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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억 달러짜리 '피의 숙청'··· 빈 살만 사우디 왕위 임박설

중동사태 제작·감독·주역인 빈살만 왕세자의 위험한 도박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왕과 아들 빈 살만 왕세자의 모습이 담긴 건물. 왕위 이양이 임박했다고 영국 매체가 보도했다. [사우디 문화부]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왕과 아들 빈 살만 왕세자의 모습이 담긴 건물. 왕위 이양이 임박했다고 영국 매체가 보도했다. [사우디 문화부]

 사우디아라비아의 32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르면 이번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81) 국왕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을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살만 국왕이 퇴위하고 공식 실권을 빈 살만 왕세자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왕실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2015년 1월 왕위에 오른 살만 국왕은 치매를 앓는다는 시선을 받아왔는데, 지난 6월 왕세자이던 조카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전격 폐위했다. 그 자리에 아들 빈 살만을 지명한 지 5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양위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주 왕위 이양" 英 매체 보도
'왕자의 난' 정통성 얻으려면
인구 절반 젊은층 지지 확보가 필수
'석유의 저주' 벗어날 실행자금 마련이 목적

체포한 왕족 자산 빼앗아 재원 활용 추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내년 상장해 자금 조달 예정
중동 불안으로 고유가 상황, 상장에 유리

NYT "이집트 인권탄압 전 장관이 조언자"
"미 국무부 등 비극만 초래할까 우려"

32살 빈 살만 왕세자 [AFP=연합뉴스]

32살 빈 살만 왕세자 [AFP=연합뉴스]

 빈 살만은 최근 중동 상황과 관련해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 주인공의 역할을 모두 담당했다.

 그는 국방장관을 맡은 2015년 예멘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은 반군의 세력을 줄이지 못한 채 민간인 희생자만 양산했다는 인도주의적 논란에 휩싸였다. 수니파 아랍 국가들과 손잡고 카타르 봉쇄 작전도 이끌었다. 지난 4일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왕족과 주요 기업인, 고위 관료 등 수백명을 체포했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전격 사퇴를 선언한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의 행보에도 빈 살만이 배후로 꼽혔다. 18일(현지시간) 하리리 총리가 프랑스로 이동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만난 뒤 레바논 귀국 의사를 거듭 밝혔지만 중동의 긴장은 풀리지 않고 있다.
 살만 국왕 부자가 사우디 지배구조의 근간인 형제간 왕위 승계를 중단한 뒤 부자간 왕위 계승을 원활하게 하고 향후 통치 기반을 마련하려는 과정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파생됐다는 분석이다.
리야드에서 열린 대규모 국제투자회의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에서 나란히 앉아 있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총재와 빈살만 왕세자,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AP=연합뉴스]

리야드에서 열린 대규모 국제투자회의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에서 나란히 앉아 있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총재와 빈살만 왕세자,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AP=연합뉴스]

'석유의 저주' 시달리는 사우디, 경제개혁 성과내야 정통성 확보 
빈 살만 왕세자의 속내를 이해하려면 사우디가 처한 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우디는 ‘석유 자원의 저주'를 겪고 있다. 풍부한 화석연료가 역설적으로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석유 부문은 사우디 예산 수입의 약 87%, 수출의 90%, 국내총생산(GDP)의 42%를 차지한다. 
 하지만 1950년부터 2006년 사이 사우디의 1인당 GDP 증가 폭은 자연자원이 없는 이스라엘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1932년 건국 이후 풍부한 원유를 수출해 부를 누리다보니 인적 자원 개발도 더뎠다. 경제의 대부분을 외국인 노동에 의존해온 탓에 사우디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30%에 육박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몇년간 유가가 하락하면서 지난해 사우디 정부의 재정 적자는 3000억 리얄(약 92조원)에 달할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빈 살만의 지위는 위태롭게 된다. 이미 왕족과 보수적 종교인 등과 거리를 둔 그의 개혁이 국민의 지지까지 잃으면 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빈 살만은 이를 노리고 '비전2030'을 선보였다. 석유에 의존하던 경제 구조를 다변화하고, 현재 40%인 민간기업의 기여도를 65%로 늘리는 내용이다. 서북부 홍해 인근 사막과 산악지대에 서울의 44배 넓이에 해당하는 미래형 신도시 ‘네옴’(NEOM)을 건설하겠다는 프로젝트도 발표했다. 투입되는 돈만 약 5000억 달러(약 550조 원)다. 이 도시에는 석유 대신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가 공급된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투자 재원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재정 적자가 GDP의 17%에 달하는 실정이다. 국민에게 제공해온 보조금을 줄이기도 여의치 않다.
 
