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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때마다 잽 맞는 기분”…지진 트라우마 앓는 영남주민들

지난 15일 오후 포항시에 진도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여진에 놀란 북구 주민들이 흥해 실내체육관으로 대피해 있다. [ 매일신문 제공]

지난 15일 오후 포항시에 진도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가운데 여진에 놀란 북구 주민들이 흥해 실내체육관으로 대피해 있다. [ 매일신문 제공]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대구경북(TK) 주민들은 지난해 9월 경주에 이어 또다시 인근 포항에서 규모5.4의 지진이 나자 충격을 받았다. 부산·울산·경남(PK)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원자력발전소가 인접해 있는 TK와 PK를 아우르는 영남권 전체가 '지진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포항 흥해체육관 대피한 주민들 “큰 차소리에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고통 호소
지난해 경주 지진 겪은 주민들 “3개월 동안 여진 이어져 주민 대부분 트라우마 겪고 있어”
동일본 대지진 겪은 이창희 교수 “한국은 내진설계 안돼 있어 더 극한 공포감 느껴”

지진으로 아파트 벽에 금이 간 포항시 흥해읍 D 아파트 주민들의 정신적 충격은 상당히 컸다.  
지난 16일 오후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 체육관에서 만난 D 아파트 주민 박선희(47) 씨는 “그래도 대피소가 제일 안전할 거라 생각해서 두 딸을 데리고 이리로 왔다”며“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여전히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지진 진앙에서 멀지 않은 흥해읍 약성리에사는 김모(77)씨 역시 불안한 마음에 흥해체육관으로 대피했다. 그는 “큰 차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며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안절부절못했다. 
흥해읍 망천리 조준길(69) 이장은 “지난해 9월 12일 일어난 경주 지진(규모 5.8)도 경험했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열 배 가까이 강한 진동을 느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 16일 오후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도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대피소에서 불안에 떨며 우는 아기를 가족들이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16일 오후 포항시 북구 환호동 대도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대피소에서 불안에 떨며 우는 아기를 가족들이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진 트라우마를 호소하면서 응급약을 찾는 시민들도 많았다.
대부분 두통·소화불량 등의 증세를 호소했고, 가슴이 계속 뛴다고 했다. 포항시약사회에서 자원봉사를 나온 이문형(46) 흥해우리약국 약사는 “흥해읍 인근 약국들이 지진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얘길 듣고 진통제·소화제·청심환 등을 챙겨왔다”며“밤새 30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와서 진정이 되지 않아 가슴 통증 등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발생한 경주 지진을 겪은 주민들의 고통은 더욱 컸다. 
경주 교동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박찬석(44) 씨는 “지난해 경주 지진은 진동이 7초 정도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10초 이상 느껴졌다”며“'무섭다' 정도가 아니라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극한의 공포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5.8 강진의 진앙지였던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1리 주민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해 9월 5.8 강진의 진앙지였던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1리 주민들. 프리랜서 공정식

경주 지진을 겪은 주민들은 여진에 3개월 이상 시달려 대부분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고 한다. 박 씨는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여진을 느낄 때마다‘잽’(복싱기술로 짧고 빠르게 툭 치는 기술)을 맞는 기분”이라며 “큰 차가 지나가서 건물이 흔들리거나 세탁기에서 탈수 기능이 작동해 집안에 작은 진동이 느껴져도 지진인 줄 알고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재학 중인 여대생 이모(24) 씨 역시 “위층에서 ‘쿵’하는 소리만 나도 지진이라고 착각할 만큼 뇌리에 지진 공포가 각인돼 있다”며“공부하다가 큰 차가 지나가면 친구들끼리 토끼 눈을 하고 지진인지 걱정한다. 앞으로 포항 주민들도 여진을 계속 겪다 보면 우리처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시 황성동에 사는 가정주부 최모(42) 씨는 포항 지진을 감지하자마자 집안에 둔 생존배낭을 들고 자녀와 함께 집을 빠져나왔다. 최씨는“지난해 경주 지진 발생 이후 생존배낭을 사뒀는데 진동을 느끼자마자 생존배낭을 챙겨 자녀와 함께 집을 빠져 나왔다”며 “지난해 9월 이후 3개월 동안 여진이 느껴질때마다 이번처럼 생존배낭을 챙겨 가까운 공원으로 차를 몰고 갔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발생한 포항 지진으로 건물 외벽이 무너진 모습. [사진 중앙포토]

지난 15일 발생한 포항 지진으로 건물 외벽이 무너진 모습. [사진 중앙포토]

2011년 3월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규모 9.0)보다 경주와 포항 지진이 더 공포스러운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사람도 있다. 
부산대 이창희 교수는 “일본 유학 시절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지만, 일본은 워낙 내진 설계가 잘돼 있어 지진 피해 걱정을 거의 안 했다”며“지난해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로 재임하면서 경주에서 지진을 겪었다. 
 
건물 외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건물이 무너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공포감이 확 몰려왔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번 포항 지진은 부산에서 경험했는데 진동이 느껴지자마자 학교 건물 안에 있다가 밖으로 급히 빠져나왔다”며 “앞으로 6개월 동안은 또 지진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작은 진동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상황이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포항시가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주민들을 위해 심리지원실을 운영한다고 발표했지만, 주민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교수는 “경주시가 운영했던 심리지원실을 가봤더니 심리상담가가 지진 트라우마를 치료한 경험이 없어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포항 역시 심리지원실을 운영한다지만 경주와 상황은 비슷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9월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경주 시내 한 의류매장의 유리창은 산산조각 났다. [사진 트위터]

지난해 9월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경주 시내 한 의류매장의 유리창은 산산조각 났다. [사진 트위터]

 
경주·포항=이은지·백경서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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