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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박근혜보다 국정원이 걱정된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 농단을 수사하던 검찰이 이번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의 청와대 유입 사건으로 방향을 틀었다. 삼성 돈이든, 롯데 돈이든 그 돈이 박 전 대통령의 지갑에 들어간 증거가 나와줘야 꼼짝없이 뇌물죄로 처벌할 텐데 그렇지 못했다. 6개월 수사하고 6개월을 재판했건만 대기업 돈들이 최순실 개인이나 미르재단 같은 법인에 흘러갔다는 얘기만 맴돌고 있다. 이런 중에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차례로 자신의 특수활동비를 매달 안봉근·이재만·정호성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이 나온 것이다. 특수활동비는 현금이다. 규모도 40억원이나 된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가 성립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검찰은 이제 대통령과 국정원장 사이의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을 증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을 것이다. 거기에 박 전 대통령이, 예를 들어 최순실의 독일 도피자금 제공 등 개인 용도로 쓴 흔적이 나오기라도 하면 금상첨화다. 대중의 분노에 또 한 번 불이 붙을 것이다. 검찰이야 불법 혐의가 있으면 끝장을 보는 칼잡이 속성이 있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정원은 그렇지 않다. 한걸음 떨어져 좌우를 살피고 미래를 내다보며 특수활동비 수사가 미칠 파장을 따져 봐야 한다. 생각 없이 검찰의 칼춤을 즐기다가 정권이 베이는 수가 있다.
 
서훈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에서 “국정원이 청와대에 지급한 40억원은 특수활동비 중 특수공작사업비”라고 했다. 특수공작사업비는 공개되면 불법 소지가 있지만, 국익을 위해 집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금이다. 그래서 부작용이 있지만 드러내선 안 된다. 국정원 역사상 특수공작사업비의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8월 김만복 국정원장이 아프가니스탄의 무장 반란집단인 탈레반한테 건넨 2000만 달러다.
 
경기도 분당 샘물교회 신도 23명이 아프간 선교여행을 하다 탈레반한테 인질로 잡혀 2명이 살해됐다. 그들을 구출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명을 받아 김만복 원장이 현장에 달려가 선글라스를 끼고 지휘했다. 그때 국정원에서 인출된 특수공작비가 3000만 달러라고 한다. 국정원을 평생 취재해 온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출신 김당 작가가 지난해 펴낸 『시크릿 파일 국정원』에 나오는 스토리다. 그는 “김 원장이 3000만 달러 중 2000만 달러는 탈레반한테 선교단 몸값으로 지불하고 1000만 달러는 그해 10월 노무현-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진행비조로 북한에 송금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만복 전 원장은 “탈레반한테 건넸다는 2000만 달러는 노 코멘트하겠다. 북한에 1000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그는 국고를 손실 없이 집행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영수증에 탈레반 지도자의 친필 사인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정상회담 진행비 1000만 달러 문제는 아직도 김당 작가와 김만복 전 원장 간 진실공방이 진행 중이다. 공방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의 특수활동비가 북한 정권 손을 거쳐 핵무기 개발에 사용됐느냐는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다. 한반도 최악의 재앙인 북핵의 불쏘시개로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쓰였을까.
 
2007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이 김만복 원장의 1000만 달러 송금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도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이러니 국정원의 특수공작사업비는 한번 열리면 누구도 피해나가기 어려운 판도라의 상자가 되는 것이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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