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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1000년 이상 버텨낼 친환경 건축자재는 이것

기자
송의호 사진 송의호
“황토벽돌만큼 사람에게 득이 되는 건축재도 없습니다.”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0)
인체에 유익한 최고의 친환경 건축재
1500년 전부터 왕릉·탑 건축등에 사용
최근 들어 황토벽돌로 지은 건축물 늘어

11월 9일 경북 예천 공장을 안내한 삼한C1 한삼화(74) 회장은 모르는 이가 많아 안타깝다는 듯 “지구상에 더는 없는 유익한 재료”라고 한 번 더 강조했다.
   
 
한삼화 회장이 포장을 앞둔 황토벽돌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한C1 제공]

한삼화 회장이 포장을 앞둔 황토벽돌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한C1 제공]

 
39년째 황토벽돌 생산에 매달려 온 한 회장은 1998년 일찌감치 경상북도의 ‘세계일류중소기업’으로 선정됐다. KS마크·JIS(일본공업규격) 등 인증과 대한건축학회 기술상 등 수상 내역이 팸플릿에 빼곡하다.  
 
황토벽돌은 흙으로만 만들어진다. 그래서 친환경임을 강조한다. 한 회장은 흙 예찬론자다. 사람 등 생명체는 흙이 생육한 걸 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며 흙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삼한C1 예천 공장은 황토 지대에 들어서 있다. 흙의 본래 색깔에 따라 벽돌의 색상이 결정된다. [사진 송의호]

삼한C1 예천 공장은 황토 지대에 들어서 있다. 흙의 본래 색깔에 따라 벽돌의 색상이 결정된다. [사진 송의호]

 
그런 흙은 습도를 조절하고 악취를 없애며 인체에 유익한 원적외선을 방출한다. 해로운 성분이 아예 없다는 것. 대구에 본사를 둔 삼한C1이 예천을 찾아 450억원을 들여 이탈리아‧독일 등에서 수입한 설비를 구축한 것도 천연 황토가 많이 매장돼 있어서였다.
 
황토벽돌은 흙 100%로 벽돌을 만든 뒤 1200도 고온으로 굽는다. 고로를 거친 황토벽돌은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가 난다. 구워낸 도자기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와 흡사하다.  
 
“벽돌집을 지은 사람들이 ‘아이들 아토피가 없어졌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 흙과 불이 빚어낸 천연 재료는 이렇게 치유 효과도 발휘한다. 황토벽돌은 단열도 뛰어나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는 것. 
 
 
공장은 이탈리아와 독일의 자동설비로 구축돼 있다. 여기서만 황토벽돌이 하루 30만 장씩 만들어진다. [사진 송의호]

공장은 이탈리아와 독일의 자동설비로 구축돼 있다. 여기서만 황토벽돌이 하루 30만 장씩 만들어진다. [사진 송의호]



 
500년 이상 충분히 견뎌
 
황토벽돌은 굽지 않고 황토로만 지은 집의 한계도 뛰어넘는다고 덧붙인다. 그냥 황토집은 빗물 등 수분에 약해 그걸 보완하는 다른 재료를 섞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회장은 “황토벽돌이 500년은 충분히 견딘다”고 장담한다.
 
벽돌의 신비로움은 우리 역사에서도 낯설지 않다. 1500년 전 벽돌 건축물은 지금도 아름답게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누구나 사진 등으로 한 번은 보았을 아치형 벽돌로 축조된 백제 무령왕릉이다. 처음 발견된 건 불과 46년 전인 1971년이다. 놀랍게도 아치형 벽돌 공간에는 백제 25대 무령왕과 왕비의 금송 목관이 썩지 않고 남아 있었다. 황토벽돌이 ‘숨 쉰다’는 말이 실감 나는 유적이다.  
 
 
벽돌로 축조돼 1500년의 세월을 견딘 백제 무령왕릉.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자료사진]

벽돌로 축조돼 1500년의 세월을 견딘 백제 무령왕릉.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자료사진]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바로 옆 공주 ‘송산리 6호분’에서는 글자가 새겨진 벽돌이 나왔다. ‘梁官瓦爲師矣(양관와위사의, 중국 양나라 관영 공방의 기와를 본보기로 삼았다)’ 6글자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우리 조상은 벽돌을 사용한 것이다.  
 
 
공주 '송산리 6호분'에서 출토된 글자가 새겨진 벽돌.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자료사진]

공주 '송산리 6호분'에서 출토된 글자가 새겨진 벽돌.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자료사진]

 
통일신라 시기에는 벽돌로 탑을 만들었다. 국보 제16호인 ‘안동 신세동 7층 전탑’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전탑(塼塔)’의 ‘전’은 벽돌을 뜻한다. 높이 17m 7층 탑이 1000년 이상 건재한 것은 불에 구워진 벽돌 덕에 어떤 화재도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벽돌 탑은 이곳 말고도 국내에 4곳이 더 남아 있다.
 
‘근대 건축’이 도입된 개항 이후에는 벽돌 건물이 많이 세워졌다. 1898년 명동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전주 전동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전한다. 벽돌로 쌓아 올린 문화재들이다.  
 
 
황토벽돌로 지어져 올해 모습을 드러낸 대구 범어대성당. [사진 삼한C1 제공]

황토벽돌로 지어져 올해 모습을 드러낸 대구 범어대성당. [사진 삼한C1 제공]

 
삼한C1 한 회장은 1500년간 이 땅에 면면히 이어진 황토벽돌의 생명력을 콘크리트 시대에 다시 일깨우고 있다. 최근에만 대구 범어대성당, 계명아트센터, 경기 파주 영화사 집, 대전대 30주년 기념관 등이 황토벽돌로 세워졌다. 아직은 도시에 끝없이 지어지는 콘크리트 건축 행렬에 수적으로 절대 열세지만 흙과 불이 빚는 벽돌이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yeeh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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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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