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진 발생시 옥외 대피소 역할을 하는 서울 중구 흥인초등학교의 정문. 올 9월 대피소로 지정됐지만 이를 알리는 표지판은 설치돼 있지 않다. 김상선 기자
서울에 지진 대피소 2200여 곳
서울시민 절반 이상 수용 못해
표지판 설치는 50%에도 미달
“학교가 대피소 지정 꺼리기도”
일본은 대피소 수백m 전부터
화살표와 그림으로 방향 안내
하지만 흥인초교 어디에도 대피소임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없다. 학교 인근 주민 10명에게 물어봤지만, 이곳이 대피소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주민 황원미(40)씨는 “학교와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더 이상 지진이 남에 얘기 같지 않은데, 대피소를 코앞에 두고도 몰랐다”고 말했다.
청운초등학교 운동장(7344㎡, 2200여명)은 종로구의 ‘옥외대피소’다. 교문 옆 담장에 붙은 노란색 표지판(가로 약 1m, 세로 30cm)은 맞은편 횡단보도에서도 한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지진 발생에 대비해 지정된 긴급 대피장소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지진 옥외 대피소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울 종로구 청운초등학교 정문 담장에 부착돼 있다. 이 학교는 운동장과 체육관 등 두 곳이 지진 발생시 긴급 대피장소로 지정돼 있다. 김상선 기자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내 지진대피소는 2200여 곳이다. 700여 곳에서 최근 세 배로 늘어났다. 하지만 표지판 설치는 5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이유다.
대피소 수가 늘었지만 약 1000만 명인 서울시민들을 수용하기에 부족하다. 서울의 옥외 대피소는 1700여 곳으로 400만 명가량 수용할 수 있다. 주거지가 파손된 이재민들이 거주하는 ‘실내구호소’는 560여 개로 63만명이 들어갈 수 있다. 서울시민의 절반은 들어가지 못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내구호소의 경우, 수용률이 6% 정도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송준서 서울시 재난관리총괄팀장은 “대피소 지정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학교들이 대형 표지판을 설치하는 게 부담된다는 이유로 대피소 지정을 꺼려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 12월까지 모든 대피소에 표지판을 붙이고, 필요하다면 대피소도 늘리겠다”고 말했다. 자치구들의 ‘대피소 격차’도 크다. 지진 대피소 수용률에서 종로구(204%)와 광진구(12%)는 약 17배 차이가 난다.
채종길 서울시 상황대응과 주임은 “일본에선 대피소 지정 절차가 간단하다. 심지어 공무원이 사립학교에 대피소로 지정하겠다고 말로만 전달해도 바로 정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고베대에서 지반공학박사을 받고 올 4월 서울시에 지진 전문가로 특채됐다. 그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대피소에서 수백m 떨어진 곳에서부터 화살표와 그림으로 대피소 방향을 표시한다.
채 주임은 “일본엔 대피소 매뉴얼이 매우 구체적이다. 이를테면 ‘1학년 1반엔 노약자들이 간다’ ‘2반에선 배식을 한다’는 식이다. 지진에 있어서 일본의 상황과 한국은 많이 다르지만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진 설계도 시급한 과제다. 서울시 건축물의 내진 설계율은 27.5%로 전국 최저 수준이다. 그 중에서도 노후 저층 주택 밀집지의 상황은 더 심각해 전체의 12.4%만이 내진 설계가 돼 있다. 서울연구원 관계자는 “서울시 단독주택 상당수는 지진에 취약한 건축물이다”고 말했다.
임선영·홍지유 기자 youngc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