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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차이 나는 차이나] ‘시 황제’의 오른팔 딩쉐샹 … 2013년 ‘만두집 민행’ 연출자

2013년 12월, 집권2년차인 시진핑 국가주석이 베이징의 서민들이 즐겨 찾는 만두집을 방문해 시민들 틈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에 앉은 이가 당시 중앙판공청 부주임이던 딩쉐샹이다. [중앙포토]

2013년 12월, 집권2년차인 시진핑 국가주석이 베이징의 서민들이 즐겨 찾는 만두집을 방문해 시민들 틈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에 앉은 이가 당시 중앙판공청 부주임이던 딩쉐샹이다. [중앙포토]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자금성(紫禁城) 달빛 아래 차와 식사를 즐기고 황제들이 거닐던 공간을 되밟으며 밀담을 나눴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준비한 ‘황제 의전’이었다.
 
당시 시 주석을 그림자처럼 수행한 사람이 있었다. 지난달 19차 공산당 당 대회에서 정치국원으로 발탁되고 후속 인사에서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임명된 딩쉐샹(丁薛祥·55)이었다.
 
자금성 회동 이튿날인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과 11일 베트남 다낭으로 자리를 옮겨 열린 한·중 정상회담, 중·일 정상회담에서 딩쉐샹은 시 주석의 오른쪽에 앉았다. 왼쪽에는 경제브레인으로 알려진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이 앉았다. ‘시진핑 1인 천하’에서 시 주석의 오른팔-왼팔이 누구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중앙판공청 주임은 우리로 따지면 대통령 비서실장과 경호실장, 부속실장의 역할을 모두 합쳐 놓은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시 주석의 일정 조정은 물론, 기밀서류를 포함한 문서 선별과 보고, 하위 당·정부 조직과의 연락 업무 등이 모두 중앙판공청 주임의 손을 거쳐 이뤄진다.
 
시 주석의 경호를 담당하는 중앙경위국도 거느린다. 중국 공산당의 수뇌부가 위치한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장한다고 해 중난하이의 ‘대내총관(大內總管)’이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 황궁의 대소사를 책임졌던 황제의 문고리 권력에 빗댄 것이다.
 
그래서 새로 중난하이의 주인이 되는 권력자는 반드시 중앙판공청 주임을 자신이 가장 믿을 만한 사람으로 앉혔다. 황제가 바뀌면 신하도 바뀐다는 ‘일조천자일조신(一朝天子一朝臣)’이란 말대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때문에 이 자리는 국가지도자급으로 올라가기 위한 발판이기도 하다. 딩의 전임자였던 리잔수는 이번 당대회에서 서열 3위의 상무위원으로 발탁돼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 자리를 예약해 놓았다. 그 전임자들도 마찬가지다. 마오쩌둥(毛澤東) 시절의 양상쿤(楊尙昆), 장쩌민(江澤民) 시절의 원자바오(溫家寶), 후진타오(胡錦濤) 시절의 링지화(令計劃) 등이 중난하이의 대내총관이었던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양상쿤은 국가주석, 원자바오는 총리로 올라갔다. 시진핑 집권이후 실각한 링지화만이 예외다.
 
시 주석은 스스로 ‘신(新)시대의 개막’이라고 선언한 집권 2기를 맞이하며 딩쉐상을 중앙판공청 주임에 발탁했다. 시진핑 1기의 중앙판공청 주임 리잔수는 시 주석과 30대 시골 현서기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지기(知己)였다.
 
그렇다면 딩 주임은 시 주석과 얼마나 깊고 오랜 인연을 맺고 있을까. 놀랍게도 시 주석이 집권 전 딩쉐샹과 알고 지낸 기간은 불과 7개월밖에 안된다.
 
딩 주임은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였다. 장쑤(江蘇)성 출신인 그는 16세에 대학시험에 합격해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치치하얼(齊齊哈爾)에 있던 동북중형기계학원을 졸업했다. 그뒤 상하이 재료연구소 연구원으로 배치돼 17년간 근무한 끝에 연구소장까지 올랐다. 1999년 37세의 딩은 쉬쾅디(徐匡迪) 상하이 시장에게 발탁됐다. 이후 상하이 과학기술위원회 부주임을 시작으로 상하이 당위원회 부비서장으로 승승장구했다. 명석한 두뇌와 공학도다운 논리적 사고, 범상치 않은 문필력 등이 그의 장점이었다고 한다.
 
상하이 지방관료였던 그의 운명을 바꾼 건 2006년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서기의 실각이었다. 저장(浙江)성 서기이던 시진핑 주석이 2007년 3월 천의 후임 상하이 서기로 부임해 온 것이다. 시 주석으로선 그 해 가을 17차 당대회에서 차기 지도자감으로 낙점받기 위한 마지막 시험대였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시기, 자신을 도울 최고의 인재가 절실했던 시 주석은 몇 차례의 짧은 만남에서 딩의 자질을 궤뚫어 보고 당위원회 비서장 겸 판공청 주임으로 발탁했다. 두 사람이 손발을 맞춰 일한 시간은 불과 7개월이었다. 시 주석이 그 해 10월 상무위원으로 발탁돼 베이징으로 올라가면서 두 사람은 헤어졌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딩은 시 주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5년 뒤인 2012년 최고권력자가 된 시진핑은 잊지 않고 딩을 중난하이로 불러올렸다.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중앙판공청 부주임 겸 총서기판공실 주임이었다.
 
시 주석 1기 체제에서도 그는 눈에 드러나지 않게 시진핑을 보좌했다. 2013년 12월 집권 만 1년 남짓 지난 시 주석이 베이징의 서민들이 즐겨 찾는 허름한 만두집을 방문해 일반 시민들 틈에 섞여 식사를 한 일이 국내외에서 큰 화제가 됐다. 중국 지도자로서는 유례가 드문 민생 행보는 시 주석의 대중적 인기를 높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 때 시 주석의 바로 왼쪽에 앉은 이가 딩쉐샹이었다. 서민 행보 기획자가 딩 주임이었던 것이다.
 
딩은 아직 젊어 미래가 창창하다. 이변이 없다면 5년 뒤 20차 당대회에서 상무위원으로 올라가 10년간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나이다. 이번 당대회를 계기로 딩 주임이 ‘포스트 시진핑’ 레이스에 합류하게 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그에게 부족한 한 가지가 있다. 지방 성·직할시의 1인자를 맡아 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참모 업무는 완벽하게 수행해 시 주석을 100% 만족시켰지만 리더십 검증은 부족하다는 얘기다. 시 주석이 향후 5년간 자신의 오른팔인 딩을 줄곧 판공청 주임으로 곁에만 둘지, 아니면 지방으로 내려보내 지도자 경험을 쌓고 부족한 경력을 보강하게 할지 주목된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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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