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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50명이 줄서서 들어가”싱가포르의 한국인 위안부 실태 공개

한국 연구진의 현지 조사를 통해 싱가포르 일본군 위안소의 실태가 공개됐다. 한국일보는 23일 현지 조사결과를 인용해 싱가포르의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는 600여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산됐다고 전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싱가포르 국립문서보관소와 아카이브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위안소 설립과 관리에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을 입증하는 사료 140여건을 발굴했다.
[사진 유튜브 화면 캡처]

[사진 유튜브 화면 캡처]

 
매체는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한국인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증언과 사진 등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기록이 한국 연구진에 의해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는 약 8만~2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정부가 공식 확인한 피해자는 238명뿐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발굴ㆍ정리ㆍ해제’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ㆍ통치했던 1942~1945년에 운영했던 위안소는 10여곳으로 파악된다.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설립하기도 했고, 브로커가 ‘요정’ 형태로 운영하기도 했다. 기록상 2차 대전이 끝날 무렵까지 싱가포르에 거주했던 한국인 위안부는 600여명으로 추정된다.  
 
싱가포르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된 구술자료에서 1981년 요기니 요가라자씨는 “일본군 위안부를 싣고 미얀마로 가던 기차에는 소녀들이 가득 차 있었다, 수도 시설 앞에서 다 벗고 목욕해야 하는 전쟁포로들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실상을 목격한 증언도 잇달았다. 중국계 싱가포르인 리우 캉씨는 1946년 출판한 화집에서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그는 “위안소는 일본군에 필수적인 부속품이며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매춘부를 모집한 후 장교와 일반 군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각각의 등급을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83년 탄 벵루안씨는 “집 근처에 부대가 많이 있었는데 일본 군인들은 일요일에 위안소로 가 쿠폰이나 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일본 군인들은 음식도 음료수도 먹지 않고 오로지 여자와 즐길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1984년 로우 레이 렝 씨도 “싱가포르 켄힐 로드의 위안소 앞에는 늘 일본 군인들이 50명 정도 줄을 서서 들어가려고 기다렸는데, 영화관 줄 같아 굉장히 이상했다”고 기억했다.  
 
일본 점령기에 탄 톡 생 병원의 치과 조수로 있었던 마크 옹 웬 웨이씨는 2000년 인터뷰에서 “만달레이 가에 있는 위안소의 한국인 위안부들은 주로 성병 전염으로 치료를 받았다”며 “한국인 위안부들은 일본어를 못했고 그들끼리 한국어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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