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3공수여단 11대대 소속 지역대장 신순용(69) 전 소령은 13일 전북 진안군의 한 마을에서 이같이 고백했다고 한겨레가 보도했다.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공수부대 지휘관이 암매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증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겨레TV 캡처]](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11/14/2d0190fa-ac39-41aa-9b17-7ab01d16b177.jpg)
[한겨레TV 캡처]
보도에 따르면, 신씨는 “80년 5월 22일 오후 1시께 (북구 각화동) 광주교도소 정문으로 접근하는 시위대 차량(1톤)에 일제사격을 해 3명을 사살한 뒤 교도소 앞 야산에 암매장했다”며 “20대로 보이는 이가 2명이었고, 1명은 17살 전후의 고교생 정도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암매장 장소에 대해 “당시 묘지가 1~2곳 보이는 소나무숲의 비탈진 곳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지목한 교도소 앞 야산은 현재 각화동 농산물도매시장으로 바뀌었다.
이 야산은 1980년 5월 27일 서만오(55년생)·최열락(53년생)·신원미상 1명 등 3명이 암매장됐다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당시 주검을 찾아낸 서씨 가족들은 “주변에 시신 5~6구가 더 있었는데, 며칠 뒤 다시 가보니 발굴 전 상태로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한겨레TV 캡처]](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11/14/f6d0723b-fae1-42c1-a3b1-ba276f804f29.jpg)
[한겨레TV 캡처]
신씨는 암매장 당시 상황에 대해 “부하 3~4명을 데리고 차량에서 주검을 꺼낸 뒤 교도소 정문에서 100여m 떨어진 도로 맞은편 야산에 야전용 삽으로 깊이 100~120㎝ 정도 구덩이를 판 뒤 가마니 등을 덮지 않고 그냥 묻었다”고 밝혔다.
신씨는 다른 22~25구의 주검이 묻히는 장면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3공수특전여단 15대대 부대원들이 광주~담양 호남고속도로와 인접한 교도소 남쪽 담장 인근에 구덩이를 파고 시신 2~3구씩 12~15구를 묻었다”고 말했다. 이어 “북쪽 담장 인근에 10구를 묻는 것을 목격했다”고도 했다.
이 지역에서 유난히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 건 당시 광주교도소와 인접한 호남고속도로 쪽으로 나가려던 시위대 차량을 나가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시위대가 고속도로에 트럭을 타고 나타날 때마다 차량을 못 나가게 하려고 사살했다”며 “시위대가 수습해 가지 못한 주검들을 교도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신씨는 “그동안 마음이 답답했다. 암매장은 비밀사항이었다. 자동으로 입 다물고 있었다. 잘못하면 보안대에서 조사하고 하니까 말도 못하고…”라며 “(신군부가) 계속해서 거짓말하는 것을 보고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편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 부지를 조사 중인 5·18기념재단은 북쪽 담장 4개 구덩이를 팠으나 유해 흔적을 발견하지 못해 발굴 구역을 확장하는 한편 남쪽 담장 쪽도 추가로 발굴할 예정이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