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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은행나무의 강제 이혼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날씨가 추워지자 나무도 월동 준비에 바쁘다. 은행나무는 노란 잎과 열매를 다 떨궈내고 겨우내 버틸 힘을 비축한다. 흔한 은행잎이 수출 품목이 된 적이 있다. 1980년대였다. 농민에겐 짭짤한 부업거리였다. 나무에 올라가 일일이 따서 말린 뒤 무역상에 넘겼다. 수출 단가는 1㎏에 1달러(환율 680원대). 연간 1000t 정도가 수출됐다.
 
은행잎을 사들인 곳은 독일 제약회사 쉬바베였다. 우리 은행잎이 혈액순환에 좋은 ‘징코프라본 글리코시드’ 성분이 탁월하다는 걸 알아챘던 거다. “찬 성질로 맛이 강하고, 폐와 위의 기를 맑게 해주며 기침을 멎게 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는 『동의보감』 설명대로 은행은 우리의 전통 약재였다. 한데 잎에도 효능이 있을 줄이야…. 한 방 맞은 셈이었다.
 
SK케미칼에서 혈액순환제 ‘기넥신’ 개발을 이끌었던 곽의종 박사의 회고. “그 소동 이후 우리 제약사도 성분 추출에 성공해 약을 만들었죠. 잎은 경북·충북 청정 지역의 젊은 나무에서 7~8월에 땁니다. 잎이 파래야 성분이 좋아요. 징코민·기넥신 같은 약이 나온 사연입니다.”
 
그런 사연만큼 은행나무에 얽힌 일화도 많다. 수백 년 된 고목 앞에서 마을 사람들은 제(祭)를 올렸고, 새댁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 은행나무는 70~80년대 도심의 가로수 황제로 등극했다. 오염에 강하고 공기 정화 능력이 탁월하며 운치가 있다고 다들 좋아했다. 그랬는데 지금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열매가 내뿜는 자연의 냄새 탓이다. 열매는 15~20살 이상 된 암나무에서만 열린다. 그걸 감안하지 않고 심었다가 악취 세례를 받았다.
 
서울 도심의 은행나무 11만2300그루 중 암나무는 3만 그루다. 매년 암나무를 제거하거나 수나무로 바꿔 심는 데 2억원을 쓴다. 그런데 경기도 수원시는 2022년까지 36억원을 들여 모든 암나무를 수나무한테서 ‘강제 이혼’시킨단다. 암나무를 점차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은행나무 성(性) 감별법을 개발한 국립산림과학원이 조만간 민간에 이 기술을 이양한다니 이혼은 더 쉬워질지 모르겠다. 잎사귀 유전자(DNA)를 분석하면 묘목까지 암수 감별이 가능하다. 길거리 은행 냄새가 줄어드는 게 반갑긴 한데 위자료 한 푼 못 받고 생이별할 나무들이 우는 듯하다. 은행나무는 인간의 변덕을 어찌 생각할까.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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