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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함께 명암 교차…'국정원장 잔혹사'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병기(70) 전 국정원장이 13일 검찰에 출석했다. 이로써 남재준·이병호 원장을 포함해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원장 3명이 모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5·16 이후 중앙정보부가 효시
박정희 정권 땐 육사 출신 꿰차
김형욱·김재규 등 비극적 말로
전두환 정권 '안기부'로 개명했지만
정보기관장 잔혹사는 끊이지 않아
민주화 이후에도 구속, 징역 되풀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의 국정원장 가운데 검찰의 칼날을 피해간 사람은 이명박 정부 초기의 김성호 전 원장뿐이다. 원세훈 전 원장은 구속 상태다. 
 
‘국정원장 잔혹사’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인 탓에 주로 권력자의 측근이 국정원장 자리에 앉았다. 정권이 바뀐 뒤 그들 중 상당수가 추락했다.
1962년 1월 20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서울 태평로 국회별관에 있는 중앙정보부를 처음 공식 시찰하고 있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왼쪽)이 지부 사무실과 전화하고 있다. 그 옆은 이영근 중정 차장, 박 의장 뒤는 박종규 경호대장.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1962년 1월 20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서울 태평로 국회별관에 있는 중앙정보부를 처음 공식 시찰하고 있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왼쪽)이 지부 사무실과 전화하고 있다. 그 옆은 이영근 중정 차장, 박 의장 뒤는 박종규 경호대장.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국정원의 모태는 1961년 창설된 중앙정보부다. 국정원은 중정을 이어받아 지금의 서훈 원장을 34대로 친다. 중정은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가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을 본따 만들었다. 초대 중정부장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맡았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府訓)을 그가 만들었다. 
 
초기 중정부장은 쿠데타에 참여한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도맡았다. 김 전 총리의 뒤를 이은 김용순‧김재춘‧김형욱‧김계원‧이후락이 육사 출신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말로는 험악했다. 3대 중정부장을 지낸 김형욱은 6년 3개월간 재임해 역대 최장수 부장으로 기록돼있다. 1차 인민혁명당 사건, 동백림사건 등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용공조작 사건들이 그의 재임 중 기획됐다. 1969년 3선 개헌 후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종적을 감추기 직전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오른쪽) 모습. [중앙포토]

종적을 감추기 직전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오른쪽) 모습. [중앙포토]

김형욱은 미국 하원 청문회와 회고록을 통해 유신 정권의 폭정을 폭로했다. 박정희 정권의 눈엣가시가 된 그는 1979년 한때 부하직원이었던 윤일균 해외담당 차장의 꾐에 속아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그해 10월 1일 파리에 도착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암살설, 납치설 등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아직 그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는 1976년 8대 중정부장에 올랐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깝던 최태민씨(최순실씨의 아버지)를 뒷조사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한 뒤 법정에 선 그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말을 남겼다.
 
김재규가 사형당한 뒤 윤일균‧이희성 등이 중정부장 직무대행과 서리를 반복하다 1980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중정부장 서리에 올랐다. 임기는 3개월로 짧았지만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을 대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중앙포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을 대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중앙포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 중정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과거의 음습한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시도였지만 안기부에서도 흑역사는 계속됐다. 
 
중정부장이 5‧16 군부 실세들의 자리였다면 안기부장은 12‧12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 세력이 차지했다. 개명 후 첫 안기부장인 유학성을 시작으로 장세동, 안무혁, 박세직이 그들이다. 
 
유 전 부장은 5공화국 시절 최대의 금융사기 사건으로 일컬어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을 미흡하게 대처했다는 이유로 경질됐다. 이후 국회의원이 됐지만 1996년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에 회부돼 1‧2심에서 유죄를 받고 상고심 재판 중 지병으로 사망했다. 
 
전두환 정권의 최고 실세 중 한 명인 장세동은 1985년 민주화 요구가 거세질 무렵 안기부장에 임명됐다. 그가 있을 때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평화의 댐 사건,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 등 정치 공작이 벌어졌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물러났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12‧12 반란 가담 혐의로 법정에 섰다. 3년 6개월 징역형을 받아 옥살이하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뒤 사면‧복권됐다. 
 
박세직씨는 안기부장을 마친 뒤에도 88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장, 자민련 부총재 등 정치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1998년 '총풍' 사건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권영해 전 안기부장 [중앙포토]

1998년 '총풍' 사건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권영해 전 안기부장 [중앙포토]

김영삼·김대중 정부로 이어지면서도 정보기관장 수난사는 끊이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15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이른바 ‘북풍’ 사건을 기획한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권씨는 검찰 조사 도중 미리 준비해 간 흉기로 자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1999년에는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보는 국력이다’는 원훈을 직접 썼다. 임동원 원장은 당시 국정원의 햇볕정책을 총지휘했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에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해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2000년 국회 정보위에 출석한 임동원 국정원장. [중앙포토]

2000년 국회 정보위에 출석한 임동원 국정원장. [중앙포토]

하지만 통일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인 이듬해 8월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만경대 방명록 사건’으로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돼 경질됐다. 2005년에는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마지막 국정원장인 신건 전 원장도 이때 함께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석방됐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국정원장인 김만복 전 원장은 첫 공채 출신 원장이었다. 그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회담 자리에 배석했다. 퇴임 후인 2010년 10월 자서전에서 10‧4 남북정상회담 때 일화를 공개해 정치적 파장을 불렀다. 그가 소개한 일화는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파문의 도화선이 됐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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