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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투자은행에 발행어음 업무를 허하라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출범한 초대형 투자은행(Investment Bank·IB)에 대한 기대가 크다. 4차 산업혁명의 도전이 거센 가운데 그 주역으로 떠오른 혁신기업을 지원하려면 모험자본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자금 공급 측면에서 태생적으로 안전한 대출에 주력하는 상업은행과 달리 투자은행은 위험을 감수하고 공격적으로 자금을 운용할 뿐 아니라 투자 범위도 훨씬 다양하다.
 
4차 산업혁명이 어디까지 포괄하느냐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주역이 모험과 혁신성을 바탕으로 한 신생기업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신생기업이 역동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금융을 통한 자금 지원이 필수이고 그 채널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미래 먹거리와 일거리를 창출하는 금맥으로 4차 산업혁명의 전면적 육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안전한 대출 중심의 은행과 자본력이 취약한 벤처캐피털만으로는 혁신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모태펀드·성장사다리펀드 같은 정책자금이 나름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창업 단계 지원에 집중되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초대형 IB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초대형 IB 출범에 따른 또 다른 기대는 안전한 대출 장사로 손쉽게 돈을 번다는 비판을 받아 온 상업은행에 대한 ‘메기’ 역할이다. 국내 상업은행들은 올 들어 카카오뱅크의 흥행에 깜짝 놀라 한바탕 금리 인하 경쟁을 벌인 바 있다. 이번 초대형 IB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기업금융 부문의 강력한 예비 경쟁자와 맞닥뜨리게 됐다. 상업은행 혁신의 확실한 자극제가 되길 기대한다.
 
시론 11/20

시론 11/20

그러나 초대형 IB 출범이 기대를 충족하기에는 어딘가 어정쩡해 보인다. 5개 초대형 IB 중 한국투자증권 한 곳에만 초대형 IB의 핵심인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업무)을 인가하고 나머지 4곳에 대해서는 이를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단기금융업 인가가 없으면 영업자금 마련을 위해 자체 신용으로 만기 1년 이내의 금융상품을 발행하는 일이 막혀 풍부한 자금 조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불과 6개월 전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당시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증권사에 단기금융 업무를 허용하겠다는 의욕을 보인 데 비하면 한참 초라한 느낌이다. 돌이켜 보면 다들 미래를 위한 혁신과 신성장동력을 이야기하지만 대안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는 늘 이런 식이었던 같다.
 
물론 금융회사 간 형평성 문제와 쏠림현상으로 인한 부실화 가능성, 1997년 외환위기의 실마리가 된 단자(短資)회사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 등 조심스러운 지적들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기업의 자금 조달 시장 내에 뿌리박은 안전한 담보 위주의 관행을 극복하기 위해 초대형 IB의 제대로 된 작동은 필수적이고 꼭 가야 할 길이다. 미국의 경우 초대형 IB가 혁신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투자한 신생기업 중 기업가치가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를 웃도는 곳이 20개에 육박한다. 따라서 정치권과 금융 당국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초대형 IB의 도입 논의가 왜 시작됐는지, 미래와 혁신을 위해 모험자본 조달의 최선책이 무엇인지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대형 IB의 분발도 기대한다. 초대형 IB가 시중에 떠도는 자본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종전보다 좀 더 규모만 커진 증권사 정도에 머물게 된다면 본래 취지와 달리 중소형 증권사의 먹거리만 빼앗는 ‘동네 형님’으로 전락할 뿐이다. 무엇보다 자체 신용 위험 관리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그래야 민간 주도의 모험자본 공급을 활성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 등 수요자 발굴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신생기업에 대한 정보 생산 기능은 비용이 많이 들고 부가가치는 낮은 업무로 취급됐다. 그러나 이 기능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모험자본 투자는 부실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금융 당국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금 수요자 발굴 업무가 중비용·고부가가치 비즈니스가 되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초대형 IB의 기업금융 최소운용비율을 조정해(가령 IB 규모에 따라 50%, 70% 이상으로 차등 적용) 이를 제대로 수행하는 IB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규정을 디자인할 수 있다.
 
미국 골드만삭스처럼 진짜 초대형이 아니라도 좋다. 국내 기업 자금 조달 시장에서 혁신기업·신생 업체를 위한 모험자본 역할을 충실히 해 줄 수 있다면 명칭과 규모는 그다음 문제다. 금융 당국과 초대형 IB의 분발을 기대한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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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