본부장이 선체조사위원장에 대면보고하였습니다. 부본부장이 선체조사위원장께 대면보고하였습니다.  
 
<질문> ***
 
<질문> 위원장의 판단이 어땠는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선체조사위원장.
 
<답변> (관계자) 그거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때 답변 나온 상황으로는 미수습자 가족들한테 통보하라는 말씀만 전해들었다고 진술을 했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통보해 줬으면 좋겠다, 라는 말씀으로 전해드립니다.  
 
<질문> 그게 전부.
 
<답변> (관계자) 그 정도 진술만 지금 확보를 했습니다.  
 
<질문> ***
 
<답변> (관계자) 그런 얘기는 지금 진술까지는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질문> 그러면 이 단장님은 왜 장관님 지시 이후에도 그 절차를 따르지 않은 건지 좀 궁금하네요.
 
<답변> (관계자) 현장수습부본부장과 상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수습부본부장의 의견이 장례식을 치른 지 얼마 안 돼서 이런 말씀을 드리면 매우 깊은 많은 상처를 낳지 않겠느냐, 그런 우려가 커서 차마 말씀드릴 용기가 조금 없다, 그래서 조금만 지켜보고 마음이 차분해지면 그때 보고드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 그런 의견이었습니다.  
 
<답변> 그래서 부단장만 우선 보직해임을 한 이유는 부단장이 현장에서 판단을 하고 일단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알리자, 그런 결정을 했던 현장책임자였기 때문에 우선 부단장에게 보직해임 후 조사하겠다는 입장이었고요.  
 
그 조사는 오늘까지는 긴급히 현장에서 일했던 그리고 결정을 했던 실무자들 중심으로 조사를 했습니다마는, 앞으로는 더 확대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관련자들에 대해서 조사를 진행해 나가겠습니다.  
 
<질문>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는데 21일까지 확인하지 못 한 건 제 불찰이라고 하셨는데 그 부분 책임질 의지가 없으신 건가요? 장관님 말씀 가운데 21일부터 22일까지...
 
<답변> 지시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질문> 예, 3일 동안.
 
<답변> 제가 책임져야 될 일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죠.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이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만들고 그리고 나서는 임명권자와 목포 국민의 뜻을 따라서 제 진퇴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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