 빈 살만 왕세자는 부를 쥔 왕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왔다. 하지만 대다수가 네옴 건설 등에 “꿈 같은 얘기"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자산을 해외로 옮기는 게 포착됐다. 그러자 빈 살만은 부패 혐의로 왕족과 기업인 등을 체포한 뒤 보유 재산 상당 부분을 내놓는 조건으로 석방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즈(FT)가 보도했다.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에 구금돼 있는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 [중앙포토]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에 구금돼 있는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 [중앙포토]

구금한 왕족들에게 '자산 내놔라' 협상…"최대 3000억 달러"
 아랍 최대 부호로 자산 규모가 20조원에 달하는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 등에게 사우디 당국은 재산의 약 70%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고 FT는 전했다. 앞서 사우디 검찰총장은 구금된 이들의 부패 규모가 최소 1000억 달러(약 109조 7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부패척결을 통해 최고 3000억 달러를 확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네옴 프로젝트 발표장이었던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이 왕족 등의 수감장으로 바뀐 데에는 반대파 견제와 함께 강제 납세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중동 질서의 한 축인 사우디의 정정 불안은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빈 살만의 노림수와 무관치 않다. 
빈 살만은 비전2030 실행을 위해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를 내년에 사우디와 해외증시에 동반 상장하고, 지분의 최대 5%를 매각할 계획이다. 빈 살만으로선 아람코를 최대한 비싸게 매각하려면 유가 상승이 필수적이다. 
지난 4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살만 국왕과 만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메이는 런던증권거래소의 장점을 역설하며 살만 국왕에게 아람코 런던 증시 상장을 권유했다. [AP=연합뉴스]

지난 4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살만 국왕과 만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메이는 런던증권거래소의 장점을 역설하며 살만 국왕에게 아람코 런던 증시 상장을 권유했다. [AP=연합뉴스]

 현재 유가는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FT에 따르면 금융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까지 유가가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빈 살만이 다른 산유국들과 감산에 합의하면서 고유가를 유지하려 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빈 살만은 여성 운전을 허용하는 등 온건 이슬람 노선으로의 탈바꿈도 선언했다. 사우디의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이 20.1%로, 188개 국가 중 174위에 그치는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여성 운전이 허용된 사우디를 겨냥한 포드의 광고.[포드 트위터]

여성 운전이 허용된 사우디를 겨냥한 포드의 광고.[포드 트위터]

"이집트 인권탄압 전 장관이 조언자"…과격 행보에 서방 우려 
하지만 빈 살만의 개혁 드라이브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우려도 낳고 있다. 수단이 과격해 결과적으로 중동의 불안만 가중시키면서 사우디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게 아니라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즈(NYT)는 빈 살만이 왕족 등을 체포해 구금하는 과정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 재임 중 내무부 장관을 지낸 하비브 알 아들리의 조언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아들리는 재임 중 고문과 납치 등 인권 탄압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사우디 왕족의 체포 과정에서도 폭력이 자행돼 일부가 치료를 받았다고 NYT는 전했다. 블룸버그는 “부패가 줄면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는 건 맞지만, 합법 절차를 따르지 않고 왕족들을 체포하는 빈 살만의 모습에 ‘다음은 내가 될 수 있다'고 느끼는 외국계 투자자도 많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왼쪽)가 지난 5월 사우디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왼쪽)가 지난 5월 사우디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빈 살만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손을 잡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지그마이어 가브리엘 독일 외무장관이 “사우디가 레바논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고 비판하자 베를린 주재 자국 대사를 사우디로 소환하는 등 마찰도 일고 있다.
 NYT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빈 살만에 우호적인 것과 달리 미 국무부나 국방부,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들은 빈 살만의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 결국 미국에 손해를 끼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소개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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