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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로봇을 닮아가는 우리들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

시한부 삶을 운명으로 복제된 로이 베티는 자신과 싸우던 릭 데커드를 살리고서는 “나는 인간들이 상상하지 못할 많은 것들을 보았어…. 그 모든 순간은 시간 속에서 사라져 가겠지.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라고 말하며 주어진 생을 마감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나온 명대사로 신의 영역으로 간주하던 생명에 개입하는 인간에게 문제를 던진다.
 

로봇의 인간화보다 인간의 로봇화가 더 걱정
인간의 공감·윤리·초월의 숭고함 꼭 지켜야

바이오산업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인공지능(AI)도 인류의 미래에 못지않게 많은 숙제를 남긴다. 테슬라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와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AI가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내 재앙을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 어떤 이들은 AI와 로봇 산업이 규제 없이 발전할 경우 인간과 같은 로봇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새로운 세계와 그에 따라 생겨나는, 이전에 접해 보지 못한 윤리적인 문제에 대비할 필요는 있지만, 상황을 과장해 호들갑 떠는 호사가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마치 AI와 로봇 산업이 인간과 같은 존재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선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인간의 마음은 세계의 모습을 그려내고 문제를 지능적으로 해결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어 세계에 대한 그림을 다채롭게 한다.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 있어 예술을 낳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 윤리를 잉태한다. 삶의 유한성과 허무함에 대해 통찰하며 유한성 너머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며, 초월을 꿈꾸고 절대자와 만난다. 로봇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다.
 
새로운 시대 우리는 로봇이 인간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공감·윤리·초월을 상실하며 인간이 로봇처럼 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삶의 많은 측면이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은 변화한다. 기억하는 전화번호 수는 과거보다 거의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공간에 대한 우리의 지식도 달라져 있다. 어느 동네 옆에 어느 동네가 있으며, 그 동네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동네를 거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이전에 잘 알던 지식이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의 삶을 지배하는 지식이 두뇌가 아니라 스마트폰 또는 나의 자동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에 저장돼 나의 행동을 지배한다. 클라우드로 연결된 빅데이터가 나에게 음악을 추천해 나의 음악적 취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관계망도 성격이 달라진다. 인공지능은 나의 다양한 성향을 분석해 나에게 최적화된 제품을 공급할 뿐 아니라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가상공간에서 연결해 준다.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대면적으로 대화하던 사람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고, 인터넷에서 맺은 친구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 공간을 초월하는 인터넷 덕으로 교류하는 사람들의 폭은 폭발적으로 넓어지지만 접속된 사람들과의 관계 밀도는 묽어진다.
 
AI로 연결된 시스템이 나의 의사결정을 대신하면서 주체적 결정의 영역은 좁아지고, 공감의 능력은 위축되어 간다. 동물의 세계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꿈꾸어 온 인류의 긴 역사는 그 방향을 바꾸고, 인간을 생존 기계로 보는 생각들이 퍼져 나간다. 인간의 이타심도 알고 보면 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한 생존의 메커니즘에 불과하다는 생각,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 초월적 규범을 꿈꾸는 것은 다수의 망상이라는 주장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며 종교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간다. 적자생존의 정서가 시대정신을 이루며 우리의 저항감을 서서히 잠식해 간다.
 
공존과 공감은 힘을 잃어가고, 규범과 초월의 이상이 훼손되며 우리 자신을 생물학적 로봇으로 생각하기를 강요하는 AI의 시대, 우리는 공감의 능력을 보존하고 공동체 정신을 유지할 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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