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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세월호·메르스 … 나는 기구한 99년생입니다

나는 세기말에 태어난 1999년생 토끼띠, 대한민국 고3이다. 오후 8시30분에 샤워를 하고 나왔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지난주부터 ‘오후 9시 취침’에 돌입했다. TV 보던 형이 말했다. “수능 일주일 연기됐네.” 거짓말인 줄 알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선생님에게 우리가 태어난 해에 사람들이 ‘밀레니엄 버그’라는 것을 걱정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컴퓨터가 2000년 이후의 연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전 세계 컴퓨터망이 마비돼 혼란이 찾아올 거라는 뉴스가 쏟아졌다고 한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 한두 해 동안은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라는 시기였다고 한다. 당시 은행원이던 큰아버지는 ‘명예퇴직’이라는 강제 퇴직 대상이 될 뻔했다고 한다. 큰아버지는 “공무원이 최고”라는 말을 명절마다 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02년 월드컵은 너무 어렸을 때 일이라 기억이 없다. 한국이 4강에 진출했었다니, 기적 같은 일이다. 월드컵에 관한 내 첫 기억은 5학년 때 남아공 월드컵(2010년) 16강전에서 우루과이에 져 탈락한 것이다. ‘반지의 제왕’이었다는 안정환은 우리 세대에게는 예능감 있는 아저씨일 뿐이다.
 
바로 전년도인 2009년 4학년 때는 전국적으로 신종플루가 유행했다. 가을 운동회가 취소됐다. 몇 주 뒤에는 수련회까지 무기 연기됐다. 6학년 형들의 경주 수학여행도 없던 일이 됐다. 그해 한 번이라도 수업을 쉰 학교는 전국 7262개(학년·학급 휴업 포함)로 전체 초·중·고교의 39.9%였다.(『교육기관 신종플루 대응백서』)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역사를 제대로 못 배웠다. 우리에겐 6학년 때 역사 교육이 시작되는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됐다. 그런데 6학년이 되니까 5학년 때 역사를 배우는 것으로 교육과정이 바뀌었다.
 
그 다음에 비하면 여기까지는 그래도 평탄한 시절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인 2014년 4월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5월에 예정돼 있던 제주도 수학여행은 사라졌다. 그때 ‘99년생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사회도 힘들었고 어린 우리들도 침울했다.
 
2015년 고교 1학년 때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유행했다. 그해 5월 20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환자는 186명까지 급증했고 36명이 사망했다. 수학여행이 또 사라졌다.
 
2017년 드디어 고교 3학년이 됐다. 하필 내가 고3일 때 사상 최장기 추석 황금연휴가 왔다. 시골 할머니 댁에도 가지 못하고 독서실에서 보냈다. ‘한 달만 참으면 된다. 수능만 끝나 봐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눈 깜짝할 새 11월이 왔다. 이틀 전 점심시간, 친구 하나가 밥을 먹다가 “아, 수능 일주일만 연기되면 전 영역 1등급 받을 수 있을 텐데”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응, 아니야~”라고 대꾸했다. 그게 현실이 될 줄이야.
 
“초등학교·중학교에서 수학여행 한 번도 못 가고 수능까지 연기되냐. 99년에 태어난 게 무슨 죄냐.” 단체 메시지 방에 친구들의 하소연이 쏟아졌다.
 
“그동안 공들여 이루어 놓은 많은 것을 허망하게 잃기 쉬운 운수입니다. 겸허한 마음과 자세가 요구될 것입니다.” 친구들이 단체 메시지 방에 올려놓은 이달의 토끼띠 운세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글을 99년생의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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