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분수대] 궁궐 후계목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키가 1m 조금 넘을까. 첫눈에도 여려 보였다. 줄기는 가늘었고, 가지는 야리야리했다. 반면에 뾰족한 잎은 푸르렀다. 서울 창덕궁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 후계목이다. 그저께 점심때 들른 창경궁 대온실에서 만난 나무다. 간단한 설명도 달려 있다. ‘4~5월에 꽃이 피며, 노란 수꽃이 가지 끝에서 긴 타원형을 이룬다. 열매는 이듬해 9~10월에 익는다.’ 문구가 건조하다. 스토리가 생략되니 흥미도 줄어든다.
 
후계목은 모수(母樹·엄마 나무)의 일부를 채취해 키워 낸 나무를 말한다. 문화재청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老巨樹)들의 유전자원을 남기려고 해당 수목의 DNA를 추출·복제하는 사업을 5년 전 시작했다. 나무의 혈통을 보존하자는 취지다. 창덕궁 향나무도 그중 하나다. 경기도 남양주시 사릉의 전통수목양묘사업소에서 모수의 유전자를 채취해 키워 냈다.
 
그렇다면 엄마 향나무는? 수령 750여 년, 우리 궁궐에 있는 나무 가운데 최고령이다. 고려시대에 태어나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한국사의 영욕과 함께해 왔다. 2010년 여름에는 태풍을 맞아 가지 일부가 부러졌지만 그 손상된 부분마저 종묘제례(宗廟祭禮) 등 궁능 제향 행사에 향을 피우는 데 사용됐다. 이야기가 풍성하다. 생명력이 대단하다.
 
‘나무 박사’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향나무는 유교 국가 조선에서 조상에 제를 올리는 향의 재료로 애용됐다.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고, 향기도 오래가기 때문이다. 부인네 장신구, 점치는 도구, 염주알 등 쓰임새가 다양했다. 왕실에선 울릉도 특산품을 구해 쓰기도 했다. 지난 10일 새로 문을 연 창경궁 대온실 향나무 후계목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연유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이웃해 있는 데다 현대과학 덕분에 노거수가 어린나무로 재탄생한 까닭이다.
 
창경궁 온실 정초석(定礎石)에는 단기 4242년(서기 1909년)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당시 동양 최대 온실(바닥면적 582㎡)이었다지만 지금 보면 왜소한 편이다. 그럼에도 향나무 후계목은 작아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또 750년이 흐르면 지금의 창덕궁 엄마처럼 위풍당당한 풍채를 자랑할지 모른다. 가지가 부러지고, 생채기가 생겨도 늠름하게 자라길 바랄 뿐이다. 고난의 한국사도 그렇게 그렇게 커 왔다.
 
박정호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