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기획] ‘5·18 가마니 시신’ 밝힌다···광주교도소 유해발굴 착수

5·18 암매장 추정지로 지목된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에서 지난 4일 중장비가 겉흙을 걷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5·18 암매장 추정지로 지목된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에서 지난 4일 중장비가 겉흙을 걷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사라진 시민들이 암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옛 광주교도소 발굴 작업이 본격 시작됐다.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발굴은 80년 5월 이후 처음이어서 37년 전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5월단체, “6일부터 문화재 발굴방식 발굴”
광주교도소, 사망자 28명 중 11구만 수습

계엄군 지휘관 “가마니로 시신 2구씩 매장”
진술·약도 있는데도 37년간 진상규명 외면

5·18기념재단은 5일 “암매장 추정지로 지목된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 대한 콘크리트와 잡초 등 장애물 제거가 완료돼 6일부터 문화재 발굴방식으로 발굴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전경. 5·18 당시 암매장 장소로 추정돼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전경. 5·18 당시 암매장 장소로 추정돼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앞서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지난 4일 옛 광주교도소를 소유한 법무부로부터 발굴 착수 승인을 받은 직후 현장에 중장비를 배치해 장애물을 제거했다. 이어 재단 측은 6일 조현종 전 국립광주박물관장을 비롯한 고고학 분야 전문가로 꾸려진 발굴사업단을 현장에 투입해 문화재 출토 방식으로 암매장 흔적 찾기에 나선다.
 
옛 광주교도소에서 암매장 발굴이 이뤄지는 것은 5·18 이후 처음이다. 80년 5월 당시 보안대 자료에는 옛 교도소에서 억류당한 시민 28명이 숨진 것으로 기록됐으나 이중 시신 11구만 임시매장된 형태로 발굴됐다.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해 숨진 광주 시민들의 시신이 안치된 상무관 모습. 뉴시스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해 숨진 광주 시민들의 시신이 안치된 상무관 모습. 뉴시스

발굴 장소는 교도소 북측 담장 바깥쪽 길이 300m 중 길이 117m, 폭 3~5m 구간이다. 5·18 당시 공수부대의 순찰로 인근 부지로 재소자들이 일궜던 농장 인근 지점이다. 현재는 아스팔트 포장 시공과 주변에 주차장·테니스장 등이 조성돼 과거와 지형·지물이 달라졌다.
 
발굴단은 유적지 조사에서 쓰이는 트렌치(trench)를 통해 정밀발굴에 나선다. 트렌치는 땅 밑에 유해가 존재하는지와 과거 몇 차례나 흙을 파내고 다시 메웠는지 등의 지질 정보를 제공한다. 땅속에 있는 시신 유무는 물론, 매장 후 다시 파갔는지 아닌지까지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지난 3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에 5·18 암매장 발굴을 위한 중장비가 투입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에 5·18 암매장 발굴을 위한 중장비가 투입되고 있다. 연합뉴스

5·18기념재단 측은 기상 상황 등이 양호할 경우 작업 15일 이후에는 유해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6일 오후 2시에는 옛 광주교도소에서 브리핑을 열어 향후 발굴 계획과 발굴 현장을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발굴은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 지휘관이던 3공수 김모 전 소령이 작성한 약도와 진술 조서, 시민 제보 등을 토대로 이뤄졌다. 김 전 소령은 1995년 5월 29일 서울지검에서 “관이 없어 가마니로 시신 2구씩을 덮고 묻었다”고 진술했다. 또 “시신 12구 중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옮겨진 시신 3구는 밟혀 죽은 시위대였다”는 진술도 남겼다.
5·18 당시 계엄군에 끌려가는 시민들. 중앙포토

5·18 당시 계엄군에 끌려가는 시민들. 중앙포토

 
아울러 그의 진술에는 ‘교도소 담장에서 3m 정도 이격해 매장했다’ ‘전남대에서 방송 차량을 이용해 시신 3구를 교도소로 옮겼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지만 사실 확인은 이뤄지지 않았다. 5·18에 대한 신군부의 역사 왜곡과 정부와 군 당국의 무관심 속에서 암매장을 둘러싼 진실이 37년이 넘도록 땅속에 묻힌 것이다. 
지난 4일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북측 담장 인근에서 5·18기념재단 등이 중장비를 동원해 암매장 추정지 발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일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북측 담장 인근에서 5·18기념재단 등이 중장비를 동원해 암매장 추정지 발굴을 하고 있다. 뉴시스

 
 5·18사적지 22호인 옛 광주교도소는 5·18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의 주요 격전지이자 시민군들이 고문을 당했던 장소다. 5·18 당시 이곳에는 3공수여단과 20사단 병력이 주둔한 곳이어서 유력한 암매장지로 지목돼 왔다. 1980년 5월 18일 31사단 96연대 제2대대가 지키고 있다가 21일 오후 5시 30분 전남대에서 철수한 3공수여단으로 교체됐다.  
 
당시 옛 광주교도소 인근의 민간인 희생자 대부분은 3공수여단이 머무는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5·18기념재단이 김 소장이 증언한 진술과 약도 내용의 신빙성을 높게 보는 것도 그가 당시 3공수여단 본대대장이어서다. 이곳은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가 “중장비로 땅을 파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지목한 장소 인근이기도 하다.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 발굴 작업이 본격화 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일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이 암매장 추정지를 가리키고 있다. 뉴시스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 발굴 작업이 본격화 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일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이 암매장 추정지를 가리키고 있다. 뉴시스

현재 5·18기념재단에는 김 소장의 증언 외에도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암매장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3공수 부사관 출신인 김모씨가 “부패한 시신 5∼7구를 임시로 매장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한편, 5·18 암매장지 발굴은 2002년부터 3차례에 걸쳐 발굴이 이뤄졌으나 현재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5월 단체들과 광주광역시는 1997년부터 2009년까지 암매장 제보가 접수된 64건 중 중복된 12곳과 제보가 미흡한 46곳을 제외한 9곳에 대해 발굴 작업을 해왔다. 
옛 광주교도소 5·18 암매장 추정지. 뉴시스

옛 광주교도소 5·18 암매장 추정지. 뉴시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행불자의 유해를 찾아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발굴에 임하겠다”며 “복원과 보존까지를 염두에 두고 발굴 조사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