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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암호화폐 거래, 미국 허가제인데 한국은 신고제

“화폐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금융당국 소관이 아니다.”(금융위원회 관계자)
 

관리·감독 외면하는 정부 부처
화폐인지 상품인지 규정 아직 없어
금감원·공정위·과기부 입장 달라

국내 거래소 통신판매업자로 등록
‘빗썸 서버 다운’ 책임 소재 못 가려

유럽에선 ‘제도권 밖의 투기’ 인식
“관련법 마련해 위법 행위 처벌해야”

“금융회사가 아닌데 왜 우리가 감독해야 하느냐.”(금융감독원 관계자)
 
“거래소는 통신판매사업자가 아니다. 우리 소관이 아니다.”(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
 
“해킹 등 사이버 침해 문제에만 대응한다.”(과학기술통신부 관계자)
 
암호화폐를 둘러싼 각 부처, 회사 입장

암호화폐를 둘러싼 각 부처, 회사 입장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와 이를 사고 파는 거래소에 대한 정부 각 부처의 입장이다. 12일 오후 4시경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이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1시간 반가량 다운되면서 발생한 피해를 놓고, 누구의 책임인지를 따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투자는 전적으로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하루 거래 대금이 6조5000억원에 이르는 시장을 규제의 사각지대에 두는 건 문제라는 목소리가 커진다.
 
각 부처가 서로 관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의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를 화폐로 본다면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이 키를 잡고 나서야 한다. 하지만 암호화폐를 상품으로 본다면 공정거래위원회 등 타 부처로 관할이 넘어간다.
 
정부가 나서 암호화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 건 지난 9월이다. 금융위는 공정위·금융감독원·한국은행 등 7개 관계부처 및 3개 기관과 함께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었다. 암호화폐를 둘러싼 국내외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회의를 통해 나온 결론은 “정부의 입법조치는 암호화폐 거래를 제도화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는 “암호화폐를 해석하는 일부터 각 부처와 기관 간 생각이 달랐다.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소관 부처가 정해지는 만큼 모두가 방어적이었고, 결국 모두가 조금씩 가상화폐 시장에 관여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은 지지 않는 애매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구제 관련한 각국 입장

암호화폐 구제 관련한 각국 입장

회의의 쟁점은 암호화폐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이었다. 일단 금융위와 금감원 등 금융당국에선 암호화폐에 대해 “화폐라고 볼 수 없고, 앞으로도 화폐로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금융위 관계자는 “암호화폐는 화폐가 아닌 만큼 금융당국에서 관련 법 제도를 신설하거나 규제할 근거가 없다. 단지 유사수신행위규제법에 따라 금감원과 함께 공조해 가상화폐 관련 범죄행위에 대해 대응할 뿐”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를 상품으로 본다면 공정위 소관이 된다. 실제 암호화폐 거래소는 통신판매업자로 사업자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공정위에선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신판매업자로 인정하기를 꺼린다.
 
공정위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투자를 위해 돈이 오가는 창구일 뿐 일반 국민이 소비생활을 위해 물건을 구매하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전자상거래법상 신고만 하면 사업을 할 수 있는 통신판매사업자로 볼 수 없고 공정위에서 관여할 부분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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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보니 암호화폐 시장은 ▶금융위·금감원=불법 유사수신행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해킹사고 등 사이버침해 ▶행정안전부=개인정보보호 등으로 나뉘어 ‘조각 규제’가 이뤄질 뿐 주무부처는 없는 실정이다. 이는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해킹과 서버 다운 사태 등 각종 사건·사고에 대해서도 진상을 파악하거나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의미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암호화폐 시장을 둘러싼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화폐냐 상품이냐의 문제”라며 “금융위와 한은, 공정위 등 각 부처와 기관이 폭탄 돌리기 하듯 암호화폐의 관리·감독 의무를 미루다 보니 관련 법제화 논의는 지지부진하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다. 법적 성격과 규제책 마련 등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 또한 형성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암호화폐를 ‘규제 대상’으로는 인식하지만 주(州)에 따라 법적 지위에 대해선 입장이 다르다. 다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암호화폐를 증권법의 규제 대상으로 규정하고, ICO(Initial Coin Offering,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 조달) 및 암호화폐 거래에 관한 관리를 본격화했다.
 
영국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에선 여전히 암호화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규제책 또한 만들지 않아 ‘제도권 밖의 투기’라는 인식이 강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암호화폐의 유통과 거래를 제한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도 암호화폐에 대한 각 부처와 기관의 공통된 입장은 “암호화폐는 제도권 밖에서 발생하는 투기·도박에 가깝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투자자가 져야 한다”는 정도다.
 
문제는 이렇게 암호화폐를 사실상 투기의 수단으로 보는 정부 입장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신기술 개발 등 핀테크 기술 발전까지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김명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규제 및 법제화 방향’ 보고서를 통해 암호화폐의 특성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관련 근거 및 입법 필요성을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암호화폐가 일률적으로 불법화하는 경우 블록체인 등 신기술 개발을 통한 금융소비자 편익 제고 등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될 수 있다”며 “합법적인 부분에서는 시장 건전성과 소비자 편익 확보 및 핀테크 산업 육성을 위해 감독과 규제를 하되 위법성이 강한 부분에 대해서는 감독과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가상화폐·가상통화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비트코인·이더리움 등은 이전 가상화폐(virtual currency)와는 다르다. 해외에서도 초기에는 실물화폐와는 달리 실체가 없다고 해서 가상화폐,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y) 등으로 불렀지만 최근에는 모두 암호화폐(cryptocurrency)로 용어를 통일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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