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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시인과 기생의 이루지 못한 순애보 … 백석 시집 가운데 있는 것처럼 몰입

책으로 읽는 뮤지컬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표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표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지음, 다산책방
 
뮤지컬에도 유행이 있다. 요즘 극장가엔 긴 제목의 뮤지컬이 유행이다. ‘빈센트 반 고흐’에서 ‘여신님이 보고 계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이르기까지 홍보용 포스터엔 글자들이 가득하다. 인상적인 대사를 담은 캘리그래피로 어필하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알게다. 모든 것은 시간이 알게 할게다’(‘서편제’)같은 경우나 ‘처음으로 나의 모든 걸 걸겠어’(‘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문구로 로비를 가득 채웠던 예가 대표적이다. 공연 전후에 서성거리며 감상을 곱씹어보게 하는 글귀다.
 
인기 창작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그런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백석의 시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 무대용 콘텐트로 환생시켰다. 음악에 맞춰 “눈은 푹푹 나리고, 나의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는 시구가 낭송되면, 마치 시집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시구에 몰입하게 된다. 연출을 맡은 오세혁은 학창시절 백석의 시집을 늘 가방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인과 시집을 출간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더해졌다고 한다. 뮤지컬이 시집의 외전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이자 배경이다.
 
시인 백석의 시와 사랑을 무대로 끌어온 ‘나와 나타샤…’. [사진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시인 백석의 시와 사랑을 무대로 끌어온 ‘나와 나타샤…’. [사진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백석과 자야는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인 연인이었다. 가난한 시인과 기생의 만남은 엄격한 집안의 반대를 불렀고 결국 전쟁으로 헤어져 다시 만나지 못하는 비극을 낳았다. 경성에 홀로 남아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며 큰 재산을 모은 자야는 말년에 법정 스님에게 절을 지어달라며 대원각을 기부한다. 바로 성북동의 길상사다. ‘1000억 재산이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하다’고 답했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언젠가 백석을 다시 만나면 이번에는 돈 걱정 따위 없이 실컷 시나 쓰게 해주려 했다’는 뮤지컬 속 자야의 독백이 울림을 자아낸다.
 
백석은 윤동주가 사랑했던 시인이었다고 한다. 기자로도 일했고 교단에 서기도 했다고 한다. 흩날리듯 헝클어진 머리를 한 그의 흑백 사진은 요즘 감각으로 봐도 세련돼 보인다. 섬세한 시구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깨끗한 그의 심성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현란한 이미지들과 가상현실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 소극장으로 꾸며진 소박한 사랑 이야기의 이 뮤지컬이 왜 그리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백석의 시집을 읽다 보면 향토색 짙은 단어들에 정감도 느끼게 된다. ‘깽제미’나 ‘따디기’, ‘마가리’같은 표현들이다. 실제로 눈물짓는 관객들도 많다. 무대를 통해 시집을 만나게 되는, 늦은 가을의 고귀한 선물이다.
 
원종원 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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